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집으로 돌아온 후, 나와 사쿠라 씨는 잠시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쉬기로 했다. 테이블에는 차가 담긴 컵이 놓여 있었고, 한 입에 들어갈 정도의 쿠키가 그릇에 담겨 있다. TV에서는 지루한 프로그램들밖에 하지 않아서 나의 심심함은 한계에 도달했다. 마침 사쿠라 씨에게 할 이야기도 있던 나는 사쿠라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쥰이치 씨는 뭔가 좀 특이한 분이네요.”

“응? 오빠가? 음..........그런가?”

TV를 보고 있던 사쿠라 씨는 내 말에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더니 잠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쥰이치 씨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는지, 곧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이면서 말하셨다.

“뭐, 오빠가 좀 웃기긴 하지.”

“아니, 그 쪽이 아니라 조금 신비롭다고나 할까요.”

내가 한 말이 생각지도 못했던 거였는지,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관심을 보였다.

“신비로워? 어떤 면에서?”

“뭐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자마자 ‘잠시 나랑 상담 좀 할까.’라고 말하는 점?”

“하긴. 초면에 그런 걸 하는 사람은 드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쿠라 씨는 TV에서 시선을 때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쥰이치 씨와의 상담에 대해 물어보셨다.

“어땠어? 오빠와의 상담은?”

“글쎄요. 그게 상담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쓸데없이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결론적으로 내가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조언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

순간 사쿠라 씨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구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대화는 끝났고, 시선은 다시 TV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TV에서는 여전히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 그래.”

“......응??”

한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이 떠올라서 나는 재빨리 사쿠라 씨에게 말했다. 바로 내일 이야기다.

“전 내일 카자미 학원에 입학하게 되는 거죠?”

“응? 아.........그랬나?”

마치 자신도 몰랐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순간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런 나의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안심하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 수속은 다 끝냈고 준비도 다 해뒀으니까. 남은 건.........”

“남은 건?! 뭔가 남아 있는 건가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사라지려고 했던 불안함이 다시 솟아올랐다. 하지만 뒤이어서 그녀가 한 말은,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함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너의 개그 스펙?”

“..............................”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지만, 나의 착각일 것이다. 나의 불안감이 사쿠라 씨가 한 말을 이리저리 왜곡시켜서 이상하게 조합되어서 나의 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것이 틀림없다. 난 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쿠라 씨에게 물어봤다.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개그 스펙이라니.......”

“응? 잘못 들은 게 아니야.”

“...........................”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내 귀를 의심했고, 사쿠라 씨를 의심하게 만든 신을 저주했다. ‘될 대로 되라.’는 게 이 세계에 온 순간부터 정한 나의 좌우명이었는데, 정말로 이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나를 보던 그녀는 쐐기를 박으려는 듯이 대답했다.

“왜 그거 있잖아.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일단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잖아?”

“.....그래서 저보고 지금, 내일 반 아이들에게 개그를 선보여라....?”

“응. 짧고 굵게 한 방!!”

“.....................”

“....................”

활짝 웃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을 위로 쫙 뻗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냥 내 맘대로 하는 편이 좋겠군.’

사쿠라 씨는 마치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안 나와서 실망했다는 듯 한동안 뾰로통해 있었다. 그런 사쿠라 씨의 모습에서 후환이 두려웠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했다.

“사쿠라 씨. 제가 배정되는 반은 몇 반이죠?”

“응?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게 말이죠, 사실은...............”

나는 낮에 있었던 코토리와의 내기에 대해서 사쿠라 씨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쿠라 씨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다.

“그래서, 그 내기에서 이기고 싶다고?”

“네. 그러니까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만.”

“....................”

‘뭐?! 즉답이 아니야?!’

사쿠라 씨는 잠자코 눈을 감으시더니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할 거라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그녀가 나를 도와준다면 100%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 도와주실 건가요?”

“...............”

“그냥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니 좀 도와주세요. 네?”

내가 간절히 부탁해도 사쿠라 씨는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다.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슬슬 걱정과 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사쿠라 씨는 입을 열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도와줘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네?”

