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문을 조심스럽게 연 나는 고개를 넣어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아직 노을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간대라 내부가 충분히 잘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책상. 어찌 보면 앙상하다고 할 수도 있는 서랍이 없는 형태의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연필꽂이, 스탠드, 달력 같은 것들이 올려있었다.

“어디보자........”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문을 더 열어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후, 방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 들어간 후 책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4층짜리 책장이 있었다. 상자 같은 것이 들어있기도 하고 책들도 몇 권 꽂혀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책상을 지나치도록 고개를 조금 돌리니 이번엔 옆으로 펼쳐진 문 없는 서랍과 창문이 보였다. 서랍 안에는 잡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인형이나 작은 가방들이 들어가 있었다.

“꽤나 정리를 잘 해두고 사는군.............응?”

대충 구경을 한 다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나는 방금 본 서랍 위에 액자 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인가?”

갑자기 생겨난 호기심에 나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 도착한 나는 눈에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조그마한 액자 하나를 들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오토메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인건가.”

그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찍은 장소는 모르겠지만,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의 모습이 보였다. 아사쿠라 오토메. 만난 지 하루도 안 되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게 만든 당돌한 누님.

“그럼 이쪽이 동생이란 건가.”

오토메 누나의 오른쪽에는 새침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를 특이하게 말아서 양쪽에 작은 공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분홍색 끈과 하얀 천 같은 것으로 고정시킨 것 같았다. 오토메 누나와의 키 차이는 별로 나지 않고,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사진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 집 여자들은 다들 한 미모 하는군?”

오토메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지만, 동생인 아사쿠라 유메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사진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 뿐이지만, 이 소녀의 모습 또한 내가 지금까지 봐온 여성들 중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오토메 누나와 코토리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앗차차.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음껏 사진을 감상하던 나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기억해내고는 액자를 원래 자리에 다시 놓았다. 조금 더 사진을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기다리다 못한 오토메 누나가 이곳에 와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무슨 훈계를 할 지 몰라서, 알지 못할 두려움에 사진 감상을 포기했다.

“그나저나 동생이라는 이 사람은 어디에 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침대가 하나 있었다. 연녹색의 체크무늬가 있는 베개, 하늘색의 시트와 이불이 조합을 이루어 저것들을 이용해서 잠을 잔다면 언제나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내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그곳에는...................

“........자고 있다고?”

그렇다. 지금 내 눈 앞에는 방금 전 사진에서 오토메 누나 옆에 있던 인물이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코와 입. 사진에서 보이던 분홍색 끈과 흰색 천이 없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공처럼 뭉쳐진 머리. 귀여운 얼굴. 틀림없다. 방금 전 내가 사진에서 본 그 인물이다.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뭔가 피곤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많이 피곤하다면 조금 일찍 잠을 자거나 저녁을 먹기 전에 잠을 자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저녁을 먹기 위해서 부르러 온 나의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은 아니란 말이지.”

나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에게 저녁을 먹기 위한 호출을 하러 온 것이다. 잠자는 모습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누군가를 불러와야한다는 임무만 없었더라면, 지금 이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좋은 이벤트인데 말이지.........”

현실에서 이런 멋진 이벤트가 쉽사리 나올 리가 없다. 아름다운 여성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이벤트라니. 그 여성의 절친한 친구라던가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매우 드문 장면임이 틀림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나는 행운아일지도.

“쩝.....아쉽지만 이제 깨워야 할 타이밍인가.”

아쉬운 마음에 좀 더 그녀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오토메 누나가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슬 그녀를 깨우기로 했다.

“네가 얼마동안 잤고 있는지는 관심 없고,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절대로 민폐는 아니야. 당연히 그래야지. 난 잘못이 없어.”

그녀를 깨우기 전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걸로 죄의식은 없고, 문제는................

“어떻게 깨워야 잘 깨웠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해진 규칙이란 게 있을 리가 없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방법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자고 있는 친구들을 여러 번 깨운 적이 있긴 하지만, 여성을 깨워본 경험은 없다. 친구들을 깨우는 식으로 깨웠다간 무슨 짓을 당할까봐 겁이 나서 도저히 그 방법은 쓸 수 없어서 고민 중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말하기 참 뭐한 이야기지만.

“아. 재미있는 게 생각났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주저앉은 후,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조심............조심............”

나는 장난기가 생기면 그걸 꼭 실행해보는 어린 시절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좋아.... 조금만 더......”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코를 제압했다. 숨을 쉴 수 없도록.

그렇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주로 만화에서 일어나고, 코골이가 심한 사람에게 써먹기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알려진 ‘코 막기’이다.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 이용하는 코와 입 중에서 코를 봉쇄함으로써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시대가 낳은 멋진 테크닉이다.

지금 만지고 있는 그녀의 코의 감촉을 말하자면 상당히 부드러웠다. 이런 말을 하면 뭔가 변태가 된 것 같아서 썩 기분은 좋지 않지만, 일단 그렇다.

