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일지도 몰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석양이 비추는 거리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에 맞춰서 하나 둘 전깃불을 켜는 가게들. 말하자면 ‘어린 아이는 집에 갈 시간.’이란 것이다.

“하아.......”

그런 거리에 서서 나는 한숨을 쉬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한숨이라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사쿠라 씨한테서 약도를 받아올걸...”

그렇다. 나는 지금 미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미아.

“.....한심하군.”

나는 앞을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실망했다. 평소에 입에 ‘준비만 철저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란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잊고 있던 것 같다.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나는 기억을 되살려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봤다.

요시노 사쿠라. 정체불명의 사람.

“........패스.”

아사쿠라 오토메. 신비로운 학생회장.

“....이런 정보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시라카와 코토리. 카자미 학원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미소녀.

“.........그래서 어쩌라고.”

인물 정보로는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론 오늘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장소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봤다.

카자미 학원.

“...이름만 알고 있는 곳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

상점가.

“사쿠라 공원에서 나온 다음에 실컷 돌아다녔던 곳이지.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없어.”

“응? 잠깐....”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나는 명안을 떠올렸다.

“...거기다!!”

나는 곧바로 다리를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라면 돌아가는 길도 기억이 날거야!!”

100% 보장은 없지만 약간의 희망의 빛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멈추지 않고 뛰어갔다. 사쿠라 공원,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두 발로 서있던 장소. 바로 그곳에.

“헉.....헉......”

다행히 사쿠라 공원까지의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 무사히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되돌아가는 것만 남았는데.....”

물론 사쿠라 공원에 왔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온다고 돌아가는 길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이제부터가 본방송이다.

“후.... 하..... 후..... 하......”

쉬지 않고 뛰어왔기 때문에 나는 꽤나 지쳐있었다. 일단 가볍게 숨고르기를 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서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와서....’

어느 정도 정신력과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생각되자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봤었지.’

사실 사쿠라 공원까지 오는데 길을 잊어서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쿠라 공원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답이 뒤죽박죽 섞여서,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군.”

나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 나서 걸어갔다. 이 섬에 있는 벚꽃나무들 중에서 가장 큰 벚꽃나무가 있는 장소. 시라카와 코토리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장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시작점에.

곧 나는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은 공원 내에 있는 곳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사쿠라 씨한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 내가 멋대로 돌아다닌 것도 문제긴 하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벚꽃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나무에 등을 기대로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꼴이지..... 이런 고생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지금 처한 현실을 한탄하며 하늘을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어떤가요?”

“.............?!?”

순간 나 이외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를 멈추게 했다.

“아,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아무래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등을 기대고 있던 곳의 정 반대 쪽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해석이 필요하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들리는 목소리를 분석하자면 내 또래의 여자아이인 것 같다. 그녀에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해줬다.

“뭐, 그렇군.”

“당신은 어떤가요?”

“응?”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단순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특별한 목표 없이 생활하면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대학생.

“당신의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요?”

“정해지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미래는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사실 ‘미래는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그거야 받아드리는 사람의 관점 차이지. 적어도 난 ‘정해져있는 건’ 싫어. 재미가 없잖아?”

“자신이 정해나가는 건 재미가 있단 건가요?”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녀와 이런 대화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속에 있던 불안들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내가 앞으로 걸어갈지, 뒤로 걸어갈지 어떤 걸 선택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지 않아?”

“당신의 이동이 궁금한 사람은 없을 텐데요.”

“아니. 비유란 거잖아. 비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요.”

“....응?”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정체모를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이곳에서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자리를 떠났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계속 보면서 나는 허공에 대고 대답했다.

“그럼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정해진 미래’라는 걸 깨는 모습을.”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길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는 지금 요시노家의 거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집의 주인, 요시노 사쿠라 씨다.

“설마 길을 잃어버릴 줄은 몰랐어요.”

사쿠라 공원에서 정체모를 소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면서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덧 나는 요시노家에 도착해 있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듣고 있는 거야?!”

“물론 듣고 있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쿠라 씨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한 사쿠라 씨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모르는 곳을 돌아다닐 땐 길을 정확히 기억해야한다는 경험을 얻었어요.”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은데 어째서 잊은 거야?”

“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요...”

시라카와 코토리란 미소녀와의 만남, 그리고 벚꽃나무 밑에서 정체모를 소녀와의 대화. 이정도면 돌아가는 길을 잊기엔 충분하다. 아, 후자는 아닌가.

“늦게까지 안 돌아와서 걱정했잖아.”

“연락 방법이 없던 것도 큰 문제였어요.”

“그렇네... 이번에 핸드폰을 하나 사야겠네...”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뭔가를 적으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지금 적고 계신 게 뭔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응? 구입 물품 목록.”

“...제가 쓸 물건들이요?”

“응. 옷이나 책 같은 것들.”

이왕 관련된 내용이 나왔으니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질문 하나 더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제가 여기로 올 때 제가 쓰던 것들을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나요?”

“그거? 쓸데없이 짐만 많아지니깐.”

“아니,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데 말이죠.”

“짐이 많으면 이곳으로 올 때 내가 힘들단 말이야.”

“뭔가 변명인 것 같은 느낌이...”

“에잇!!”

(따악!)

“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나의 머리를 사쿠라 씨는 가차 없이 내리치셨다. 벌을 받느라 방어에 대해 신경을 못 쓰고 있던 나는 그대로 사쿠라 씨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나는 고통을 느끼며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게 되었다.

“그런 건 일일이 따지면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때리실 것까진 없잖아요.”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법이야.”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사쿠라 씨는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곤 깜짝 놀라셨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무슨 시간이요?”

나는 남아있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문지르면서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는 서둘러 움직이시면서 대답했다.

“빨리 서둘러! 오토메와의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오토메... 아, 오토메 누나요? 무슨 약속을 했더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사쿠라 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나에게 말했다.

“벌써 잊은 거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잖아!!”

“..............오오!!”

그제야 나는 오전에 있던 오토메 누나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시계는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서 준비해!!”

“준비라고 할 게 저한테 어디 있어요!!”

“어쨌든 빨리 나와!!”

사쿠라 씨는 허둥지둥 거실을 뛰쳐나가셨다. 바로 쫓아가려고 했던 나는 일어나면서 급격하게 다리에 느껴지는 데미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제한은 앞으로 10분. 늦으면 안 된다. 만약 늦게 된다면 앞으로의 나의 학생 생활이 걱정될 것이다. 나는 거실에서 뒹굴면서 외쳤다.

“제-엔 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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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하마터면 예악을 잊을 뻔했네.

위험해 위험해...


......이번것도 좀 짧은가?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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