-10화-

“...............”

문을 조심스럽게 연 나는 고개를 넣어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아직 노을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간대라 내부가 충분히 잘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책상. 어찌 보면 앙상하다고 할 수도 있는 서랍이 없는 형태의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연필꽂이, 스탠드, 달력 같은 것들이 올려있었다.

“어디보자........”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문을 더 열어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후, 방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 들어간 후 책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4층짜리 책장이 있었다. 상자 같은 것이 들어있기도 하고 책들도 몇 권 꽂혀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책상을 지나치도록 고개를 조금 돌리니 이번엔 옆으로 펼쳐진 문 없는 서랍과 창문이 보였다. 서랍 안에는 잡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인형이나 작은 가방들이 들어가 있었다.

“꽤나 정리를 잘 해두고 사는군.............응?”

대충 구경을 한 다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나는 방금 본 서랍 위에 액자 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인가?”

갑자기 생겨난 호기심에 나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 도착한 나는 눈에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조그마한 액자 하나를 들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오토메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인건가.”

그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찍은 장소는 모르겠지만,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의 모습이 보였다. 아사쿠라 오토메. 만난 지 하루도 안 되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게 만든 당돌한 누님.

“그럼 이쪽이 동생이란 건가.”

오토메 누나의 오른쪽에는 새침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를 특이하게 말아서 양쪽에 작은 공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분홍색 끈과 하얀 천 같은 것으로 고정시킨 것 같았다. 오토메 누나와의 키 차이는 별로 나지 않고,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사진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 집 여자들은 다들 한 미모 하는군?”

오토메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지만, 동생인 아사쿠라 유메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사진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 뿐이지만, 이 소녀의 모습 또한 내가 지금까지 봐온 여성들 중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오토메 누나와 코토리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앗차차.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음껏 사진을 감상하던 나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기억해내고는 액자를 원래 자리에 다시 놓았다. 조금 더 사진을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기다리다 못한 오토메 누나가 이곳에 와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무슨 훈계를 할 지 몰라서, 알지 못할 두려움에 사진 감상을 포기했다.

“그나저나 동생이라는 이 사람은 어디에 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침대가 하나 있었다. 연녹색의 체크무늬가 있는 베개, 하늘색의 시트와 이불이 조합을 이루어 저것들을 이용해서 잠을 잔다면 언제나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내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그곳에는...................

“........자고 있다고?”

그렇다. 지금 내 눈 앞에는 방금 전 사진에서 오토메 누나 옆에 있던 인물이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코와 입. 사진에서 보이던 분홍색 끈과 흰색 천이 없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공처럼 뭉쳐진 머리. 귀여운 얼굴. 틀림없다. 방금 전 내가 사진에서 본 그 인물이다.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뭔가 피곤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많이 피곤하다면 조금 일찍 잠을 자거나 저녁을 먹기 전에 잠을 자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저녁을 먹기 위해서 부르러 온 나의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은 아니란 말이지.”

나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에게 저녁을 먹기 위한 호출을 하러 온 것이다. 잠자는 모습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누군가를 불러와야한다는 임무만 없었더라면, 지금 이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좋은 이벤트인데 말이지.........”

현실에서 이런 멋진 이벤트가 쉽사리 나올 리가 없다. 아름다운 여성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이벤트라니. 그 여성의 절친한 친구라던가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매우 드문 장면임이 틀림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나는 행운아일지도.

“쩝.....아쉽지만 이제 깨워야 할 타이밍인가.”

아쉬운 마음에 좀 더 그녀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오토메 누나가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슬 그녀를 깨우기로 했다.

“네가 얼마동안 잤고 있는지는 관심 없고,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절대로 민폐는 아니야. 당연히 그래야지. 난 잘못이 없어.”

그녀를 깨우기 전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걸로 죄의식은 없고, 문제는................

“어떻게 깨워야 잘 깨웠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해진 규칙이란 게 있을 리가 없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방법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자고 있는 친구들을 여러 번 깨운 적이 있긴 하지만, 여성을 깨워본 경험은 없다. 친구들을 깨우는 식으로 깨웠다간 무슨 짓을 당할까봐 겁이 나서 도저히 그 방법은 쓸 수 없어서 고민 중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말하기 참 뭐한 이야기지만.

“아. 재미있는 게 생각났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주저앉은 후,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조심............조심............”

나는 장난기가 생기면 그걸 꼭 실행해보는 어린 시절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좋아.... 조금만 더......”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코를 제압했다. 숨을 쉴 수 없도록.

그렇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주로 만화에서 일어나고, 코골이가 심한 사람에게 써먹기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알려진 ‘코 막기’이다.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 이용하는 코와 입 중에서 코를 봉쇄함으로써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시대가 낳은 멋진 테크닉이다.

지금 만지고 있는 그녀의 코의 감촉을 말하자면 상당히 부드러웠다. 이런 말을 하면 뭔가 변태가 된 것 같아서 썩 기분은 좋지 않지만, 일단 그렇다.

“.............으음.........”

코가 봉쇄당해서 숨을 쉬기 조금 곤란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옆으로 움직였다. 재빠르게 손을 땠기 때문에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고, 나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위험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켰다간 훈계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어느덧 ‘잠자는 소녀 깨우기’는 ‘잠자는 소녀를 괴롭히기’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그걸 즐기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 내 쪽으로 돌렸기 때문에 목표가 잘 보였고, 제압하기도 더 쉬워졌다.

“좋아... 방금 전에는 입까지 봉쇄하지 못해서 실패했던 거고.... 이번에야 말로.....”

나는 방금 전보다 더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이번엔 동시에 제압하기 위해서 양 손을 움직여 그녀의 코와 입을 노렸다. 1초라도 좋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숨을 쉬는 걸 방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지금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러. 나.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뭘 하기는. 당연히 이 녀석이 단지 1초라도 숨을 못 쉬게 만들려는 아주 멋진 장난..........................응??”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거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 이외에 말을 하는 인물은 이 방 안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방금 그 말은.....?’

“.......유령?”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나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바로 앞에 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려봤다. 거기에는............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말이죠.“

“네.”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

두 눈이 보였다. 노려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것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눈빛. 초록색의 두 눈동자가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살며시 다물어진 입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

깨어났다. 이 말 한마디면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것 이상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은 없을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은 경직되었고, 뇌는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고 식은땀이 등 뒤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은?”

표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닫혀있던 입이 열면서 나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상황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장면이었다.

“그.....................못된 장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내가 간신히 내놓은 대답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 왠지 모르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해당할 것 같다고 할까.

“그럼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이 손들의 의미는?”

그녀의 이 말에 깨달은 것이지만, 아직 나의 양 손은 그녀의 코와 입을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손이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어.....음...... 뭐라고 할까......”

“.....................”

“잠을 깨우려고 하는 사람의 친절한 손놀림?”

“그게 말이 될까보냐!!!”

(퍼억!!)

“윽!!”

순간 나의 머리에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혔다. 이 느낌, 틀림없이 철과 플라스틱이 사용된 물건이다. 중요한 건 그걸 맞고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

“아야야.... 무슨 짓이야!!!”

“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이 변태!!!”

머리를 문지르면서 화를 냈지만 피해자인 그녀가 반대로 나를 변태라고 부르며 소리쳤다.

“변태는 누가 변태야!! 난 네 녀석을 깨우러 왔단 말이다!!”

“당신이 누군데 날 깨우러 와!! 변태!! 강도!! 저리 가!!”

(퍼억)

이번엔 베개.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면서 약간의 데미지를 주는 이 감촉은 분명 방금 전에 저 녀석이 쓰고 있던 베개다. 이런 말을 하면 진짜 변태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냄새가 난다.

“무슨 짓이야 민폐녀!!!”

“누가 민폐야!! 애초에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사람이 잘못이지!!”

“멋대로라니!! 난 당당히 현관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아주 떳떳하게!!”

“강도 주제에 뻔뻔하기도 하지!! 어떻게 현관으로 들어올 생각을 해?!”

“그러니까 난 강도, 변태가 아니라고!!!”

내가 베개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하자, 그걸 재빨리 받더니 다시 나에게 던졌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 필사적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급습에 대항하는 소녀, 그리고 멋대로 변태, 강도로 몰아버린 그 소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나. 상황을 보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꼴이라 더더욱 화가 났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내 방에서 어서 나가라고!!”

“누구 맘대로!! 변태, 강도라고 말한 걸 정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나가!!”

“꺄아!! 가까이 오지 마!! 변태!! 바보!!”

“바보라고 하지 마!!!”

“저리 가!!!”

(휙-)

“우앗!!”

베개 이외의 뭔가가 날아와서 깜짝 놀란 나는 몸을 틀었고, 가까스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멍청아! 뭘 던지는 거야!! 위험하잖아!!”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만 나가라고!!!”

(벌컥)

“유메!!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들의 싸움은 순간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오토메 누나가 서 있었다.

“.................”

“.................”

“..................”

3명의 침묵은 분위기를 다운시켜 지금 상황이 참 어색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이 상황에 오토메 누나라니. 타이밍이 너무 안 좋은데.’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자면 이렇다.

내가 오른손에 베개를 들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고, 왼손으로 상대방에게서 날아오는 물건들을 막으려고 손을 뻗은 상태다. 상대방인 아사쿠라 유메는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이쪽에 던질 뭔가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는 모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 입구에 서 있는 오토메 누나.

‘신이시어.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드셨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신과 운명에게 화를 내보는 나였지만,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타개책이 더 절실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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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딱 10화까지 써뒀다니. 멋진데? (퍼억)

....이제부터 써야겠지. 끄응...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9화-

“다 왔어. 여기야.”

사쿠라 씨는 걸음을 멈추시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하셨다. 나는 건물의 겉모습을 한 번 본 뒤 말했다.

“..... 한 20발자국 걸었던 것 같네요.”

“뭐, 가깝긴 가깝지.”