YES or NO로 대답할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응? 깨닫지 못 한 거야? 이 내기는 네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어째서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내가 이길 확률이 0%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름대로 피해 다닐 계획도 잘 짜뒀고, 사쿠라 씨만 도와준다면 내기에서 이길 확률은 100%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데요. 사쿠라 씨의 그 말.”

“....어디까지 바보인거야 넌.”

“실례입니다. 이래 뵈도 나름 철저한 계획 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아..................”

‘하아.............’

깊은 한숨을 쉬는 사쿠라 씨. 답답한 나 또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지. 직접 경험해봐. 그럼 알 게 될 테니까.”

“그럼 안 도와주시겠다는 건가요?”

“난 별로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 잘 해봐.”

사쿠라 씨는 그렇게 고개를 다시 TV쪽으로 돌리셨고, 할 수 없이 나는 그녀의 도움 없이 내기에서 이겨야 했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크진 않았지만, 조금 더 귀찮아졌다는 건 사실이었다.

‘할 수 없군.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두 사람에게 보여줘야겠어.’

“그럼 전 이만 올라갈게요.”

“응? 이제 자려고?”

“네. 아직 방 구경도 안 했으니 자기 전에 좀 살펴보려고요.”

“그래? 알았어.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사쿠라 씨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왔다. 그 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 다음, 4개의 방 중에서 내가 쓰게 될 방으로 들어갔다.

“호오... 이런 식이란 말이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 문 바로 옆에 있는 검정색 계열의 색상으로 되어있는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가방과 책들이 놓여있었다. 고개를 조금 돌리니 적당한 크기의 옷장과 책장이 보였다. 아직은 많이 비어있지만, 그쪽이 내가 원하는 물건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오. 이게 내가 쓸 침대란 거지?”

책장과 옷장 정면에는 침대가 놓여있었다. 창가에 놓는 구조라서 햇빛이 들어오는 걸 막는 것도 없고, 적당한 높이라서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창문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침대에서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조금 크다고 생각되는 창문을 볼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니 아사쿠라家가 바로 보였다. 거실 쪽에 불이 켜있는 것으로 보아, 저쪽은 아직 안자고 있는 듯 했다.

“책상이 있는데 구지 테이블이 필요하나?”

방 중앙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정사각형이라 최대 4명이 사용할 수 있었고, 모서리 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어서 모서리에 부딪혀도 크게 다칠 염려는 적어보였다. 아무래도 손님이 방에 들어왔을 때 이용하려고 있는 것 같은데, 난 테이블 같은 건 잘 안 쓰는 성격이라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과의 환경과 너무 다른 게 문제이긴 하지만, 적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난 예전 세계에서 방바닥에서 잤고, 테이블은 접이식으로 방 한 편에 놔둔 다음, 필요할 때만 꺼내서 썼었다. 방을 최대한 넓게 쓰자는 게 당시 나의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좁아 보이는 이 방 구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사쿠라 씨한테 건의를 좀 해야겠어.”

침대까진 이해할 수 있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이 테이블만큼은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아암... 일단 잠이나 자자....”

잠이 와서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침대가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서 피곤했는지, 예전 세계에서 잠시 뒤척이다가 자던 버릇은 나오지 않고 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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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에 안 올려뒀던 부분을 백업중입니다.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11화-

“..............”

“..............”

침묵. 상황에 따라선 참 좋은 단어지만, 지금은 필요 없는 녀석이다. 가능하면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된다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법.

“저기.....유메 씨? 간장을 좀 줬으면 하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한 심정으론 그다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 나에겐 지금 간장이 필요했고, 그 간장이 담겨져 있는 통이 그녀의 앞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

하지만 그녀는 무반응. 이쪽을 보는 일도 없고, 그저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자, 여기 있어.”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오토메 누나가 간장 통을 집어서 나에게 주었다. 내 개인 접시에 간장을 따른 후 조심스럽게 간장 통을 식탁 위에 놓았다. 그러자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간장 통을 자신의 옆으로 가져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은근히 가시방석인데 이거.’

옆에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사쿠라 씨가 한 마디 하셨다.

“무슨 일 있었어?”

“뭐.....별거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찌릿.

순가 날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아주 차가웠다. 그 눈빛에 압도당한 나는 바로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제 잘못이 좀 더 컸습니다.”

