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다 왔어. 여기야.”

사쿠라 씨는 걸음을 멈추시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하셨다. 나는 건물의 겉모습을 한 번 본 뒤 말했다.

“..... 한 20발자국 걸었던 것 같네요.”

“뭐, 가깝긴 가깝지.”

사쿠라 씨는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대답하셨다.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시는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뭔가 속사정을 모르는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사쿠라 가의 겉모습은 요시노 가와는 달리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시노 가는 현관문이 나무재질이고 벽이라 할 수 있는 곳은 풀로 뒤덮여 있으니 자연적인 느낌이 들지만, 아사쿠라 가는 그와 반대로 시멘트벽으로 이루어진... 어떤 면에선 삭막함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어서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관 감상은 뒤로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응? 뭔데?”

이 부분은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꼭 답을 들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친척이 이렇게 가까이 산다면...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지 않나요?”

그 질문에 사쿠라 씨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다.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긴 좋은데 난 이 집이 좋아. 게다가 저 집에 살고 있는 내 친척들도 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어째서요?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는 곳인가요?”

만약 그녀에게 이 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사쿠라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이나 장소는 쉽사리 잊을 수 없고, 떨어져 살기도 힘드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여긴 내 할머니의 집이거든.”

“헤에... 사쿠라 씨의 할머님이...”

“응.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기에서 살기로 한 거야. 헤헤... 쓸모없는 고집 일려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좋은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친척들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데도 혼자서 이 집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러한 장소나 물건이 없지만, 인간인 이상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의문이 조금은 풀렸지만, 사실은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살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여기엔 내가 모르는 과거 이야기가 있을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원래는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일 때문에 이사를 갔다.’같은 거.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서 나는 이것에 관련된 질문은 그만 두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좀 더 가까운 미래에 관련해서.

“근데 이 집, 아사쿠라 가에는 누가 살고 있죠?”

“음... 오빠와 그의 손녀 2명이 살고 있어.”

사쿠라 씨가 말하는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텐 중요치 않다. 나는 전체적인 정보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3인 가족이군요. 오토메 누나는 손녀란 말이군요. 어라? 그럼 오토메 누나들의 부모님들은요?”

그녀는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순간 그녀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엔 뭔가 슬픈 과거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출장 중. 어머니는 그녀들이 어렸을 때 죽었어.”

“죽다니... 사고인가요?”

“아니... 병이었어.”

“그렇군요.....”

사쿠라 씨의 어두운 표정이 이젠 확연히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을 꺼낸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서 사는 세상에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자, 자,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

“예.....”

사쿠라 씨는 일부러 밝은 척을 하면서 웃어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부터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띵동~ 띵동~)

사쿠라 씨는 아사쿠라 가의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 사람은 입고 있는 옷은 다르지만, 내가 한번 본 얼굴이었다.

“아, 사쿠라 씨. 어서 오세요.”

온화하면서 밝은 목소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이름은 아사쿠라 오토메. 만나고 10분도 안 돼서 ‘편하게’ 말을 놓게 된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꽤 혼란스럽다. 실제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여기서는 일단 내가 그녀보다 적고,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여동생과 헷갈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반말과 ‘누나’호칭을 쓰게 강요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선 보기 힘든 에피소드겠지....’

나의 이런 고통 아닌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토메 누나는 나를 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건장한 남자인 이상 그녀의 미소는 다이너마이트 급으로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주지.’

“오토메, 좀 늦었지? 미안. 세이토 군이 너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제 잘못이 크긴 했지만 늦지는 않았잖아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을 흔들며 말하셨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저녁 준비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는 저녁식사에 초대된 게 아니었나요...”

“응. ‘일꾼’으로서 초대되었지.”

“...................”

사쿠라 씨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하셨고,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토메 누나는 그런 나와 사쿠라 씨의 정다운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거참... 나만 당하고 있군...’

“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나와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안내를 받아 아사쿠라 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면 가장 먼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눈에 보였다. 요시노 가에는 없는 다락방이 혹시나 여기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계단 바로 앞에 왼쪽으로 벽이 뚫려 있었다.

사실 벽이 뚫려있는 게 아니라 거실로 통하는 입구다. 부엌과 거실이 융합되어 있었다. 두 장소 사이에 특별히 벽 같은 게 없었다. 부엌 쪽엔 4인용 식탁이 놓여있고, 그 옆은 거실 영역으로 연 파란색의 소파가 있었다. 소파 앞에는 유리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TV가 보였다.

“호오. 이 집은 이렇게 되어 있군요...”

“어때? 아사쿠라 가의 모습은?”

사쿠라 씨의 말에 나는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좋은데요? 가구들의 배치도 나쁘지 않고, 햇빛도 잘 들어올 거고. 예전부터 이랬나요?”

“응. 특별히 가구의 위치를 바꾼 적은 없어. 예전부터 이렇게 두고 살아왔었어.”

나의 질문에 오토메 누나가 대답했다. 사쿠라 씨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오토메 누나에게 물었다.

“오토메, 오빠는 어디 있어?”

“할아버지요? 부족한 재료가 있어서 사 오신다고 잠시 나가셨어요.”

“흠..... 그래?”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현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하셨다.

“그럼 난 오빠 마중 나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저녁 준비를 끝내줘.”

“네. 다녀오세요.”

“저도 같이 갈까요?”

나는 사쿠라 씨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말했지? 일꾼으로 초대된 거라고.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도와줘. 그럼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곤 사쿠라 씨는 신발을 신고 나가셨다. 오토메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에이프런을 입고 있었다.

“자, 그럼 세이토 군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

“응? 왜 그래? 혹시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군’이란 호칭은 그냥 빼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래? 일부러 신경 써서 호칭을 붙인 건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는 건가!!’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난 뒤에 말했다.