“.............으음.........”

코가 봉쇄당해서 숨을 쉬기 조금 곤란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옆으로 움직였다. 재빠르게 손을 땠기 때문에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고, 나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위험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켰다간 훈계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어느덧 ‘잠자는 소녀 깨우기’는 ‘잠자는 소녀를 괴롭히기’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그걸 즐기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 내 쪽으로 돌렸기 때문에 목표가 잘 보였고, 제압하기도 더 쉬워졌다.

“좋아... 방금 전에는 입까지 봉쇄하지 못해서 실패했던 거고.... 이번에야 말로.....”

나는 방금 전보다 더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이번엔 동시에 제압하기 위해서 양 손을 움직여 그녀의 코와 입을 노렸다. 1초라도 좋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숨을 쉬는 걸 방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지금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러. 나.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뭘 하기는. 당연히 이 녀석이 단지 1초라도 숨을 못 쉬게 만들려는 아주 멋진 장난..........................응??”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거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 이외에 말을 하는 인물은 이 방 안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방금 그 말은.....?’

“.......유령?”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나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바로 앞에 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려봤다. 거기에는............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말이죠.“

“네.”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

두 눈이 보였다. 노려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것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눈빛. 초록색의 두 눈동자가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살며시 다물어진 입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

깨어났다. 이 말 한마디면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것 이상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은 없을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은 경직되었고, 뇌는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고 식은땀이 등 뒤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은?”

표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닫혀있던 입이 열면서 나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상황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장면이었다.

“그.....................못된 장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내가 간신히 내놓은 대답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 왠지 모르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해당할 것 같다고 할까.

“그럼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이 손들의 의미는?”

그녀의 이 말에 깨달은 것이지만, 아직 나의 양 손은 그녀의 코와 입을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손이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어.....음...... 뭐라고 할까......”

“.....................”

“잠을 깨우려고 하는 사람의 친절한 손놀림?”

“그게 말이 될까보냐!!!”

(퍼억!!)

“윽!!”

순간 나의 머리에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혔다. 이 느낌, 틀림없이 철과 플라스틱이 사용된 물건이다. 중요한 건 그걸 맞고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

“아야야.... 무슨 짓이야!!!”

“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이 변태!!!”

머리를 문지르면서 화를 냈지만 피해자인 그녀가 반대로 나를 변태라고 부르며 소리쳤다.

“변태는 누가 변태야!! 난 네 녀석을 깨우러 왔단 말이다!!”

“당신이 누군데 날 깨우러 와!! 변태!! 강도!! 저리 가!!”

(퍼억)

이번엔 베개.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면서 약간의 데미지를 주는 이 감촉은 분명 방금 전에 저 녀석이 쓰고 있던 베개다. 이런 말을 하면 진짜 변태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냄새가 난다.

“무슨 짓이야 민폐녀!!!”

“누가 민폐야!! 애초에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사람이 잘못이지!!”

“멋대로라니!! 난 당당히 현관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아주 떳떳하게!!”

“강도 주제에 뻔뻔하기도 하지!! 어떻게 현관으로 들어올 생각을 해?!”

“그러니까 난 강도, 변태가 아니라고!!!”

내가 베개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하자, 그걸 재빨리 받더니 다시 나에게 던졌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 필사적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급습에 대항하는 소녀, 그리고 멋대로 변태, 강도로 몰아버린 그 소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나. 상황을 보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꼴이라 더더욱 화가 났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내 방에서 어서 나가라고!!”

“누구 맘대로!! 변태, 강도라고 말한 걸 정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나가!!”

“꺄아!! 가까이 오지 마!! 변태!! 바보!!”

“바보라고 하지 마!!!”

“저리 가!!!”

(휙-)

“우앗!!”

베개 이외의 뭔가가 날아와서 깜짝 놀란 나는 몸을 틀었고, 가까스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멍청아! 뭘 던지는 거야!! 위험하잖아!!”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만 나가라고!!!”

(벌컥)

“유메!!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들의 싸움은 순간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오토메 누나가 서 있었다.

“.................”

“.................”

“..................”

3명의 침묵은 분위기를 다운시켜 지금 상황이 참 어색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이 상황에 오토메 누나라니. 타이밍이 너무 안 좋은데.’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자면 이렇다.

내가 오른손에 베개를 들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고, 왼손으로 상대방에게서 날아오는 물건들을 막으려고 손을 뻗은 상태다. 상대방인 아사쿠라 유메는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이쪽에 던질 뭔가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는 모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 입구에 서 있는 오토메 누나.

‘신이시어.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드셨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신과 운명에게 화를 내보는 나였지만,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타개책이 더 절실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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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딱 10화까지 써뒀다니. 멋진데? (퍼억)

....이제부터 써야겠지. 끄응...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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