사쿠라 씨는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대답하셨다.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시는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뭔가 속사정을 모르는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사쿠라 가의 겉모습은 요시노 가와는 달리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시노 가는 현관문이 나무재질이고 벽이라 할 수 있는 곳은 풀로 뒤덮여 있으니 자연적인 느낌이 들지만, 아사쿠라 가는 그와 반대로 시멘트벽으로 이루어진... 어떤 면에선 삭막함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어서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관 감상은 뒤로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응? 뭔데?”

이 부분은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꼭 답을 들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친척이 이렇게 가까이 산다면...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지 않나요?”

그 질문에 사쿠라 씨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다.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긴 좋은데 난 이 집이 좋아. 게다가 저 집에 살고 있는 내 친척들도 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어째서요?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는 곳인가요?”

만약 그녀에게 이 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사쿠라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이나 장소는 쉽사리 잊을 수 없고, 떨어져 살기도 힘드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여긴 내 할머니의 집이거든.”

“헤에... 사쿠라 씨의 할머님이...”

“응.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기에서 살기로 한 거야. 헤헤... 쓸모없는 고집 일려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좋은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친척들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데도 혼자서 이 집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러한 장소나 물건이 없지만, 인간인 이상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의문이 조금은 풀렸지만, 사실은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살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여기엔 내가 모르는 과거 이야기가 있을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원래는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일 때문에 이사를 갔다.’같은 거.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서 나는 이것에 관련된 질문은 그만 두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좀 더 가까운 미래에 관련해서.

“근데 이 집, 아사쿠라 가에는 누가 살고 있죠?”

“음... 오빠와 그의 손녀 2명이 살고 있어.”

사쿠라 씨가 말하는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텐 중요치 않다. 나는 전체적인 정보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3인 가족이군요. 오토메 누나는 손녀란 말이군요. 어라? 그럼 오토메 누나들의 부모님들은요?”

그녀는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순간 그녀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엔 뭔가 슬픈 과거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출장 중. 어머니는 그녀들이 어렸을 때 죽었어.”

“죽다니... 사고인가요?”

“아니... 병이었어.”

“그렇군요.....”

사쿠라 씨의 어두운 표정이 이젠 확연히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을 꺼낸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서 사는 세상에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자, 자,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

“예.....”

사쿠라 씨는 일부러 밝은 척을 하면서 웃어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부터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띵동~ 띵동~)

사쿠라 씨는 아사쿠라 가의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 사람은 입고 있는 옷은 다르지만, 내가 한번 본 얼굴이었다.

“아, 사쿠라 씨. 어서 오세요.”

온화하면서 밝은 목소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이름은 아사쿠라 오토메. 만나고 10분도 안 돼서 ‘편하게’ 말을 놓게 된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꽤 혼란스럽다. 실제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여기서는 일단 내가 그녀보다 적고,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여동생과 헷갈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반말과 ‘누나’호칭을 쓰게 강요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선 보기 힘든 에피소드겠지....’

나의 이런 고통 아닌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토메 누나는 나를 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건장한 남자인 이상 그녀의 미소는 다이너마이트 급으로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주지.’

“오토메, 좀 늦었지? 미안. 세이토 군이 너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제 잘못이 크긴 했지만 늦지는 않았잖아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을 흔들며 말하셨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저녁 준비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는 저녁식사에 초대된 게 아니었나요...”

“응. ‘일꾼’으로서 초대되었지.”

“...................”

사쿠라 씨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하셨고,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토메 누나는 그런 나와 사쿠라 씨의 정다운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거참... 나만 당하고 있군...’

“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나와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안내를 받아 아사쿠라 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면 가장 먼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눈에 보였다. 요시노 가에는 없는 다락방이 혹시나 여기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계단 바로 앞에 왼쪽으로 벽이 뚫려 있었다.

사실 벽이 뚫려있는 게 아니라 거실로 통하는 입구다. 부엌과 거실이 융합되어 있었다. 두 장소 사이에 특별히 벽 같은 게 없었다. 부엌 쪽엔 4인용 식탁이 놓여있고, 그 옆은 거실 영역으로 연 파란색의 소파가 있었다. 소파 앞에는 유리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TV가 보였다.

“호오. 이 집은 이렇게 되어 있군요...”

“어때? 아사쿠라 가의 모습은?”

사쿠라 씨의 말에 나는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좋은데요? 가구들의 배치도 나쁘지 않고, 햇빛도 잘 들어올 거고. 예전부터 이랬나요?”

“응. 특별히 가구의 위치를 바꾼 적은 없어. 예전부터 이렇게 두고 살아왔었어.”

나의 질문에 오토메 누나가 대답했다. 사쿠라 씨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오토메 누나에게 물었다.

“오토메, 오빠는 어디 있어?”

“할아버지요? 부족한 재료가 있어서 사 오신다고 잠시 나가셨어요.”

“흠..... 그래?”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현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하셨다.

“그럼 난 오빠 마중 나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저녁 준비를 끝내줘.”

“네. 다녀오세요.”

“저도 같이 갈까요?”

나는 사쿠라 씨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말했지? 일꾼으로 초대된 거라고.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도와줘. 그럼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곤 사쿠라 씨는 신발을 신고 나가셨다. 오토메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에이프런을 입고 있었다.

“자, 그럼 세이토 군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

“응? 왜 그래? 혹시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군’이란 호칭은 그냥 빼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래? 일부러 신경 써서 호칭을 붙인 건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는 건가!!’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난 뒤에 말했다.

“왠지 ‘군’을 붙이니까 내가 듣기 거북해. 그냥 이름만 불러줘.”

“응.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자, 어서 이리 와서 도와줘.”

“예이, 예이.”

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 식탁 위에 있는 재료 및 요리기구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기.........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응? 뭔데?”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거...........냄비요리?”

“응. 근데 왜?”

“아니........겨울도 아니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음......지금도 충분히 겨울인데?”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 나의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오토메 누나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냄비요리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오늘의 주역이 될 적당한 크기의 냄비에 고정되어 있다.

“사쿠라 씨가 오늘 저녁은 냄비요리가 좋다고 말하셨거든. 그래서 준비했어.”

“....................”

“혹시 세이토는 냄비요리를 싫어해?”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럼 상관없잖아.”

“그렇긴 한데............”

냄비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을 뿐이다.

때는 작년 여름.

내가 살던 세계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장소에 도착했지만.........

“하나 물어도 되냐 나의 친구들아.”

“뭔데 세이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여름에 냄비요리를 통해 더움을 이겨내자!’라는 친구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얽히게 되어서 나는 그해 가장 더운 날에 뜨거운 냄비요리를 먹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추운 날 이외엔 절대로 냄비요리를 먹지 않는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그 다짐이 깨지려고 하는 것이다.

“자자, 어서 준비해. 곧 할아버지와 사쿠라 씨가 돌아오실 거야.”

‘그렇다고 안 먹겠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식탁에 있는 것들을 거실 쪽으로 옮겼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온 뒤론 이것저것 꼬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굳게 다짐했던 것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깨지다니......’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허망감을 잊으려고 나는 오토메 누나와 대화를 하려고 말을 꺼냈다.

“근데 왜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는 거야?”

뭔가 특별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재료들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특별히 에이프런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토메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는 항상 착용하고 있었어. 습관이 들어서 특별히 입을 이유가 없어도 입고 있지만 말이야. 어때? 어울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였다. 나는 보기 드문 이 장면을 뇌에 되새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보겠는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은 절대로 무리다.

“뭐, 에이프런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은 없다고 생각해.”

“치잇- 감상이란 게 고작 그것뿐이야?”

“그럼 뭐라고 해줄까? 신혼부부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신랑에게 자신의 에이프런 차림이 어떠냐고 물어서 신랑이 ‘아주 아름다워서 눈이 부셔.’라고 말할 정도라고 하면 될까?”

“에잇-”

(타악-)

“아얏.”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그녀는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연상인 사람에게 농담은 하면 안 돼요.”

“넵.”

‘농담은 아닌데 말이지....’

나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다시 재료들을 날랐다. 곧 우리는 재료들을 모두 다 옮겼다.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를 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응? 유메라면 2층에 있어.”

‘호오. 이름이 아사쿠라 유메인가 보지?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군.’

나는 계단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슬슬 불러야 하지 않나?”

“그렇네... 그럼 세이토가 가서 좀 불러줄래?”

“거절합니다.”

“갔다 오세요.”

“네.”

모르는 사람을 부르러 간다는 것이 싫었고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오토메 누나의 말에 압도당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갔다.

‘아니, 원래라면 낯선 남자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오토메 누나의 정신 상태를 조금 의심했다. 2층으로 올라오니 방문이 2개가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집에도 다락방은 없었다.

“....다락방이 주택만의 매력인데 말이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보인 방의 문 앞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똑 똑)

“...................”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이 방은 오토메 누나의 방인 것 같다.

‘흠..... 그럼 저 방이란 말이군.’

나는 고개를 돌려 나머지 하나의 문을 보았다. 내가 지금 오토메 누나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 들렸을 텐데 저 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통은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봐야하는 거 아니야?! 이 집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점점 아사쿠라 가 사람들에 대한 의혹이 커져가기 시작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바로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의 호출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찮은 건 사실이야.....”

나는 투덜거리며 나머지 방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다음 가볍게 노크를 했다.

(똑 똑)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다. 마치 방 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노크를 하기로 했다. 아까 전에 한 것은 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똑 똑)

“....................”

역시 대답은 없다. 조금 기다려봤지만 깜깜 무소식.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뭐야. 기껏 내가 부르러 왔다는데.”

방문을 시원스럽게 열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내가 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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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고갈나는 듯.

아마 이거 다음화까지만 적어뒀는 걸로 기억.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8화-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일지도 몰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석양이 비추는 거리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에 맞춰서 하나 둘 전깃불을 켜는 가게들. 말하자면 ‘어린 아이는 집에 갈 시간.’이란 것이다.

“하아.......”

그런 거리에 서서 나는 한숨을 쉬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한숨이라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사쿠라 씨한테서 약도를 받아올걸...”

그렇다. 나는 지금 미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미아.

“.....한심하군.”

나는 앞을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실망했다. 평소에 입에 ‘준비만 철저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란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잊고 있던 것 같다.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나는 기억을 되살려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봤다.

