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여기가 바로 요시노家. 앞으로 니가 살게 될 집이야~~”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양 팔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왼쪽에 있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었다. 부실공사가 되어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다지 비싸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집이었다.
“어때? 좋지? 좋지?”
“아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물어보신들...”
어느덧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다가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나의 감상을 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 밀어내며 나는 대답했다.
“체엣- 앞으로 살아갈 집이니깐 첫 느낌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조잔하긴.”
“아니, 감상이고 뭐고 할 게 있나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집인데요.”
나의 말을 들은 사쿠라 씨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건 틀렸어!!”
“..........뭐가요.”
“그렇게 메마른 감정을 가지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 어쩜 그렇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니?!”
“....................”
어이가 없어서 입을 조금 벌리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뭔가 자신의 의견을 팍팍 내야할 거 아니야!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만족해서는 성장할 수 없어!!”
“....뭔가 주제가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쿠라 씨가 화가 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약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단 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난 단지 평범한 집을 보고 ‘평범하다.’라고 말한 것 뿐 인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라? 사쿠라 씨.”
사쿠라 씨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 그 존재를 봤는데...........
“...................”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세상 사람들에겐 각자의 기준이 있다. 어떤 것의 좋고 나쁨을 따질 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기준을 중심으로 ‘이건 나쁘다.’ ‘이건 좋다.’라고 말을 한다.
어쨌든, 나는 한 명의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연갈색 머리를 커다란 분홍색 리본으로 묶어두고, 학교의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데 흐트러짐 없이 매우 단정했다. 가볍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느껴졌고, 매우 야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오토메 오랜만이야.”
목소리를 듣고 뒤로 돌아본 사쿠라 씨는 그 소녀를 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행을 떠나신 뒤로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었어요. 이제 돌아오신 건가요?”
“응. 대충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거든. 그래서 돌아왔어.”
“그러시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이라고 할 건 없었어. 여행하는 건 자주 있었던 일이고,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으니깐.”
“그러셨나요. 그거 다행이네요. 여행은 무엇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게 최고죠.”
사쿠라 씨와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 두 사람은 꽤나 친분이 있는 관계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게 무안해서 나는 사쿠라 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화를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있다는 걸 잊으시면 좀 곤란한데요.”
“응? 아아 미안, 미안. 오랜만에 오토메랑 이야기를 해서 깜빡하고 잊고 있었네.”
“사쿠라 씨? 그 쪽은....?”
그녀도 나의 존재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흠.... 이 정도의 미인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선 찾기 힘든데 말이지...’
그러게 생각하고 있던 사이에 사쿠라 씨가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이쪽은 사쿠라이 세이토군. 앞으로 나랑 같이 살 아이야.”
“예? 사쿠라 씨랑 같이 살 거란 말인가요?”
사쿠라 씨의 말에 그녀가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아이가 갑자기 사쿠라 씨와 함께 산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 걸까.
“응.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내가 얘를 맡아야하거든.”
“그거 참 힘드시겠네요...”
“응. 많이 힘들겠어. 남자 아이들이란 좀처럼 사람의 말을 잘 안 들으니깐.”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자니 내가 나쁜 사람이란 이미지가 그녀의 머릿속에 박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어라, 듣고 있었어?”
‘그 말은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단 말인가요.....’
약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쿠라이 세이토라고 합니다. 앞으로 요시노 사쿠라 씨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사쿠라 오토메라고 합니다. 카자미 학원 본교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쿠라 씨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나도 그 답례로 인사를 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하. ‘아사쿠라’란 성을 쓰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란 말이지. 그렇단 말은 옆집 식구들이 ‘아사쿠라’란 성을 쓰고 있단 말이군. 그래서 사쿠라 씨가 내 이름이 문제라고 했던 거구나.’
그제야 나는 사쿠라 씨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사쿠라 씨는 내가 저 집 사람들의 친척관계가 아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쓰려고 하셨던 거다. 다행히 내 성을 ‘사쿠라이’로 바꾸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것에 대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건 그렇고, 아사쿠라 씨. 학생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했죠? 고생 많으시겠어요. 학교엔 문제아가 한두 명씩은 꼭 있던데, 에.... 카자미 학원이랬나? 거기엔 그런 학생이 없나요?”
“.........................”