“어라? 그건 마치 저도 잘못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톡 쏘는 말투로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이쪽을 보지는 않았다. 내 쪽에서도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을 참을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언제까지 삐져있을 거야? 내가 아까 사과했잖아.”

“하아?! 사과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면 경찰이고 법이고 다 필요 없죠! 안 그래요?!”

내 말에 발끈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질세라 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야?! 고작 허락 없이 방에 들어갔던 것 가지고. 너무 쪼잔 한 거 아냐?!”

“쪼잔?! 고작!? 방에 들어와서 저한테 한 행동은 기억이 안 나시나보죠?!”

그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밥공기와 젓가락이 들려져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들의 말싸움은 계속 되었다.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너무 한 거 아니야?!”

“장난도 정도가 있어요!!”

코를 막아서 숨을 쉽게 쉬지 못 하게 한 내 장난이 잘 한 짓은 아니지만, 장난이지 않은가? 이렇게 화를 낼 정도로 내가 잘못한 걸까.

“........세이토.”

“.............네.”

오토메 누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가 들어도 화가나 있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알 수 있는 톤이었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알게 된지 하루도 안 된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전혀 오토메 누나 같지 않았다.

“지금은 분명히, 식사 중, 이지요?”

“........잘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오토메 누나는 이번엔 자신의 옆에서 서 있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말했다.

“유메도, 앉아야지?”

“.............응.”

그녀도 지금 자신의 언니가 어떤 모습인지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즐겁게 식사를 계속 합시다~”

이 저녁식사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던 건, 동생이 아니라 언니 쪽이었을 지도....







“오토메 누나가 화를 내는 경우가 빈번합니까?”

“글쎄.... 어떤 행동을 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보기 힘들다고 해야겠지.”

‘허허.’라며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남자는 바로 오토메 누나의 할아버지인 아사쿠라 쥰이치 씨. 겉모습은 백발의 늙은 노인이지만, 사쿠라 씨와 비슷한 나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사쿠라 씨가 상당한 동안이라는 건 사실인가보다. 사쿠라 씨는 쥰이치 씨를 부를 때 ‘오빠’라는 호칭을 쓰던데, 저 나이가 되어서도 그런 말을 듣는 게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래. 우리 아이들의 첫 인상은 어땠지?”

우리 아이들이란 건 오토메 누나와 민폐녀를 말하는 거였다. 민폐녀란 내가 오토메 누나의 동생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반대로 난 변태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글쎄요. 보기드믄 미인들이었다?”

“하하하. 내 손녀들이니 그거야 당연하지.”

호쾌하게 웃는 쥰이치 씨의 모습에선 오토메 누나에게서 느껴졌던 온화함이 있었다. 세상 걱정거리 없는 나이 많은 어르신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밖에 뭔가 다른 건?”

“음.........그것 이외엔 특별히 느낀 건 없었는데요.”

“그렇단 말이지.....”

쥰이치 씨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를 생각하고 계셨다. 궁금한 것이 있었던 나는 쥰이치 씨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다.

“저기, 쥰이치 씨.”

“음? 왜?”

“왜 제가 지금 쥰이치 씨와 면담을 나누어야 하는 거죠. 전 돌아가서 자고 싶은데요.”

“까칠하긴. 앞으로 사쿠라의 집에서 살게 되는 남자 아이인데 어떤 녀석인지는 알아둬야 할 거 아니야. 명색에 사촌인데.”

“그렇군요......”

뭔가 납득이 가면서도 안 가는 듯한 미묘함이 남았지만, 수긍이 가는 이유였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들고 입에 댄 순간, 쥰이치 씨는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때. 둘 중 한 명을 애인으로 삼아보지 않겠어?”

“푸훕!!!!!!!”

순간 놀란 나는 마시던 차를 그대로 뿜어버렸다. 다행이 크게 튀진 않아 재빨리 수습이 가능했다.

“그 정도로 놀랄 이야기였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쥰이치 씨를 보며 나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나는 말했고, 쥰이치 씨는 반대로 고개를 갸웃거리시더니 말했다.

“글쎄..... 이상한 부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애인이란 단어가 들어간 순간부터 이상한 거였습니다.”