요시노 사쿠라. 정체불명의 사람.

“........패스.”

아사쿠라 오토메. 신비로운 학생회장.

“....이런 정보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시라카와 코토리. 카자미 학원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미소녀.

“.........그래서 어쩌라고.”

인물 정보로는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론 오늘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장소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봤다.

카자미 학원.

“...이름만 알고 있는 곳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

상점가.

“사쿠라 공원에서 나온 다음에 실컷 돌아다녔던 곳이지.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없어.”

“응? 잠깐....”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나는 명안을 떠올렸다.

“...거기다!!”

나는 곧바로 다리를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라면 돌아가는 길도 기억이 날거야!!”

100% 보장은 없지만 약간의 희망의 빛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멈추지 않고 뛰어갔다. 사쿠라 공원,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두 발로 서있던 장소. 바로 그곳에.

“헉.....헉......”

다행히 사쿠라 공원까지의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 무사히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되돌아가는 것만 남았는데.....”

물론 사쿠라 공원에 왔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온다고 돌아가는 길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이제부터가 본방송이다.

“후.... 하..... 후..... 하......”

쉬지 않고 뛰어왔기 때문에 나는 꽤나 지쳐있었다. 일단 가볍게 숨고르기를 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서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와서....’

어느 정도 정신력과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생각되자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봤었지.’

사실 사쿠라 공원까지 오는데 길을 잊어서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쿠라 공원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답이 뒤죽박죽 섞여서,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군.”

나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 나서 걸어갔다. 이 섬에 있는 벚꽃나무들 중에서 가장 큰 벚꽃나무가 있는 장소. 시라카와 코토리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장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시작점에.

곧 나는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은 공원 내에 있는 곳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사쿠라 씨한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 내가 멋대로 돌아다닌 것도 문제긴 하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벚꽃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나무에 등을 기대로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꼴이지..... 이런 고생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지금 처한 현실을 한탄하며 하늘을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어떤가요?”

“.............?!?”

순간 나 이외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를 멈추게 했다.

“아,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아무래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등을 기대고 있던 곳의 정 반대 쪽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해석이 필요하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들리는 목소리를 분석하자면 내 또래의 여자아이인 것 같다. 그녀에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해줬다.

“뭐, 그렇군.”

“당신은 어떤가요?”

“응?”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단순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특별한 목표 없이 생활하면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대학생.

“당신의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요?”

“정해지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미래는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사실 ‘미래는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그거야 받아드리는 사람의 관점 차이지. 적어도 난 ‘정해져있는 건’ 싫어. 재미가 없잖아?”

“자신이 정해나가는 건 재미가 있단 건가요?”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녀와 이런 대화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속에 있던 불안들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내가 앞으로 걸어갈지, 뒤로 걸어갈지 어떤 걸 선택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지 않아?”

“당신의 이동이 궁금한 사람은 없을 텐데요.”

“아니. 비유란 거잖아. 비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요.”

“....응?”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정체모를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이곳에서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자리를 떠났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계속 보면서 나는 허공에 대고 대답했다.

“그럼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정해진 미래’라는 걸 깨는 모습을.”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길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는 지금 요시노家의 거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집의 주인, 요시노 사쿠라 씨다.

“설마 길을 잃어버릴 줄은 몰랐어요.”

사쿠라 공원에서 정체모를 소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면서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덧 나는 요시노家에 도착해 있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듣고 있는 거야?!”

“물론 듣고 있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쿠라 씨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한 사쿠라 씨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모르는 곳을 돌아다닐 땐 길을 정확히 기억해야한다는 경험을 얻었어요.”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은데 어째서 잊은 거야?”

“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요...”

시라카와 코토리란 미소녀와의 만남, 그리고 벚꽃나무 밑에서 정체모를 소녀와의 대화. 이정도면 돌아가는 길을 잊기엔 충분하다. 아, 후자는 아닌가.

“늦게까지 안 돌아와서 걱정했잖아.”

“연락 방법이 없던 것도 큰 문제였어요.”

“그렇네... 이번에 핸드폰을 하나 사야겠네...”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뭔가를 적으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지금 적고 계신 게 뭔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응? 구입 물품 목록.”

“...제가 쓸 물건들이요?”

“응. 옷이나 책 같은 것들.”

이왕 관련된 내용이 나왔으니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질문 하나 더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제가 여기로 올 때 제가 쓰던 것들을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나요?”

“그거? 쓸데없이 짐만 많아지니깐.”

“아니,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데 말이죠.”

“짐이 많으면 이곳으로 올 때 내가 힘들단 말이야.”

“뭔가 변명인 것 같은 느낌이...”

“에잇!!”

(따악!)

“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나의 머리를 사쿠라 씨는 가차 없이 내리치셨다. 벌을 받느라 방어에 대해 신경을 못 쓰고 있던 나는 그대로 사쿠라 씨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나는 고통을 느끼며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게 되었다.

“그런 건 일일이 따지면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때리실 것까진 없잖아요.”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법이야.”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사쿠라 씨는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곤 깜짝 놀라셨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무슨 시간이요?”

나는 남아있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문지르면서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는 서둘러 움직이시면서 대답했다.

“빨리 서둘러! 오토메와의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오토메... 아, 오토메 누나요? 무슨 약속을 했더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사쿠라 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나에게 말했다.

“벌써 잊은 거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잖아!!”

“..............오오!!”

그제야 나는 오전에 있던 오토메 누나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시계는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서 준비해!!”

“준비라고 할 게 저한테 어디 있어요!!”

“어쨌든 빨리 나와!!”

사쿠라 씨는 허둥지둥 거실을 뛰쳐나가셨다. 바로 쫓아가려고 했던 나는 일어나면서 급격하게 다리에 느껴지는 데미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제한은 앞으로 10분. 늦으면 안 된다. 만약 늦게 된다면 앞으로의 나의 학생 생활이 걱정될 것이다. 나는 거실에서 뒹굴면서 외쳤다.

“제-엔 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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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하마터면 예악을 잊을 뻔했네.

위험해 위험해...


......이번것도 좀 짧은가?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7화-

“자, 여기.”

“이거 미안한데. 초면인데 얻어먹기만 하고.”

“괜찮아.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갈 테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나에게 초코바나나란 음식을 건네고 있는 미소녀의 이름은 시라카와 코토리. 10분 전에 사쿠라 공원의 수많은 벚꽃나무들 중 한 그루의 밑에서 만난 소녀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녀는 곧 내가 생활하게 될 ‘카자미 학원 부속 중학교’의 3학년생이다. 나도 3학년으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 결국은 동급생이란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이’ 같은 나이로 취급받게 되는 거지만. 아직도 왜 대학생인 내가 중학생으로서 생활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쿠라 씨의 생각을 좀처럼 읽을 수가 없으니.

그건 둘째 치고, 사실 그녀는 평범한 여학생이 아니다!

...아니, 뭐 어떤 나라 보스의 자식 같은 대단한 건 아니고.

아름다운 외모에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하는 말투. 그녀 자신을 모르겠지만 여러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은 미소. 여러 면을 따져봤을 때, 그녀를 여신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과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내가 지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다 신의 도움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매일 거기서 노래 연습을 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가끔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들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음..................”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가볍게 치면서 그녀 특유의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낙천적인건지, 무신경한 건지...”

나는 알다가도 모를 그녀를 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초코바나나를 먹었다. 초코바나나라는 건 막대에 바나나를 꽂고 초콜릿을 바나나에 바른 음식인데, 생전 처음 먹어보는 거라 불안 반 기대 반으로 먹어나갔다.

“흐음......”

바나나에 발라진 초콜릿이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하면서 바나나의 맛을 한층 더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맛있다.

원래 나는 초콜릿과 바나나를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합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구입해서 먹어볼까 했는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패스했었다.

애초에 내가 살던 세계에서의 화폐와 같은 화폐를 쓴다고 하는데 어째서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돈을 챙기는 걸 사쿠라 씨는 막으셨던 걸까. 이것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어때? 맛있지?”

벌써 자신의 것을 다 먹은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초콜릿과 바나나를 모두 싫어하는 내 마음에 들 정도의 물건이라면 충분히 히트를 칠 수 있겠어.”

그녀와 만난 뒤,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우리는 비어있는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초코바나나를 사왔다. 돈이 없는 내 몫까지.

처음엔 사양했지만 ‘이럴 때는 그냥 순순히 받는 게 예의야.’라는 그녀의 말에 ‘다음에 이자까지 쳐서 갚는다.’라는 조건으로 초코바나나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응? 뭐가?”

초코바나나를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있던 그녀의 말에 나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말을 뜻을 알 수 없었다.

“안 듣고 있었던 거야? 사쿠라이 군은 하츠네 섬에 오기 전엔 뭘 하고 지냈냐고 물어봤었잖아.”

“아아. 그랬었지....”

초코바나나를 먹기 전에, 나와 그녀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먼저 그녀에 대해서 들었는데, 특별한 건 없지만 학원 내에서 유명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녀가 나에 대해서 물었는데, 초코바나나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평범한 학생이었지.”

“특기도 취미도 없는, 타인과 잘 안 섞이려고 하는,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이었어.”

“흐음.... 그래? 즐거운 추억 같은 건 없어?”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곧 한 가지 추억이 떠올라서 나는 입을 열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수업도중에 바지에 실례를 한 기억이라면 있는데.”

“....................”

“.....................”

갑자기 우리 둘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동안 초코바나나를 다 먹었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왜 그래?”

“사쿠라이 군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응?”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여성을 앞에 두고 ‘어렸을 때 바지에 실례를 했던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렇군. 내 생각이 좀 짧았어. 미안해.”

그제야 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그녀는 나에게 충고를 해줬다.

“다음부터는 상황에 맞는 말을 하게 노력해. 알겠지?”

“뭐.......내가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고 있다면’이 아니라 기억하는 거야!”

“...노력은 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화가 덜 풀린 것 같다.

“설마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건 아니겠지? 사소한 걸 너무 신경 쓰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야.”

“사쿠라이 군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사소한 건 가볍게 넘어가는 게 예의란 거지.”

“.....................”

