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사쿠라씨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사쿠라씨가 말한 것을 떠올려보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한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단 말이죠?”
“응.”
사쿠라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거긴 어떤 곳인데요?”
“혹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 알고 있어?”
“..........아무 말 말고 그냥 가서 보란 말이죠?”
“정답~”
대놓고 한숨을 쉬면 사쿠라씨한테 혼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제가 거기에 가야하는 이유는요?”
내 말을 들은 사쿠라씨는 살짝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건 나한테 물어봐야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 데요?”
“너 자신.”
사쿠라씨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심장 쪽으로 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쿠라씨는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안 간다고 말할 상황은 아닌 것 같네. 안 가겠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갈 눈치야.’
나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사쿠라씨를 보며 말했다.
“그곳은 재미있는 곳인가요?”
“응?”
사쿠라씨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무래도 내 말을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쿠라씨가 저한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재미있는 곳인가 물어봤었어요.”
사쿠라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했다.
“음... 어떻게 보면 썩 좋은 곳은 아니니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그 말에 나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몸이 휘청거렸다.
“괜찮아?”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데요.”
“그런 말 하면 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포기할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않았겠죠. 안 그런가요?”
“뭐, 비슷해. 그럼 결정한 거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3분 줄게.”
“제가 3분 라면입니까!!!”
“요즘 라면은 4분 30초던데?”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쨌든, 3분 줄게. 그 이상은 못 기다려줘.”
그 말을 끝으로 사쿠라씨는 눈을 감았다.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아까 꿨던 꿈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아까 꿈에 나온 소녀는 사쿠라씨가 아닐까?’
나는 사쿠라씨를 봤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과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을 비교해봤다.
‘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3분 지났어.”
“에?”
내가 사쿠라씨와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던 사이에 3분이 지나버린 것이다.
‘아직 생각할 게 더 있었는데...... 여기에 시간을 너무 썼나.......’
“...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거에요!!!”
“그건 니가 알아서 시간 조절을 잘 했어야지. 내 잘못이 아냐.”
‘아아... 아직 생각할 게 많은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자.”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좌절하고 있던 나는 사쿠라씨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사쿠라씨는 어느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지금 당장 가야하나요? 조금만 더 좌절모드로 있으면 안 될까요?”
사쿠라씨는 황당했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아무 말 없으시다가, 살짝 화를 내시며 말했다.
“한심한 소리하지 말고, 어서 준비해. 남자가 한번 간다고 했으면 끝을 봐야지.”
“뭔가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빨리 준비나 해!!”
‘네~’라고 대답하고 떠날 준비를 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라?’
문뜩 한 가지를 깨달은 나는 사쿠라씨를 불렀다.
“저기, 사쿠라씨?”
“또 뭐야?!”
아직도 화가 나신 사쿠라씨의 모습에 나는 움찔했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 준비해야 할 게 뭔지 여쭈어 보려고요....”
“준비물? 뭘 준비해야하는데?”
사쿠라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준비해야하는 게 있었나?”
“저한테 물어보신 들......”
“몸만 있으면 되지 않아?”
사쿠라씨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고 계셨다.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안 물어봤었는데, 지금 저희가 가려는 곳이 어디죠? 해외인가요?”
“아마 해외.”
“그럼 여권이 필요하지 않나요?”
“필요 없어.”
‘해외로 나가는데 여권이 필요 없다고?! 어째서!?’
생각을 하시면서 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고 계신 사쿠라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궁금한 게 몇 개 더 남았기 때문에 묻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돈은요? 돈은 필요하겠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이 세상에서 돈이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그럼 옷은요? 옷은 필요하겠죠?”
“나중에 필요하면 내가 사줄게.”
“................”
“..................”
잠깐의 침묵. 지금 나는 허무함만을 느끼고 있다.
“...............그럼 제가 준비해야하는 건 딱히 없단 말이네요?”
“응. 그렇게 되네? 지금 이대로 바로 가면 되겠어.”
‘뭔가 허무해....’
“좌절모드 금지.”
“.........헛!!”
사쿠라씨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실 바닥에 엎드리려고 하고 있었다. 똑바로 서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럼 이제 가자.”
“잠깐만요. 일단 집안 점검을 하고..........”
나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창문이 제대로 잠겨있나 확인하고, 화재의 위험은 없는지 살폈다. 그밖에 이것저것 확인하는데 30분정도 걸렸다.
“혹시.................결벽증?”
“아닌데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했다.
“어쨌든, 이제 가자. 나도 지쳤어.”
“그럼 어서 나가죠.”
“아니, 안 나가도 돼.”
“예?”
집을 나서려는 나를 사쿠라씨가 막았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 앉아봐.”
사쿠라씨는 거실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이거 보이지?”
사쿠라씨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가지고 왔던 갈색 가방을 보여주며 말하셨다.
“이게 왜요?”
“이게 도와줄 거야.”
“........?????”
나는 사쿠라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해야 할 행동들을 지시했다.
“이제 눈을 감아.”
“....이렇게요?”
내가 눈을 감은 것과 동시에
(퍼억!!!!!!!)
나는 머리에 충격을 받아 한순간에 기절했다. 의식을 잃을 때 환청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FPS게임에서 들을 법한 중년 아저씨의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드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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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귀찮으니 패스패스.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