“응? 우리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니,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셔봤자....”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쥰이치 씨는 그런 나의 모습을 지긋이 보고 계셨다.

“.....................”

“....왜 그러시나요?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응? 아니.....................푸하하하하하!!!!”

갑자기 쥰이치 씨는 웃기 시작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의아해할 뿐이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하하하하하......아이고 배야.......”

쥰이치 씨는 웃음을 멈출 줄 몰랐고, 나는 약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다짜고짜 웃기 시작하는 사람을 보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미안, 미안. 하지만 네가 놀리기 참 쉬워보였거든. 아이고 배야.....”

‘...이 사람이 지금....’

만화였다면 내 이마에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것이 탁하고 등장했을 것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화의 이야기. 어쨌든 쥰이치 씨는 한참을 웃으시다가, 곧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나를 보며 말하셨다.

“자, 그럼 주제를 바꾸어서”

‘이 사람, 행동과 표정의 변화가 너무 심해!!’

“혹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게임의 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갑자기 쥰이치 씨는 엉뚱한 쪽의 질문을 하셨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쥰이치 씨의 표정에 나는 나름 생각을 한 다음 대답했다.

“글쎄요. 어떻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게임을 하다보면 이것을 할지 저것을 할지 선택하는 선택지가 나오기도 하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진행이 좌지우지되고 말이지.”

“뭐...확실히 그렇죠.”

쥰이치 씨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리가 없는 나는 그저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쥰이치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생각하지. ‘아, 다른 걸 선택할걸.’라고 말이지. 그것이 바로 후회란 녀석이지.”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라는 걸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듣고 있는 동안에 계속해서 생각해본 것을 나는 말해보았다. 쥰이치 씨는 내 생각이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야.”

“.......................”

“그래서 사람들은..........”

“죄송하지만, 결론을 이야기 해주시죠. 전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빨리 쥰이치 씨의 목적을 알고 싶었던 나는, 결국 그의 말을 잘랐다. 쥰이치 씨는 조금 불만인 듯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말하셨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어라.”

“.............??”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그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쥰이치 씨는 자기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나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말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니까 지금 당장은 신경 안 써도 괜찮아. 하하하!!!!”

‘....그럼 신경 안 쓰이게 만들던가요.’

속으로 불만을 토하면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분위기에 엄숙함이 합쳐져 있는 그에게서 저런 말을 들으니, 앞으로의 내 인생이 힘들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사쿠라家를 나와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나는 하늘을 보았다. 평소엔 땅을 보면서 걷는 편이라 좀처럼 하늘을 볼 수 없어서 참으로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어라................................인가.”

별 거 아니지만 내 가슴속에 깊숙이 꽂힌 쥰이치 씨의 그 말을 나는 몇 번이도 되뇌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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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포스팅.

오랜만에 소설을 썼기 때문에 휘리릭하고 올립니다.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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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문을 조심스럽게 연 나는 고개를 넣어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아직 노을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간대라 내부가 충분히 잘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책상. 어찌 보면 앙상하다고 할 수도 있는 서랍이 없는 형태의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연필꽂이, 스탠드, 달력 같은 것들이 올려있었다.

“어디보자........”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문을 더 열어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후, 방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 들어간 후 책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4층짜리 책장이 있었다. 상자 같은 것이 들어있기도 하고 책들도 몇 권 꽂혀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책상을 지나치도록 고개를 조금 돌리니 이번엔 옆으로 펼쳐진 문 없는 서랍과 창문이 보였다. 서랍 안에는 잡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인형이나 작은 가방들이 들어가 있었다.

“꽤나 정리를 잘 해두고 사는군.............응?”

대충 구경을 한 다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나는 방금 본 서랍 위에 액자 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인가?”

갑자기 생겨난 호기심에 나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 도착한 나는 눈에 보이는 직사각형 모양의 조그마한 액자 하나를 들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오토메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인건가.”

그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찍은 장소는 모르겠지만,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의 모습이 보였다. 아사쿠라 오토메. 만난 지 하루도 안 되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게 만든 당돌한 누님.

“그럼 이쪽이 동생이란 건가.”