그녀의 온화하면서 날카로운 눈빛을 견디지 못한 나는 재빠르게 주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뭐 일정이라도 있어?”

“일정?”

“응. 시간이 여유롭다면 섬 안내를 해줬으면 해서 말이지.”

“음.....”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해줬다.

“미안.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거든.”

“그래? 아쉽군. 모처럼 미소녀한테서 섬 안내를 받을 수 있을까 했더니.”

그녀는 손바닥을 모으며 나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미안. 다음엔 꼭 안내해줄게.”

“아니, 원래 난 혼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깐. 신경 쓰지 마.”

“그럼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오늘은 여기서 그만.”

“그래. 인연이 있다면 또 볼 수 있겠지.”

“....어차피 같은 학교잖아.”

그녀에 말에 나는 고개를 저어보이며 말했다.

“같은 학교라고 꼭 만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분명히 그 말도 맞긴 한데,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잖아.”

“훗.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우....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볼을 약간 부풀리며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조금 더 그녀를 놀려보기로 했다.

“뭐, 내가 보기엔 너는 많이 힘들 것 같네.”

“그렇게 계속 나를 무시한단 말이지?”

“.........음?”

그녀의 반응을 보며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내기하자. 입학식 이후 3일 내로 네가 속해있는 반은 찾아내주겠어.”

“내기라... 재미있겠네. 그럼 좀 더 룰을 정해볼까?”

갑작스럽게 생긴 내기지만,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내기에 응했다.

“일단 승리조건부터 정해볼까?”

“내 승리조건은 입학식 다음 날부터 카운트해서 3일 내로 네가 속해있는 반을 찾는 것.”

“그럼 내 승리조건은 3일 동안 발견되지 않는다는 거군.”

“조퇴, 결석은 바로 패배로 인정하겠어?”

“입학식 뒤로 바로 조퇴나 결석하는 인간은 큰 병을 가진 녀석 말곤 없어. 그건 걱정 마.”

계속해서 우리 둘은 내기를 구체화했다.

“승리조건은 그걸로 됐고, 내기에 이긴 사람에겐 역시 뭔가 상품이 있어야겠지?”

“음.... 뭐가 좋을까......”

“귀찮은데 그냥 ‘이긴 사람의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하자.”

“응. 나쁘지 않네. 그걸로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입학식이 기대되는 걸?”

“나도. 꼭 이겨주겠어.”

그녀의 눈에는 승리를 갈망하는 눈빛이 조금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뭐, 열심히 해봐. 그럼 난 이만 간다. 다음에 보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사쿠라 공원을 빠져나왔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여흥거리론 충분하겠군.'

그렇게 나는 시라카와 코토리라는 미소녀와 이상한 내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지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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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은 듯?!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6화-

“어때? 좋은 집이지?”

“뭐, 이 정도면 제가 살던 집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겠는데요.”

오토메 누나와 헤어진 이후, 나는 사쿠라씨와 함께 요시노家 집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은 생각보다 집터가 넓었다. 이곳엔 갑부들 이외엔 보기 힘든 적당한 넓이의 정원도 있었다. 평소에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사는 것이 소원 중 하나였던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원에는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좋은 그림을 형성했다.

정원 구경을 끝낸 나는 사쿠라씨의 안내에 따라 집 구경을 했다.

이 집은 2층집이다. 현관문을 열면 복도가 보인다. 신발을 벗고 복도를 조금 걸으면 오른쪽에 여닫이문이 보인다. 이곳은 거실이라고 부르는 곳.

안에 들어가 봤는데 재미있는 것이 보였다. 요즘 세상, 내가 살던 곳에선 다다미방이 그다지 많지 않다. ‘구식’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서 가정집에서 다다미방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 집의 거실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분위기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집에서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는 곳은 사쿠라씨의 방과 이곳뿐이라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이라고 사쿠라씨가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비슷한 대답을 들을 것 같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곳에는 6인용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24인치 TV가 있고 구석에는 난초가 몇 개 있었다.

거실에서 나와 다시 복도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복도가 이어졌다. 그 코너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2층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왼쪽으로 갔다.

조금 걷다보면 오른쪽에 부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잠시 부엌에 들려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사쿠라씨는 지금까지 혼자서 살아왔다고 했는데 부엌엔 조리기구들이 꽤나 있었다. 그 외에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이나 이것저것을 살펴본 결과, 혼자서 살아온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살아왔던 것 같았다. 어째서 사쿠라씨가 혼자서 살아왔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거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부엌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면 사쿠라씨의 방이 나왔다. 복도의 오른쪽에 문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려고 했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이유로 크게 혼이 났다.

사쿠라씨의 방을 지나쳐 더 걷다보면 욕실과 화장실이 나왔다. 욕실에 들어가 보니 성인 3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큰 욕조가 있었다. 혼자 살면서 어째서 이런 큰 욕조가 있는지 물어보니 ‘넓은 욕조에 혼자 들어가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느껴보기로 하고 욕실에서 나왔다.

2층에 올라가려고 계단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쿠라씨를 보며 말했다.

“사쿠라씨.”

“응?”

“어째 집을 사려고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요.”

내 말에 사쿠라씨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하셨다.

“그래? 하지만 미리 집의 구석구석을 알아두면 편하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자자, 어서 2층으로 올라가자. 이제 집 구경도 곧 끝나니까.”

“네......”

나는 사쿠라씨에게 등을 밀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오니 눈앞에 복도가 보였고, 그 복도를 중심으로 양 쪽에 2개씩 총 4개의 방이 있었다. 그 중 3개는 빈방이고 나머지 한 개는 앞으로 내가 쓸 방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 구경을 하지 않고 그냥 1층으로 내려갔다. 사쿠라씨가 따라오면서 말하셨다.

“너의 방은 안 보는 거야?”

“그런 건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요.”

“그럼 지금부터 뭘 할 건데?”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미방에서 뒹굴고 싶어요.”

“...................”

“어째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계시는 건데요.”

“아니, 실제로 그렇잖아. 자기가 쓸 방을 안 보고 거실에서 뒹굴겠다니.”

다다미방의 문을 열면서 나는 말했다.

“저는 즐거움은 가장 마지막에 두는 성격이거든요.”

“흐암..........”

하품이 저절로 나왔다.

“이걸로 몇 번째인지 알고 있어?”

“글쎄요. 한 3회?”

“10회째야.”

“아, 그런 가요.”

나와 사쿠라씨는 지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아니, 보고 있었다. 집 구경을 끝내고 거실에서 TV를 보기 시작했지만 재미없는 프로그램들뿐이라 금방 지루해졌다. 그래서 나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지루함을 어떻게 없애버릴까 생각을 하다가 나는 명안을 떠올렸다.

“사쿠라씨.”

“응?”

TV를 보고 계시던 사쿠라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왜?”

“하츠네 섬을 좀 둘러보고 싶어서요.”

“흐음......그래?”

“네. 여기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밖에 나가서 섬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쿠라씨는 잠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확실히 그렇겠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럼 나는 남아 있는 일을 처리해 볼까나~”

“응? 무슨 일이 있으신데요?”

내가 고개를 돌려 사쿠라씨를 보며 물으니 사쿠라씨는 손가락으로 V 사인을 그리며 대답하셨다.

“너의 입학 수속을 해야지.”

“아.....그렇군요.”

“8시까지는 돌아와야 해. 저녁 약속 잊은 건 아니겠지?”

분명히 오늘은 옆집의 아사쿠라家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강제였지만 싫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다 보니 잊고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정말이지.... 8시까진 꼭 돌아와야 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대장!”

나는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나.”

나는 일단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결정하고 발을 움직였다.












“후우.............”

지금 나는 벤치에 앉아있다. 동네를 두 바퀴 정도 돌고 난 후에 주변 지리는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 뒤로 계속 걸어 지금 이곳, 사쿠라 공원에 도착했다.

사쿠라 공원은 많은 벚꽃나무들로 봄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내가 있던 세상은 가을이었지만 이곳은 이제 봄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곳이 다른 세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앉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좀 있는 맑은 날이다.

“1년 내내 벚꽃이 지지 않는 다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나는 예전부터 벚꽃나무를 좋아했다. 만발했을 때 벚꽃나무의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금방 벚꽃이 져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감정은 느낄 수 없다. 1년 내내 벚꽃이 피어있으니까. 바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함 때문에 그런지 약간 졸려서 기지개를 폈다.

“끄으~~”

기지개를 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응? 갑자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몇몇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을 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또다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부르는 건가. 일단 들린다는 말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란 건데.....”

흥미가 생긴 나는 귀를 기울이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 근처일 텐데.....”

나는 길에서 벗어나 벚꽃나무 사이를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점점 노랫소리는 크게 들려왔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는 있지만 좀처럼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슬슬 사람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걷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눈 앞에는 지금.........

“여긴............”

지금 내 눈 앞에는 벚꽃나무가 보인다. 주변에 있는 벚꽃나무들이 아닌, 그것들보다 훨씬 큰 벚꽃나무가 보였다.

“저기는.....”

그 큰 벚꽃나무 주변엔 다른 벚꽃나무들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 넒은 공터의 중간에 큰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내가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눈을 뜬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군. 이곳 사쿠라 공원에는 특별히 길을 따라서 걸을 필요가 없던 거였어. 어떻게 걷든지 목적지엔 도착할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터 중심에 있는 벚꽃나무 근처에 누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인가? 노래를 부른 사람이.”

나는 가까이 가지 않고 벚꽃나무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며 큰 벚꽃나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보기로 했다. 옆으로 몇 걸음 옮기자 그 사람의 모습이 잘 보였다.

‘......여자 아이잖아?!’

큰 벚꽃나무 근처엔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허리까지 오는 붉은색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오토메 누나와는 또 다른 미인이었다.

그녀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의 가슴부분엔 적당한 크기의 연녹색 나비모양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하얀색의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에는 파란색의 리본이 달려 있었다.

오토메 누나가 ‘평온하고 단정한,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녀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은 청순가련’이었다.

‘우와.... 오토메 누나 이외에도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 세계에 와서 정말 다행이다!!’