첫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내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방금 내 말은 깔끔하게 무시당한거야?’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은 학생회장에 걸 맞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저기... 아사쿠라 씨?”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
갑자기 거부당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옆집에 살다보면 그 아이와도 만날 일이 있을 텐데 그 아이랑 저를 부르는 게 둘 다 ‘아사쿠라 씨’면 만약 두 사람이 같이 있을 경우에는 좀 곤란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의 호칭이 모두 ‘아사쿠라 씨’이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부르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일단 여기선 그 뒤의 일까지 생각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당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를 듬직함을 느꼈다.
‘과연 학생회장의 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이군.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토메’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면인데 저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으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쿠라 씨가 해결책을 말해주셨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
“어떤 방법인데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하셨다.
“세이토 군은 앞으로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생으로 지낼 거야. 그러니까 오토메가 세이토 군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거지.”
“헤에.. 그런 거였군요. 제가 누나였군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부속중학교에 다닌다고 했었죠. 잊고 있었네요.”
우리 두 사람의 말에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오토메 누나’라고 부르면 될 거고, 오토메는 그냥 편하게 ‘세이토’라고 부르면 될 거야.”
“아니, 그것도 좀.........”
내 말에 사쿠라 씨는 불만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그럼 뭐야. 딱히 생각나는 방법도 없잖아? 그냥 내말대로 해.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야.”
“으음....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누나’란 호칭을 쓰기에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친하게 ‘누나’나 ‘형’같은 호칭을 쓰는 건 꽤나 어렵다. ‘니가 뭔데 어디서 친한 척이야.’같은 말을 들어 오히려 사이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선뜻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거 좋겠네요. 그럼 그걸로 하죠.”
라고 말하며 수긍했다.
“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 그냥 사쿠라 씨의 말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근데 순간 반말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녀의 말투 변화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태클을 걸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할 수 없군....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오토메 누나.”
“음... 호칭은 좋은데 존댓말은 좀 그렇다. 그냥 편하게 반말 해도 괜찮아.”
“아니, 이쪽이 곤란한데요.”
“괜찮아, 괜찮아. 이 누님이 괜찮다고 하는 거니깐 괜찮은 거야.”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치면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
“아니,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야.”
그냥 넘어가려는 나를 그녀는 막아섰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내 말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쳇. ‘무난히 넘어간다.’라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알겠지? 이제부턴 그냥 편하게 말하는 거다? 이건 학생회장의 명령입니다. 알겠죠?”
“에에. 그건 권력남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게 우리 학생회의 임무니까 이건 권력남용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양 손을 가져다 대고 가슴을 앞으로 당당히 내밀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저항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그럼 앞으로 편하게 부르겠어. 이러면 되겠지?”
“응! 나는 착한 아이를 좋아해요~”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쿠라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근데 오토메. 오늘 학생회 일이 있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오토메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누가 봐도 교복차림이었다.
“그거 교복이지? 주말에도 학생회 일이 있어?”
“응. 회의가 있거든. 이제 곧 입학식이니 입학식 준비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주말에도 가끔 회의를 해.”
“호오. 그거 고생이 많겠네.”
“응. 2~3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는데 매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래서 이 누님은 많이 힘들단다.”
반 장난으로 우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면 아까 전에 보였던 ‘늠름한 학생회장’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어리광부리는 소녀’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사람이 학생회장이어도 괜찮을 걸까....’
조금은 진지하게 학교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의 대화에 사쿠라 씨가 끼어드셨다.
“그럼 어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아 맞다!! 빨리 가지 않으면 마유키한테 혼나는데!!”
오토메 누나는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생각 난 건지 오른 주먹으로 왼손 손바닥을 치더니 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아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어서 가지 않으면 늦겠어~~”
“그럼 어서 가봐. 여기서 잡담을 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중요하잖아?”
“응! 그럼 먼저 갈게~”
오토메 누나는 우리를 뒤로 하고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하자~!! 우리 가족들한테 널 소개해줘야 하니까~ 알겠지~?!”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 대답은? 나한테 거부권은 없는 건가?!”
“뭐 어때. 어차피 너를 소개해 주러 가야했었으니까.”
“예? 어째서요?”
“아사쿠라家와 요시노家는 친척관계인걸.”
“.......그런 거였습니까.”
“응. 그런 거야.”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나와 사쿠라 씨는 앞으로 내가 생활할 요시노家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
이것으로 5화.
....정말 나 어디까지 써둔거지. 체크를 안 해서 기억이 안 나네. =-=;;;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