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눈이 내리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느끼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으로 뒤덮인 이 세상에 홀로 있다.

이곳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없다. 나 이외의 존재는 다 사라진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 내가 끼어든 것일지도.

지금 나는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그 사람의 웃는 얼굴.

그 사람의 우는 얼굴.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본 그 사람의 모습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눈을 뜨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꿈을 꾼 것 같다.

‘평소에 꾸던 꿈이랑은 다른 내용이지만 이번에도 꽤나 이상한 꿈이군... 근데 내가 꾸는 꿈들엔 의미가 있는 걸까?’

세상 사람들은 꿈에 대해서 신경을 잘 안 쓴다. 길몽이다 흉몽이다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꾼 꿈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특수한 꿈’을 꾼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 ‘특수한 꿈’이란 것은, 같은 내용의 꿈이란 것이다. 거기에 매일같이 그것이 반복된다. 마치 노래가 무한 반복되도록 설정해둔 음악재생기처럼.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꿈을 꾸고 난 후에 느껴지는 이 쓸쓸함은 도대체 뭐냐고...’

깨어난 후 느껴지는 가슴 한 곳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처음엔 무시해왔지만,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고 계속해서 느끼는 쓸쓸함이 나를 괴롭혔다.

‘.........혹시 방금 내가 꾼 꿈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도중, 하나의 결론이 나왔지만 나는 자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꿈을 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그 ‘특수한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계속 생각해왔다. 언젠가 이 쓸쓸함의 진정한 뜻을 알려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난 ‘그 사람’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요시노 사쿠라.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집에 찾아온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 외모. 하지만 그 작은 외모에 비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나를 압도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난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이라고.

그래서 난 그녀를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스윽)

“..............???”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에 반응해 눈을 떠보니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어, 깼어?”

“사쿠라씨.............”

내 눈 앞에는 사쿠라씨가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의 허전함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상황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꿈을 꾼 것 같아요.”

“응. 그런 것 같아 보였어.”

나의 말에 사쿠라씨는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쓸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 했다.

“별로 좋은 꿈은 아닌 것 같아요.”

“응. 그럴 것 같았어.”

또 다시 침묵.

나는 누워있는 채로 하늘을 보았다. 이런 나의 기분과는 정반대로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거기에 바람도 가끔씩 불어왔다. 날씨는 정말 좋았지만, 나의 기분은 더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날씨라도 좋아서 다행이군. 날씨마저 안 좋았다면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겠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날씨가 좋네요.”

그러자 사쿠라씨는 마찬가지로 하늘을 쳐다본 후 말하셨다.

“응. 좋은 날씨네. 산책하기 딱 좋겠어.”

‘좋아. 이번엔 성공이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면서 다음 화제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러던 도중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응? 지금 내 시선의 방향으로 보건데, 지금 난 뭔가를 베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 머리가 있던 장소를 보았다. 그곳에는 사쿠라씨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쿠라씨의 다리가 저기에 있다는 말은.....’

“응? 왜 그래?”

사쿠라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나는 그녀의 양다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무릎베개 해주셨던 겁니까?”

“응. 그냥 누워있으면 안 좋으니까.”

“...................”

“왜? 싫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싫은 건 아닌데요.”

“그럼 상관없잖아.”

“뭐... 그렇겠네요.”

나는 사쿠라씨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번 대화로 분위기는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암울한 분위기는 벗어난 것 같군. 다행이다.’

“하나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사실 지금 머리가 욱신거리고 있거든요? 아까 전에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별거 아닌데? 그냥 이 가방으로 너의 머리를 강하게 쳤을 뿐이야.”

사쿠라씨는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올 때 가져왔던 큰 가방을 손으로 가볍게 몇 번 치면서 말하셨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입을 벌리고 약간 놀랐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기절하기 전에 FPS에서 들릴법한 중년의 아저씨의 목소리 톤의 말이 들렸던 거군.’

“세이토 군. 기분은 좀 어때?”

“예? 아...... 별로 나쁘진 않아요. 머리가 좀 아픈 것 빼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 기억 속에 있던 평소의 그녀의 표정이었다.

“일단 상황을 좀 정리해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

.

.

.

 

“이제 이해가 됐어?”

“예... 대충은요.”

30분 정도의 대화를 통해 나는 머릿속의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던 ‘세계’가 아니다. 그곳과는 ‘다른’ 세계이다.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지만,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쪽 세계’에 존재하는 ‘하츠네 섬’이란 곳이다. 사쿠라씨의 말에 의하면 이곳엔 벚꽃나무가 많은데, 1년 내내 벚꽃이 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명소라고 한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벚꽃나무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나무들은 모두 벚꽃이 만개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의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이 섬에 ‘아사쿠라’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내가 만약 ‘아사쿠라 세이토’란 이름을 그대로 써버리면 여러 가지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고 사쿠라씨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만 바꾸기로 했는데, 사쿠라씨가 ‘사쿠라이’라는 성을 추천해줬고, 나는 그대로 그걸 쓰기로 했다. 이쪽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이제부터 ‘사쿠라이 세이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론 의식주문제.

그것은 내가 사쿠라씨의 집에서 같이 사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적당히 음식을 만들 수 있기에, 식사는 내가 만드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음으론 앞으로의 나의 생활문제.

근데....................

“이것만큼은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는 사쿠라씨에게 항의했다.

“어째서?”

“아니, 아시다싶이 전 ‘저쪽 세계’에선 대학생입니다.”

“근데?”

“그런데 어째서 제가 이쪽 세계에서는 ‘중학생’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쪽이 더 재미있잖아. 안 그래?”

“....................”

“우와. 저 일그러진 표정 좀 봐....”

사쿠라씨의 말에 나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농담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쿠라씨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치면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말하셨다.

“이런 이유는 어때?”

“.......일단 듣겠습니다.”

“여기엔 부속 중학교와 본교만 있거든. 그래서 대학생으로 생활하려면 이 섬을 나가야만 해.”

“즉, 제가 이 섬에서 생활해야하니까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포기하라는 말?”

“응.”

사쿠라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섬 밖으로 나갔을 때의 지원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생활하면 안 될까요. 대학생이나 되는 놈이 중학생으로 생활하는 건 좀.....”

“에에~? 그럼 재미가 없는데~~”

“.......................”

“아, 또 표정이 일그러졌어.”

“당연하잖아요.”

“어쨌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너무하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사쿠라씨의 말대로 하기로 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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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화를 올렸쿤...

이거 몇 화까지 써뒀더라. 어서 다음 화도 써야하는데...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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