혼자서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이런 미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토메 누나와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 ”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밝고 조용했다. 아무리 화가나 있는 사람도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풀릴 게 틀림없다.

“ ~~♪♪ ”

노래 가사나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걸 알고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가창력에도 조금 놀랐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르네. 가수급 수준인데? 아, 정말 아이돌 가수일지도.’

그녀는 아이돌 가수라고 할 만큼의 미모와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거긴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메이크업 같은 걸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화장을 하는 예전 세계의 여성 가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 ~~♪♪ ”

그녀는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감상하기로 했다. ‘할 수 있을 때 하라!’. 나의 신조다.

‘노래도 잘 부르는데 거기다가 미소녀! 저 사람의 남자친구인 사람은 정말 행복하겠는 걸.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상에 푹 빠져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멈췄다.

‘.....어라? 끝난 건가?’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

“...................”

“.....우와앗?!?!?!”

“꺄아-!!!”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아까 전까지 큰 벚꽃나무 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미소녀가 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갑자기 놀라서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그녀도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넘어짐과 동시에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었기 때문이다.

“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놀라신 것 같네요.”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상태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뇨. 제가 갑자기 앞에 있어서 놀라셨던 모양이에요.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최대한 빨리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일단 상황을 분석해보자..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방금 전까지 큰 벚꽃나무 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그걸 감상하고 있었지...’

“저.....저기......”

‘눈을 감고 계속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멈춰서 눈을 떠보니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지....’

“저....저기요......”

‘그럼 아까 전에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 건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서 이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인가? 음... 그랬던 것 같군....’

“저기... 이제 그만 제 말을 들어 주시지 않으실래요?”

“음......핫!! 아, 죄...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아뇨, 저 때문에 잠시 혼란에 빠지신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난 반사적으로 거기에 맞춰 똑같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뇨 아뇨. 이쪽이야 말로.......”

서로 사과를 한 다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이 사람에 푹 빠질 것만 같았다.

“저기.......노래.........”

“.....네?”

“노래....들으셨나요?”

그녀는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나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어쩌다보니.........”

“죄....죄송해요. 잘 부르지도 못 하는데 괜히....”

그 말에 나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정말 잘 부르시던데요. 놀랐어요. 이 정도로 잘 부르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거든요.”

“아니에요.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실력은 아닌걸요.”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혹시 가수 아니야?’라고 생각했었을 정도라니까요.”

“가수라니 그런... 전 평범한 학생일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묻기로 했다.

“...학생이라면...........카자미 학원의?”

‘카자미 학원’이란 단어에 그녀가 반응을 보였다. 나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그곳 학생이신가요?”

“음.... 학생이라면 학생이라고 할 수 있고, 아니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학원 내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아직은 학생이 아니거든요. 곧 카자미 학원에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그렇게 말하시는 걸 보니 그쪽은 이미 카자미 학원 학생이신 것 같네요?”

“아, 네.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 시라카와 코토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도 같은 행동을 보이며 말했다.

“아, 저는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이 될 사쿠라이 세이토라고 합니다. 이쪽이야 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시라카와 코토리란 미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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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포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라카와 코토리는 D.C.2보다 50년 전의 시대의 인물

...이지만 내보내는 건 작가인 본인맘.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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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짜잔~ 여기가 바로 요시노家. 앞으로 니가 살게 될 집이야~~”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양 팔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왼쪽에 있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었다. 부실공사가 되어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다지 비싸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집이었다.

“어때? 좋지? 좋지?”

“아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물어보신들...”

어느덧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다가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나의 감상을 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 밀어내며 나는 대답했다.

“체엣- 앞으로 살아갈 집이니깐 첫 느낌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조잔하긴.”

“아니, 감상이고 뭐고 할 게 있나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집인데요.”

나의 말을 들은 사쿠라 씨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건 틀렸어!!”

“..........뭐가요.”

“그렇게 메마른 감정을 가지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 어쩜 그렇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니?!”

“....................”

어이가 없어서 입을 조금 벌리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뭔가 자신의 의견을 팍팍 내야할 거 아니야!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만족해서는 성장할 수 없어!!”

“....뭔가 주제가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쿠라 씨가 화가 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약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단 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난 단지 평범한 집을 보고 ‘평범하다.’라고 말한 것 뿐 인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라? 사쿠라 씨.”

사쿠라 씨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 그 존재를 봤는데...........

“...................”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세상 사람들에겐 각자의 기준이 있다. 어떤 것의 좋고 나쁨을 따질 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기준을 중심으로 ‘이건 나쁘다.’ ‘이건 좋다.’라고 말을 한다.

어쨌든, 나는 한 명의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연갈색 머리를 커다란 분홍색 리본으로 묶어두고, 학교의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데 흐트러짐 없이 매우 단정했다. 가볍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느껴졌고, 매우 야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오토메 오랜만이야.”

목소리를 듣고 뒤로 돌아본 사쿠라 씨는 그 소녀를 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행을 떠나신 뒤로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었어요. 이제 돌아오신 건가요?”

“응. 대충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거든. 그래서 돌아왔어.”

“그러시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이라고 할 건 없었어. 여행하는 건 자주 있었던 일이고,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으니깐.”

“그러셨나요. 그거 다행이네요. 여행은 무엇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게 최고죠.”

사쿠라 씨와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 두 사람은 꽤나 친분이 있는 관계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게 무안해서 나는 사쿠라 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화를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있다는 걸 잊으시면 좀 곤란한데요.”

“응? 아아 미안, 미안. 오랜만에 오토메랑 이야기를 해서 깜빡하고 잊고 있었네.”

“사쿠라 씨? 그 쪽은....?”

그녀도 나의 존재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흠.... 이 정도의 미인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선 찾기 힘든데 말이지...’

그러게 생각하고 있던 사이에 사쿠라 씨가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이쪽은 사쿠라이 세이토군. 앞으로 나랑 같이 살 아이야.”

“예? 사쿠라 씨랑 같이 살 거란 말인가요?”

사쿠라 씨의 말에 그녀가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아이가 갑자기 사쿠라 씨와 함께 산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 걸까.

“응.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내가 얘를 맡아야하거든.”

“그거 참 힘드시겠네요...”

“응. 많이 힘들겠어. 남자 아이들이란 좀처럼 사람의 말을 잘 안 들으니깐.”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자니 내가 나쁜 사람이란 이미지가 그녀의 머릿속에 박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어라, 듣고 있었어?”

‘그 말은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단 말인가요.....’

약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쿠라이 세이토라고 합니다. 앞으로 요시노 사쿠라 씨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사쿠라 오토메라고 합니다. 카자미 학원 본교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쿠라 씨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나도 그 답례로 인사를 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하. ‘아사쿠라’란 성을 쓰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란 말이지. 그렇단 말은 옆집 식구들이 ‘아사쿠라’란 성을 쓰고 있단 말이군. 그래서 사쿠라 씨가 내 이름이 문제라고 했던 거구나.’

그제야 나는 사쿠라 씨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사쿠라 씨는 내가 저 집 사람들의 친척관계가 아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쓰려고 하셨던 거다. 다행히 내 성을 ‘사쿠라이’로 바꾸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것에 대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건 그렇고, 아사쿠라 씨. 학생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했죠? 고생 많으시겠어요. 학교엔 문제아가 한두 명씩은 꼭 있던데, 에.... 카자미 학원이랬나? 거기엔 그런 학생이 없나요?”

“.........................”

첫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내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방금 내 말은 깔끔하게 무시당한거야?’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은 학생회장에 걸 맞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저기... 아사쿠라 씨?”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

갑자기 거부당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옆집에 살다보면 그 아이와도 만날 일이 있을 텐데 그 아이랑 저를 부르는 게 둘 다 ‘아사쿠라 씨’면 만약 두 사람이 같이 있을 경우에는 좀 곤란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의 호칭이 모두 ‘아사쿠라 씨’이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부르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일단 여기선 그 뒤의 일까지 생각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당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를 듬직함을 느꼈다.

‘과연 학생회장의 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이군.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토메’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면인데 저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으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쿠라 씨가 해결책을 말해주셨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

“어떤 방법인데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하셨다.

“세이토 군은 앞으로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생으로 지낼 거야. 그러니까 오토메가 세이토 군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거지.”

“헤에.. 그런 거였군요. 제가 누나였군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부속중학교에 다닌다고 했었죠. 잊고 있었네요.”

우리 두 사람의 말에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오토메 누나’라고 부르면 될 거고, 오토메는 그냥 편하게 ‘세이토’라고 부르면 될 거야.”

“아니, 그것도 좀.........”

내 말에 사쿠라 씨는 불만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그럼 뭐야. 딱히 생각나는 방법도 없잖아? 그냥 내말대로 해.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야.”

“으음....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누나’란 호칭을 쓰기에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친하게 ‘누나’나 ‘형’같은 호칭을 쓰는 건 꽤나 어렵다. ‘니가 뭔데 어디서 친한 척이야.’같은 말을 들어 오히려 사이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선뜻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거 좋겠네요. 그럼 그걸로 하죠.”

라고 말하며 수긍했다.

“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 그냥 사쿠라 씨의 말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근데 순간 반말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녀의 말투 변화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태클을 걸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할 수 없군....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오토메 누나.”

“음... 호칭은 좋은데 존댓말은 좀 그렇다. 그냥 편하게 반말 해도 괜찮아.”

“아니, 이쪽이 곤란한데요.”

“괜찮아, 괜찮아. 이 누님이 괜찮다고 하는 거니깐 괜찮은 거야.”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치면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

“아니,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야.”

그냥 넘어가려는 나를 그녀는 막아섰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내 말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쳇. ‘무난히 넘어간다.’라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알겠지? 이제부턴 그냥 편하게 말하는 거다? 이건 학생회장의 명령입니다. 알겠죠?”

“에에. 그건 권력남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게 우리 학생회의 임무니까 이건 권력남용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양 손을 가져다 대고 가슴을 앞으로 당당히 내밀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저항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그럼 앞으로 편하게 부르겠어. 이러면 되겠지?”