오토메 누나의 오른쪽에는 새침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를 특이하게 말아서 양쪽에 작은 공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분홍색 끈과 하얀 천 같은 것으로 고정시킨 것 같았다. 오토메 누나와의 키 차이는 별로 나지 않고,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사진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 집 여자들은 다들 한 미모 하는군?”

오토메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지만, 동생인 아사쿠라 유메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사진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 뿐이지만, 이 소녀의 모습 또한 내가 지금까지 봐온 여성들 중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오토메 누나와 코토리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앗차차.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음껏 사진을 감상하던 나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기억해내고는 액자를 원래 자리에 다시 놓았다. 조금 더 사진을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기다리다 못한 오토메 누나가 이곳에 와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무슨 훈계를 할 지 몰라서, 알지 못할 두려움에 사진 감상을 포기했다.

“그나저나 동생이라는 이 사람은 어디에 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침대가 하나 있었다. 연녹색의 체크무늬가 있는 베개, 하늘색의 시트와 이불이 조합을 이루어 저것들을 이용해서 잠을 잔다면 언제나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내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그곳에는...................

“........자고 있다고?”

그렇다. 지금 내 눈 앞에는 방금 전 사진에서 오토메 누나 옆에 있던 인물이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코와 입. 사진에서 보이던 분홍색 끈과 흰색 천이 없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공처럼 뭉쳐진 머리. 귀여운 얼굴. 틀림없다. 방금 전 내가 사진에서 본 그 인물이다.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뭔가 피곤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많이 피곤하다면 조금 일찍 잠을 자거나 저녁을 먹기 전에 잠을 자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저녁을 먹기 위해서 부르러 온 나의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은 아니란 말이지.”

나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에게 저녁을 먹기 위한 호출을 하러 온 것이다. 잠자는 모습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누군가를 불러와야한다는 임무만 없었더라면, 지금 이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좋은 이벤트인데 말이지.........”

현실에서 이런 멋진 이벤트가 쉽사리 나올 리가 없다. 아름다운 여성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이벤트라니. 그 여성의 절친한 친구라던가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매우 드문 장면임이 틀림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나는 행운아일지도.

“쩝.....아쉽지만 이제 깨워야 할 타이밍인가.”

아쉬운 마음에 좀 더 그녀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오토메 누나가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슬 그녀를 깨우기로 했다.

“네가 얼마동안 잤고 있는지는 관심 없고,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절대로 민폐는 아니야. 당연히 그래야지. 난 잘못이 없어.”

그녀를 깨우기 전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걸로 죄의식은 없고, 문제는................

“어떻게 깨워야 잘 깨웠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해진 규칙이란 게 있을 리가 없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방법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자고 있는 친구들을 여러 번 깨운 적이 있긴 하지만, 여성을 깨워본 경험은 없다. 친구들을 깨우는 식으로 깨웠다간 무슨 짓을 당할까봐 겁이 나서 도저히 그 방법은 쓸 수 없어서 고민 중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는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말하기 참 뭐한 이야기지만.

“아. 재미있는 게 생각났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주저앉은 후,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조심............조심............”

나는 장난기가 생기면 그걸 꼭 실행해보는 어린 시절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좋아.... 조금만 더......”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코를 제압했다. 숨을 쉴 수 없도록.

그렇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주로 만화에서 일어나고, 코골이가 심한 사람에게 써먹기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알려진 ‘코 막기’이다.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 이용하는 코와 입 중에서 코를 봉쇄함으로써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시대가 낳은 멋진 테크닉이다.

지금 만지고 있는 그녀의 코의 감촉을 말하자면 상당히 부드러웠다. 이런 말을 하면 뭔가 변태가 된 것 같아서 썩 기분은 좋지 않지만, 일단 그렇다.

“.............으음.........”

코가 봉쇄당해서 숨을 쉬기 조금 곤란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옆으로 움직였다. 재빠르게 손을 땠기 때문에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고, 나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위험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켰다간 훈계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어느덧 ‘잠자는 소녀 깨우기’는 ‘잠자는 소녀를 괴롭히기’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그걸 즐기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 내 쪽으로 돌렸기 때문에 목표가 잘 보였고, 제압하기도 더 쉬워졌다.

“좋아... 방금 전에는 입까지 봉쇄하지 못해서 실패했던 거고.... 이번에야 말로.....”