“응! 나는 착한 아이를 좋아해요~”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쿠라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근데 오토메. 오늘 학생회 일이 있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오토메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누가 봐도 교복차림이었다.

“그거 교복이지? 주말에도 학생회 일이 있어?”

“응. 회의가 있거든. 이제 곧 입학식이니 입학식 준비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주말에도 가끔 회의를 해.”

“호오. 그거 고생이 많겠네.”

“응. 2~3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는데 매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래서 이 누님은 많이 힘들단다.”

반 장난으로 우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면 아까 전에 보였던 ‘늠름한 학생회장’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어리광부리는 소녀’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사람이 학생회장이어도 괜찮을 걸까....’

조금은 진지하게 학교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의 대화에 사쿠라 씨가 끼어드셨다.

“그럼 어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아 맞다!! 빨리 가지 않으면 마유키한테 혼나는데!!”

오토메 누나는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생각 난 건지 오른 주먹으로 왼손 손바닥을 치더니 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아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어서 가지 않으면 늦겠어~~”

“그럼 어서 가봐. 여기서 잡담을 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중요하잖아?”

“응! 그럼 먼저 갈게~”

오토메 누나는 우리를 뒤로 하고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하자~!! 우리 가족들한테 널 소개해줘야 하니까~ 알겠지~?!”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 대답은? 나한테 거부권은 없는 건가?!”

“뭐 어때. 어차피 너를 소개해 주러 가야했었으니까.”

“예? 어째서요?”

“아사쿠라家와 요시노家는 친척관계인걸.”

“.......그런 거였습니까.”

“응. 그런 거야.”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나와 사쿠라 씨는 앞으로 내가 생활할 요시노家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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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5화.

....정말 나 어디까지 써둔거지. 체크를 안 해서 기억이 안 나네. =-=;;;

-세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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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눈이 내리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느끼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으로 뒤덮인 이 세상에 홀로 있다.

이곳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없다. 나 이외의 존재는 다 사라진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 내가 끼어든 것일지도.

지금 나는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그 사람의 웃는 얼굴.

그 사람의 우는 얼굴.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본 그 사람의 모습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눈을 뜨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꿈을 꾼 것 같다.

‘평소에 꾸던 꿈이랑은 다른 내용이지만 이번에도 꽤나 이상한 꿈이군... 근데 내가 꾸는 꿈들엔 의미가 있는 걸까?’

세상 사람들은 꿈에 대해서 신경을 잘 안 쓴다. 길몽이다 흉몽이다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꾼 꿈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특수한 꿈’을 꾼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 ‘특수한 꿈’이란 것은, 같은 내용의 꿈이란 것이다. 거기에 매일같이 그것이 반복된다. 마치 노래가 무한 반복되도록 설정해둔 음악재생기처럼.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꿈을 꾸고 난 후에 느껴지는 이 쓸쓸함은 도대체 뭐냐고...’

깨어난 후 느껴지는 가슴 한 곳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처음엔 무시해왔지만,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고 계속해서 느끼는 쓸쓸함이 나를 괴롭혔다.

‘.........혹시 방금 내가 꾼 꿈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도중, 하나의 결론이 나왔지만 나는 자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꿈을 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그 ‘특수한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계속 생각해왔다. 언젠가 이 쓸쓸함의 진정한 뜻을 알려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난 ‘그 사람’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요시노 사쿠라.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집에 찾아온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 외모. 하지만 그 작은 외모에 비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나를 압도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난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이라고.

그래서 난 그녀를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스윽)

“..............???”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에 반응해 눈을 떠보니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어, 깼어?”

“사쿠라씨.............”

내 눈 앞에는 사쿠라씨가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의 허전함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상황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꿈을 꾼 것 같아요.”

“응. 그런 것 같아 보였어.”

나의 말에 사쿠라씨는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쓸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 했다.

“별로 좋은 꿈은 아닌 것 같아요.”

“응. 그럴 것 같았어.”

또 다시 침묵.

나는 누워있는 채로 하늘을 보았다. 이런 나의 기분과는 정반대로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거기에 바람도 가끔씩 불어왔다. 날씨는 정말 좋았지만, 나의 기분은 더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날씨라도 좋아서 다행이군. 날씨마저 안 좋았다면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겠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날씨가 좋네요.”

그러자 사쿠라씨는 마찬가지로 하늘을 쳐다본 후 말하셨다.

“응. 좋은 날씨네. 산책하기 딱 좋겠어.”

‘좋아. 이번엔 성공이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면서 다음 화제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러던 도중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응? 지금 내 시선의 방향으로 보건데, 지금 난 뭔가를 베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 머리가 있던 장소를 보았다. 그곳에는 사쿠라씨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쿠라씨의 다리가 저기에 있다는 말은.....’

“응? 왜 그래?”

사쿠라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나는 그녀의 양다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무릎베개 해주셨던 겁니까?”

“응. 그냥 누워있으면 안 좋으니까.”

“...................”

“왜? 싫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싫은 건 아닌데요.”

“그럼 상관없잖아.”

“뭐... 그렇겠네요.”

나는 사쿠라씨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번 대화로 분위기는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암울한 분위기는 벗어난 것 같군. 다행이다.’

“하나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사실 지금 머리가 욱신거리고 있거든요? 아까 전에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별거 아닌데? 그냥 이 가방으로 너의 머리를 강하게 쳤을 뿐이야.”

사쿠라씨는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올 때 가져왔던 큰 가방을 손으로 가볍게 몇 번 치면서 말하셨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입을 벌리고 약간 놀랐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기절하기 전에 FPS에서 들릴법한 중년의 아저씨의 목소리 톤의 말이 들렸던 거군.’

“세이토 군. 기분은 좀 어때?”

“예? 아...... 별로 나쁘진 않아요. 머리가 좀 아픈 것 빼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 기억 속에 있던 평소의 그녀의 표정이었다.

“일단 상황을 좀 정리해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

.

.

.

 

“이제 이해가 됐어?”

“예... 대충은요.”

30분 정도의 대화를 통해 나는 머릿속의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던 ‘세계’가 아니다. 그곳과는 ‘다른’ 세계이다.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지만,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쪽 세계’에 존재하는 ‘하츠네 섬’이란 곳이다. 사쿠라씨의 말에 의하면 이곳엔 벚꽃나무가 많은데, 1년 내내 벚꽃이 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명소라고 한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벚꽃나무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나무들은 모두 벚꽃이 만개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의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이 섬에 ‘아사쿠라’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내가 만약 ‘아사쿠라 세이토’란 이름을 그대로 써버리면 여러 가지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고 사쿠라씨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만 바꾸기로 했는데, 사쿠라씨가 ‘사쿠라이’라는 성을 추천해줬고, 나는 그대로 그걸 쓰기로 했다. 이쪽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이제부터 ‘사쿠라이 세이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론 의식주문제.

그것은 내가 사쿠라씨의 집에서 같이 사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적당히 음식을 만들 수 있기에, 식사는 내가 만드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음으론 앞으로의 나의 생활문제.

근데....................

“이것만큼은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는 사쿠라씨에게 항의했다.

“어째서?”

“아니, 아시다싶이 전 ‘저쪽 세계’에선 대학생입니다.”

“근데?”

“그런데 어째서 제가 이쪽 세계에서는 ‘중학생’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쪽이 더 재미있잖아. 안 그래?”

“....................”

“우와. 저 일그러진 표정 좀 봐....”

사쿠라씨의 말에 나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농담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쿠라씨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치면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말하셨다.

“이런 이유는 어때?”

“.......일단 듣겠습니다.”

“여기엔 부속 중학교와 본교만 있거든. 그래서 대학생으로 생활하려면 이 섬을 나가야만 해.”

“즉, 제가 이 섬에서 생활해야하니까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포기하라는 말?”

“응.”

사쿠라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섬 밖으로 나갔을 때의 지원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생활하면 안 될까요. 대학생이나 되는 놈이 중학생으로 생활하는 건 좀.....”

“에에~? 그럼 재미가 없는데~~”

“.......................”

“아, 또 표정이 일그러졌어.”

“당연하잖아요.”

“어쨌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너무하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사쿠라씨의 말대로 하기로 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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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화를 올렸쿤...

이거 몇 화까지 써뒀더라. 어서 다음 화도 써야하는데...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3화>

30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사쿠라씨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사쿠라씨가 말한 것을 떠올려보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한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단 말이죠?”

“응.”

사쿠라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거긴 어떤 곳인데요?”

“혹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 알고 있어?”

“..........아무 말 말고 그냥 가서 보란 말이죠?”

“정답~”

대놓고 한숨을 쉬면 사쿠라씨한테 혼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제가 거기에 가야하는 이유는요?”

내 말을 들은 사쿠라씨는 살짝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건 나한테 물어봐야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 데요?”

“너 자신.”

사쿠라씨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심장 쪽으로 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쿠라씨는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안 간다고 말할 상황은 아닌 것 같네. 안 가겠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갈 눈치야.’

나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사쿠라씨를 보며 말했다.

“그곳은 재미있는 곳인가요?”

“응?”

사쿠라씨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무래도 내 말을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쿠라씨가 저한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재미있는 곳인가 물어봤었어요.”

사쿠라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했다.

“음... 어떻게 보면 썩 좋은 곳은 아니니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그 말에 나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몸이 휘청거렸다.

“괜찮아?”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데요.”

“그런 말 하면 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포기할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않았겠죠. 안 그런가요?”

“뭐, 비슷해. 그럼 결정한 거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3분 줄게.”

“제가 3분 라면입니까!!!”

“요즘 라면은 4분 30초던데?”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쨌든, 3분 줄게. 그 이상은 못 기다려줘.”

그 말을 끝으로 사쿠라씨는 눈을 감았다.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아까 꿨던 꿈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아까 꿈에 나온 소녀는 사쿠라씨가 아닐까?’

나는 사쿠라씨를 봤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과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을 비교해봤다.

‘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3분 지났어.”

“에?”

내가 사쿠라씨와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던 사이에 3분이 지나버린 것이다.

‘아직 생각할 게 더 있었는데...... 여기에 시간을 너무 썼나.......’

“...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거에요!!!”

“그건 니가 알아서 시간 조절을 잘 했어야지. 내 잘못이 아냐.”

‘아아... 아직 생각할 게 많은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자.”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좌절하고 있던 나는 사쿠라씨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사쿠라씨는 어느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지금 당장 가야하나요? 조금만 더 좌절모드로 있으면 안 될까요?”

사쿠라씨는 황당했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아무 말 없으시다가, 살짝 화를 내시며 말했다.

“한심한 소리하지 말고, 어서 준비해. 남자가 한번 간다고 했으면 끝을 봐야지.”

“뭔가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빨리 준비나 해!!”

‘네~’라고 대답하고 떠날 준비를 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라?’

문뜩 한 가지를 깨달은 나는 사쿠라씨를 불렀다.

“저기, 사쿠라씨?”

“또 뭐야?!”

아직도 화가 나신 사쿠라씨의 모습에 나는 움찔했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 준비해야 할 게 뭔지 여쭈어 보려고요....”

“준비물? 뭘 준비해야하는데?”

사쿠라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준비해야하는 게 있었나?”

“저한테 물어보신 들......”

“몸만 있으면 되지 않아?”

사쿠라씨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고 계셨다.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안 물어봤었는데, 지금 저희가 가려는 곳이 어디죠? 해외인가요?”

“아마 해외.”

“그럼 여권이 필요하지 않나요?”

“필요 없어.”

‘해외로 나가는데 여권이 필요 없다고?! 어째서!?’

생각을 하시면서 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고 계신 사쿠라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궁금한 게 몇 개 더 남았기 때문에 묻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돈은요? 돈은 필요하겠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이 세상에서 돈이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그럼 옷은요? 옷은 필요하겠죠?”

“나중에 필요하면 내가 사줄게.”

“................”

“..................”

잠깐의 침묵. 지금 나는 허무함만을 느끼고 있다.

“...............그럼 제가 준비해야하는 건 딱히 없단 말이네요?”

“응. 그렇게 되네? 지금 이대로 바로 가면 되겠어.”

‘뭔가 허무해....’

“좌절모드 금지.”

“.........헛!!”

사쿠라씨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실 바닥에 엎드리려고 하고 있었다. 똑바로 서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럼 이제 가자.”

“잠깐만요. 일단 집안 점검을 하고..........”

나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창문이 제대로 잠겨있나 확인하고, 화재의 위험은 없는지 살폈다. 그밖에 이것저것 확인하는데 30분정도 걸렸다.

“혹시.................결벽증?”

“아닌데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했다.

“어쨌든, 이제 가자. 나도 지쳤어.”

“그럼 어서 나가죠.”

“아니, 안 나가도 돼.”

“예?”

집을 나서려는 나를 사쿠라씨가 막았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 앉아봐.”

사쿠라씨는 거실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이거 보이지?”

사쿠라씨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가지고 왔던 갈색 가방을 보여주며 말하셨다.

“이게 왜요?”

“이게 도와줄 거야.”

“........?????”

나는 사쿠라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해야 할 행동들을 지시했다.

“이제 눈을 감아.”

“....이렇게요?”

내가 눈을 감은 것과 동시에

(퍼억!!!!!!!)

나는 머리에 충격을 받아 한순간에 기절했다. 의식을 잃을 때 환청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FPS게임에서 들을 법한 중년 아저씨의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드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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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귀찮으니 패스패스.

-세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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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내 이름은 말이지......”

“....................”

나는 지금 식탁에 앉아서 꼬맹이를 바라고 있다. 나는 마주보게 앉은 후에 꼬맹이가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꼬맹이는 이름을 말하는 것에 뜸을 드렸다.

“....................”

“....................”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압박감에 긴장을 했다. 양손에 주먹을 쥐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

“.....................”

하지만, 꼬맹이는 말은 하지 않고 히죽 히죽 웃고만 있었다. 기다리다 못 한 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손바닥으로 식탁을 치며 말했다.

“....언제 말해줄 거야?! 기다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아하하... 미안,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너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말하는 것을 잊고 있었네.”

꼬맹이는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치면서 ‘아하하하’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으으... 내가 이런 꼬맹이를 상대로 뭐하고 있는 거람. 냉큼 쫓아내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그냥 나가!’라고 말하려던 순간, 꼬맹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말했다.

“사쿠라.”

“.......응?”

“사쿠라. 내 이름.”

자신의 이름을 ‘사쿠라’라고 말한 존재는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걸까.

“그게 니 이름이라고?”

“응. 요시노 사쿠라. 그게 내 이름이야.”

“‘요시노 사쿠라’라.....”

요시노 사쿠라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잘 부탁해. ‘아사쿠라 세이토’군.”

“아...응...”

얼떨결에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손을 놓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웃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나는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일단 이름은 알아냈고, 이제 여기에 온 목적을 알아내야겠군. 뭐랄까... 범죄자와 취조자의 관계인 것 같은데?’

잡생각은 그만하고 요시노 사쿠라에게 말을 하려고 한 순간, 그녀가 먼저 나에게 말해왔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알고 싶겠지? 아사쿠라 세이토군?”

“뭐.... 그거야 그렇지만.... 어째서 그걸?”

“아까 말했지? 난 너에 대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심술사라도 되는 거......어? 잠깐, 그러고 보니...”

순간 나는 한 가지가 떠올라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아까 전에 있었던 대화의 내용들 중에서 마음에 걸리던 것이 하나가 있었다. 그건...

“......응??”

“분명히 아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지 않았었나...”

나는 아까 그녀가 나보고 ‘이래보여도 난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깐.’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 그러니깐 ‘꼬맹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 두었으면 좋겠는데.”

“...증거는?”

“음... 아쉽게도...”

“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증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확인 차 물어봤던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바로 결과다.

“...방금까지 반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왼데? 이렇게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이야.”

나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잖아요. 잘못은 잘못이니. 잘못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인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 불편하게 될 테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약간 능글거리며 말했다.

“헤에... 생각했던 것보다 예의바른 사람이었잖아?”

“최소한의 매너라고 생각합니다만.”

“..................”

“...................”

“아하하~ 생각보다 재미있는 아이였잖아~?”

그녀는 오른손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왼손으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렇게 웃긴가요? 제 생각엔 웃긴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체엣~’이라고 말하면서 약간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너는 ‘농담’이란 걸 모르는 구나~? 재미없게.”

“농담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여기에 온 목적을 알려주실래요? 요시노씨.”

“사쿠라.”

“네?”

“‘사쿠라’로 불러. 난 그게 편하니깐.”

“그렇지만....”

“본인이 그렇게 부르라고 했잖아. 시키는 대로 해.”

그녀는 검지로 내 이마를 탁 치면서 말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거참...막무가내인 사람이군. 할 수 없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나도 편하겠지 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난 후, 다시 말했다.

“이제 슬슬 여기에 오신 목적을 말해주지 않으실래요? 이제 새벽 4시거든요?”

“그럼 이제 자야할 시간 아냐? 아니지, 자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못 자게 한 사람이 누구더라.”

“아하하~ 넌 젊으니깐 하루 이틀정돈 안자도 문제없어~”

라고 말하며 넘어가시는 사쿠라씨. 난 거기에 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사쿠라씨가 ‘쯧쯧’거리시며 말하셨다.

“왜 그렇게 한숨을 자주 쉬는 거야? 그다지 좋은 습관 아니니깐 고치는 게 좋을 거야.”

“서론이 너무 길어서 그렇잖아요. 이래가지곤 며칠이 걸려도 본론에 들어가지 못 할 거 에요.”

“아.. 역시 너무 질질 끌었나...?”

장난치는 아이처럼 혓바닥을 살짝 내보이시는 사쿠라씨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사쿠라씨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셨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계속 서서 이야기 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네요.”

나와 사쿠라씨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전에 나는 접시에 과자를 채웠고, 우유도 다시 가져왔다.

“자,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볼까?”

“이제야 본론이군요...”

“거기, 쓸 때 없는 잡담은 하지 마.”

“죄...죄송합니다.”

“흠흠....”

사쿠라씨는 다시 헛기침을 하시더니,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을 시작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을 찾고 있었어.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거고.”

“‘어떤 사람’이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쉽게도 그건 알려줄 수 없어.”

“그거 참 아쉽네요.”

사쿠라씨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입이 심심하길래 나도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어쨌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 계속해서 찾고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 거야.”

“그 ‘어떤 사람’을 찾으려고 여행을 시작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어디보자.....”

사쿠라씨는 자신의 볼에 손가락을 대더니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친 후에 말하셨다.

“오늘로 5년째인가?”

“꽤나 오랫동안 여행하셨네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뭐... 목적 없는 여행이 아니니깐. 그 ‘어떤 사람’을 찾을 생각만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지냈어.”

“5년 동안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여행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인데, 여행이 재미있으셨다니 그거 참 다행이네요.”

나의 말에 사쿠라씨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셨다.

“어라, 나 걱정해주는 거야? 헤에~ 생각보다 마음씨가 곱잖아?”

“매너용 멘트죠.”

“.....................”

“......................”

순간 부엌이 조용해졌다. 거실에 있는 아날로그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와 밖에서 나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저기... 사쿠라씨?”

“나 삐졌어.”

“...에?”

사쿠라씨는 화난 표정을 짓고 계셨다.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사쿠라씨는 여전히 화가 난 모습 그대로 나에게 소리치셨다.

“삐졌어!! 뭐야 그게!! ‘매너용 멘트죠.’라니!!”

“아니, 그게....”

“아무리 그 말이 사실이라도 이럴 때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왜 분위기 파악을 그렇게 못 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제가 좀 둔하긴 둔하죠.”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그럼 뭔데요?! 전 잘못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순간적으로 ‘이 말은 하면 안 된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저 말을 했다면, 사쿠라씨한테 무슨 말을 들을지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그럼 저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이제부턴 가만히 듣기만 해.”

“우와... 그건 너무 하잖아요..”

“자업자득.”

사쿠라씨는 자신의 양손으로 팔짱을 낀 후 고개를 돌리면서 말하셨다. 이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알겠습니다. 듣고만 있을게요.”