나는 방금 전보다 더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이번엔 동시에 제압하기 위해서 양 손을 움직여 그녀의 코와 입을 노렸다. 1초라도 좋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숨을 쉬는 걸 방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지금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러. 나.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뭘 하기는. 당연히 이 녀석이 단지 1초라도 숨을 못 쉬게 만들려는 아주 멋진 장난..........................응??”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거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 이외에 말을 하는 인물은 이 방 안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방금 그 말은.....?’

“.......유령?”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나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바로 앞에 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려봤다. 거기에는............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말이죠.“

“네.”

“당신은, 지금,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요?”

“.................................”

두 눈이 보였다. 노려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것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눈빛. 초록색의 두 눈동자가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살며시 다물어진 입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

깨어났다. 이 말 한마디면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것 이상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은 없을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은 경직되었고, 뇌는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고 식은땀이 등 뒤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은?”

표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닫혀있던 입이 열면서 나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상황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장면이었다.

“그.....................못된 장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내가 간신히 내놓은 대답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 왠지 모르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해당할 것 같다고 할까.

“그럼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이 손들의 의미는?”

그녀의 이 말에 깨달은 것이지만, 아직 나의 양 손은 그녀의 코와 입을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손이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어.....음...... 뭐라고 할까......”

“.....................”

“잠을 깨우려고 하는 사람의 친절한 손놀림?”

“그게 말이 될까보냐!!!”

(퍼억!!)

“윽!!”

순간 나의 머리에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혔다. 이 느낌, 틀림없이 철과 플라스틱이 사용된 물건이다. 중요한 건 그걸 맞고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

“아야야.... 무슨 짓이야!!!”

“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이 변태!!!”

머리를 문지르면서 화를 냈지만 피해자인 그녀가 반대로 나를 변태라고 부르며 소리쳤다.

“변태는 누가 변태야!! 난 네 녀석을 깨우러 왔단 말이다!!”

“당신이 누군데 날 깨우러 와!! 변태!! 강도!! 저리 가!!”

(퍼억)

이번엔 베개.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면서 약간의 데미지를 주는 이 감촉은 분명 방금 전에 저 녀석이 쓰고 있던 베개다. 이런 말을 하면 진짜 변태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냄새가 난다.

“무슨 짓이야 민폐녀!!!”

“누가 민폐야!! 애초에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사람이 잘못이지!!”

“멋대로라니!! 난 당당히 현관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아주 떳떳하게!!”

“강도 주제에 뻔뻔하기도 하지!! 어떻게 현관으로 들어올 생각을 해?!”

“그러니까 난 강도, 변태가 아니라고!!!”

내가 베개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하자, 그걸 재빨리 받더니 다시 나에게 던졌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 필사적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급습에 대항하는 소녀, 그리고 멋대로 변태, 강도로 몰아버린 그 소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나. 상황을 보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꼴이라 더더욱 화가 났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내 방에서 어서 나가라고!!”

“누구 맘대로!! 변태, 강도라고 말한 걸 정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나가!!”

“꺄아!! 가까이 오지 마!! 변태!! 바보!!”

“바보라고 하지 마!!!”

“저리 가!!!”

(휙-)

“우앗!!”

베개 이외의 뭔가가 날아와서 깜짝 놀란 나는 몸을 틀었고, 가까스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멍청아! 뭘 던지는 거야!! 위험하잖아!!”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만 나가라고!!!”

(벌컥)

“유메!!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들의 싸움은 순간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오토메 누나가 서 있었다.

“.................”

“.................”

“..................”

3명의 침묵은 분위기를 다운시켜 지금 상황이 참 어색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이 상황에 오토메 누나라니. 타이밍이 너무 안 좋은데.’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자면 이렇다.

내가 오른손에 베개를 들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고, 왼손으로 상대방에게서 날아오는 물건들을 막으려고 손을 뻗은 상태다. 상대방인 아사쿠라 유메는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이쪽에 던질 뭔가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는 모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 입구에 서 있는 오토메 누나.

‘신이시어.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드셨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신과 운명에게 화를 내보는 나였지만,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타개책이 더 절실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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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딱 10화까지 써뒀다니. 멋진데? (퍼억)

....이제부터 써야겠지. 끄응...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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