“그 버릇, 고치라고 했지?”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잖아요. 몇 분 만에 고쳐지는 건 습관이라고 안 하잖아요.”

“말대답 하지 마. 듣고만 있으라고 했어.”

‘어쩌란 거야...’

“자, 그럼 여기서 결론.”

‘갑자기 결론입니까?!’

“나를 따라와.”

“......예?”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나를 따라와 달라고.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어.”

그날, 나는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보게 되었다.

나의 인생을 뒤바꾸어줄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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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바가 약간 고장나서 띄어쓰는 것이 좀 힘들다는. (.....)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1화>

“기다려!!!”

(벌떡!!!)

눈이 떠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상체를 일으켜서 앉아있었다.

“하아... 하아...”

눈이 크게 떠졌다. 조금 숨이 막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의 양 손바닥을 펼쳐봤다. 손바닥에는 땀이 많이 나고 있었다. 속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꿈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방이었다. 방바닥에는 언제 입었는지 기억 안 나는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곳곳에 책들이 놓여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진정하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어디보자, 분명히 꿈을 꾼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분명히........윽!!!”

(욱신!!)

방금 꾼 꿈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머리가 욱신거렸다.

“젠장, 뭐야. 왜 머리가....”

머리가 아프다.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욱신거린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욱신거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쳇......”

고개를 여러 번 흔들다보니 욱신거림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나는 양 손으로 뺨을 몇 번 쳤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근데 요즘 들어서 꿈을 자주 꾸는 것 같네....”

나는 꿈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꿈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들어서 꿈을 자주 꾸고 있다. 처음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제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하필 죄다 같은 꿈이냐고...”

그렇다. 나는 원래 꿈을 자주 꾸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귀찮을 뿐이니깐.

하지만 꿈들의 내용이 모두 같다면, 신경을 안 쓰고 싶어도 쓰게 된다. 최근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큰 벚꽃나무가 나오고, 한 명의 소녀가 나무 밑에 서있는 꿈을. 오늘도 어김없이 그 꿈을 꾼 것이다.

“언제까지 이 꿈을 꿔야 하는 거지?”

병원에 가서 몇 번이나 검사를 해봤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과 의사는 그냥 ‘무시하세요.’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쳇... 나보고 어쩌란 거야?”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천천히 일어섰다. 샤워를 할까 생각을 해봤지만, 귀찮아서 그냥 물 한 잔 마시고 자기로 했다. 방을 나와 거실을 통해서 부엌 입구까지 왔을 때,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띵~ 동~)

“..................”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다시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또 소리가 들렸다.

(띵~ 동~)

“.................”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다려봤다.

(띵~ 동~ 띵~ 동~)

“누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나보군.”

이 소린 분명히 초인종 소리다. 누군가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누구집 초인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띵~ 동~ 띵~ 동~)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크기를 따져보면, 이건 내 집 초인종 소리였다. 초인종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리의 시간차로 봐선 내가 집에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띵~ 동~ 띵~ 동~)

귀찮은 그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게다가 밖에 있는 사람이 화가 났는지 소리간의 시간차가 줄어들고 있었다.

(띵~ 동~ 띵~ 동~)

(띵~ 동~ 띵~ 동~)

(띵~ 동~ 띵~ 동~)

“젠장. 이 시간에 도대체 누구야?”

나는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3시 35분. 한참 자고 있어야하는 시간이다.

(띵~ 동~ 띵~ 동~)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할 수 없이 부엌에 들어가려다가 현관 쪽으로 발을 돌렸다. 현관까지 가면서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내가 현관에 도착할 때까지 초인종 은 계속해서 울렸다.

‘쳇... 날 귀찮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알려주도록 하지. 각오해라!!’

(찰칵!)

나는 현관문을 재빠르게 열었다. 그 순간.

“아, 드디어 문을 열었네. 늦었잖아. 뭐하고 있었던 거야?”

라고 말을 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 한 꼬마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해줬다.

“뭐하는 녀석이야?”

.

.

.

.

.

키는 작다. 밖이 어두워서 잘 모르겠지만, 노란색계열의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누어서 파란색리본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몸에는 갈색계열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또 손에는 꽤나 큰 가방이 쥐어져있었다.

한마디로, 평범한 꼬마는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에 새벽부터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것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나는 꼬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뭐하는...."

“실례 하겠습니다~”

이 녀석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곳이 자기 집인 듯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나는 그런 녀석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저 녀석 뭐하는 녀석이야? 왜 남에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고......어라? ...들어간다고?’

난 그제야 꼬마가 멋대로 내 집에 들어간 것을 눈치 챘다. 나는 바로 꼬마를 쫓아가면서 말했다.

“자...잠깐! 어딜 멋대로 들어가는 거야! 여긴 내 집이란 말이야! 당장 나가!”

그러자 꼬맹이는 뒤돌아서면서 말했다.

“여기가 니가 살고 있는 집 인건 알고 있어. 혼자 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이 시간에, 이렇게 연약한 숙녀에게, 밖에 나가라고 하는 거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꼬맹이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엉뚱한 말이 속을 내가 아니다.

“그게 멋대로 들어온 사람이 할 말이냐!!”

“아하하... 안 넘어가네..”

“당연하지!!”

나는 그렇게 외치곤 상황 파악을 위해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그냥 내보내면 이 녀석이 동네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을 할지 모르겠군. 일단 이야기를 나누어서 무슨 일로 왔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다시 꼬맹이를 봤는데...... 없었다.

“....어? 어딜 간 거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꼬맹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꼬맹이가 내 방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뭐하는 거냐?”

“잠시 방에 가서 조사를 했었어.”

“....무슨 조사?”

“그건 말이지...... ‘비밀’이야.”

“.....................”

이마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이 이상으로 상대를 했다간 곤란한일에 얽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꼬맹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를 보며 말했다.

“저기~ 나 배고픈데 뭔가 간식으로 먹을 만한 거 없어~??”

“없어.”

“에에?! 어째서~?! 혼자서 살면서 먹을 걸 비축해두지 않는 이유는 뭐야~?!”

“너한테 줄 건 없다는 말이야.”

그러자 꼬맹이는 볼을 부풀리며 화를 냈다.

“체엣~~~~! 치사해!!”

“마음대로 말해라. 나는 살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야.”

“체엣~ 실망이야~!!!!!!”

“실컷 실망해. 난 관심 없으니깐.”

그렇게 말하지 꼬맹이 녀석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누가 어린애 아닐까봐....’

나는 한숨을 쉬며 부엌으로 갔다. 그러자 꼬맹이 녀석도 내 뒤를 따라왔다. 쉬지 않고 말하면서.

“뭔가 주는 거야? 주는 거야?”

“줄 테니깐 이제 좀 조용히 해.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겠다.”

“응! 조용히 할게!!”

꼬맹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고? 나의 귀중한 식량이 줄어드니깐.

‘하아... 아까운 내 식량... 하지만 이걸로 저 녀석을 잠시 붙잡아 둘 수 있겠지..’

나는 찬장에서 쿠키를 꺼내서 접시에 적당히 넣어서 식탁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꼬맹이는 재빠르게 의자에 앉아서 쿠키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꺼내서 컵에 따랐다. 컵을 주니 한 손으론 쿠키를 집어 먹고, 다른 한 손으론 컵을 들고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쿠키를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꽤나 고팠던 모양이다.

“천천히 먹어. 뺏어 먹을 사람은 없으니깐. 필요하면 더 줄 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아, 그래? 그럼 느긋하게 먹지 뭐.”

그렇게 말하더니 컵을 내려놓고 쿠키를 한 조각 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본 후, 나에게 한마디씩 던진 후에 먹기 시작했다.

“이건 모양이 이상해.”

“여긴 다른 부분에 비해서 조금 탔네?”

“아, 이건 예쁘게 생겼네.”

등등 쿠키 한 조각 당 코멘트가 한 마디씩 나왔다. 참다못한 내가 한 마디 했다.

“저기 말이야.”

“응?”

“일일이 따지면서 먹는 거, 안 귀찮아?”

“느긋하게 먹으라면서? 그래서 천천히 쿠키를 살펴보면서 먹고 있잖아.”

“그런 짓을 하라고 한 적은 없다만?”

“내 마음이야.”

“아, 그래? 마음대로 해.”

나는 포기하고 이 녀석이 쿠키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는 맛에 대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쿠키를 집어 들곤 유심히 살펴보다가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린 후, ‘이건 좀 텁텁해.’라던가 ‘여기선 탄 맛이 느껴져.’등의 말들이 나왔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거지.. 난 그냥 물 한 잔 마시고 자려고 했을 뿐인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별로.”

“흐음.... 그래? 그럼 상관없고.”

“..............”

“(우물 우물)”

이제는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한다.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선 지겨워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어이, 꼬맹이.”

“(우물 우물)”

“야, 꼬맹이.”

“(냠 냠)”

“내 말이 안 들려? 꼬.맹.아?”

“.............후아. 잘 먹었다~”

꼬맹이는 컵을 들어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다 마셨는지 컵을 식탁에 내려놓더니 나를 보면서 꼬맹이는 말했다.

“자꾸 ‘꼬맹이’라고 하지 마. 이래보여도 난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깐.”

“어딜 봐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야.”

“뭐... 그건 둘째 치고, 너 이름이 뭐야?”

“넌 레이디한테 이름을 물어볼 때는 자신이 먼저 말해야하는 예의도 몰라?”

‘레이디........인거냐.’

아무리 봐도 ‘레이디’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 이름은 아사쿠라 세이토. 나이는....”

“현재 대학교 1학년생.”

“................?!”

“그리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있음. 맞지?”

“맞다만, 어떻게 안 거야?”

“나한테 불가능이란 건 없어~ 난 너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있지~”

꼬맹이는 가슴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자랑스러운가 보다.

“알겠다, 알겠어. 자, 그럼 이제 그쪽의 이름을 들어볼까?”

“내 이름? 음..... 내 이름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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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둔 곳까지는 예약으로 하루에 하나씩 올릴거임.

...되겠지? (.....)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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