“왠지 ‘군’을 붙이니까 내가 듣기 거북해. 그냥 이름만 불러줘.”

“응.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자, 어서 이리 와서 도와줘.”

“예이, 예이.”

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 식탁 위에 있는 재료 및 요리기구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기.........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응? 뭔데?”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거...........냄비요리?”

“응. 근데 왜?”

“아니........겨울도 아니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음......지금도 충분히 겨울인데?”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 나의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오토메 누나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냄비요리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오늘의 주역이 될 적당한 크기의 냄비에 고정되어 있다.

“사쿠라 씨가 오늘 저녁은 냄비요리가 좋다고 말하셨거든. 그래서 준비했어.”

“....................”

“혹시 세이토는 냄비요리를 싫어해?”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럼 상관없잖아.”

“그렇긴 한데............”

냄비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을 뿐이다.

때는 작년 여름.

내가 살던 세계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장소에 도착했지만.........

“하나 물어도 되냐 나의 친구들아.”

“뭔데 세이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여름에 냄비요리를 통해 더움을 이겨내자!’라는 친구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얽히게 되어서 나는 그해 가장 더운 날에 뜨거운 냄비요리를 먹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추운 날 이외엔 절대로 냄비요리를 먹지 않는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그 다짐이 깨지려고 하는 것이다.

“자자, 어서 준비해. 곧 할아버지와 사쿠라 씨가 돌아오실 거야.”

‘그렇다고 안 먹겠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식탁에 있는 것들을 거실 쪽으로 옮겼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온 뒤론 이것저것 꼬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굳게 다짐했던 것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깨지다니......’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허망감을 잊으려고 나는 오토메 누나와 대화를 하려고 말을 꺼냈다.

“근데 왜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는 거야?”

뭔가 특별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재료들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특별히 에이프런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토메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는 항상 착용하고 있었어. 습관이 들어서 특별히 입을 이유가 없어도 입고 있지만 말이야. 어때? 어울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였다. 나는 보기 드문 이 장면을 뇌에 되새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보겠는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은 절대로 무리다.

“뭐, 에이프런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은 없다고 생각해.”

“치잇- 감상이란 게 고작 그것뿐이야?”

“그럼 뭐라고 해줄까? 신혼부부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신랑에게 자신의 에이프런 차림이 어떠냐고 물어서 신랑이 ‘아주 아름다워서 눈이 부셔.’라고 말할 정도라고 하면 될까?”

“에잇-”

(타악-)

“아얏.”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그녀는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연상인 사람에게 농담은 하면 안 돼요.”

“넵.”

‘농담은 아닌데 말이지....’

나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다시 재료들을 날랐다. 곧 우리는 재료들을 모두 다 옮겼다.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를 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응? 유메라면 2층에 있어.”

‘호오. 이름이 아사쿠라 유메인가 보지?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군.’

나는 계단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슬슬 불러야 하지 않나?”

“그렇네... 그럼 세이토가 가서 좀 불러줄래?”

“거절합니다.”

“갔다 오세요.”

“네.”

모르는 사람을 부르러 간다는 것이 싫었고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오토메 누나의 말에 압도당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갔다.

‘아니, 원래라면 낯선 남자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오토메 누나의 정신 상태를 조금 의심했다. 2층으로 올라오니 방문이 2개가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집에도 다락방은 없었다.

“....다락방이 주택만의 매력인데 말이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보인 방의 문 앞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똑 똑)

“...................”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이 방은 오토메 누나의 방인 것 같다.

‘흠..... 그럼 저 방이란 말이군.’

나는 고개를 돌려 나머지 하나의 문을 보았다. 내가 지금 오토메 누나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 들렸을 텐데 저 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통은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봐야하는 거 아니야?! 이 집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점점 아사쿠라 가 사람들에 대한 의혹이 커져가기 시작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바로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의 호출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찮은 건 사실이야.....”

나는 투덜거리며 나머지 방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다음 가볍게 노크를 했다.

(똑 똑)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다. 마치 방 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노크를 하기로 했다. 아까 전에 한 것은 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똑 똑)

“....................”

역시 대답은 없다. 조금 기다려봤지만 깜깜 무소식.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뭐야. 기껏 내가 부르러 왔다는데.”

방문을 시원스럽게 열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내가 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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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고갈나는 듯.

아마 이거 다음화까지만 적어뒀는 걸로 기억.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8화-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일지도 몰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석양이 비추는 거리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에 맞춰서 하나 둘 전깃불을 켜는 가게들. 말하자면 ‘어린 아이는 집에 갈 시간.’이란 것이다.

“하아.......”

그런 거리에 서서 나는 한숨을 쉬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한숨이라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사쿠라 씨한테서 약도를 받아올걸...”

그렇다. 나는 지금 미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미아.

“.....한심하군.”

나는 앞을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실망했다. 평소에 입에 ‘준비만 철저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란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잊고 있던 것 같다.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나는 기억을 되살려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봤다.

요시노 사쿠라. 정체불명의 사람.

“........패스.”

아사쿠라 오토메. 신비로운 학생회장.

“....이런 정보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시라카와 코토리. 카자미 학원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미소녀.

“.........그래서 어쩌라고.”

인물 정보로는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론 오늘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장소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봤다.

카자미 학원.

“...이름만 알고 있는 곳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

상점가.

“사쿠라 공원에서 나온 다음에 실컷 돌아다녔던 곳이지.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없어.”

“응? 잠깐....”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나는 명안을 떠올렸다.

“...거기다!!”

나는 곧바로 다리를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라면 돌아가는 길도 기억이 날거야!!”

100% 보장은 없지만 약간의 희망의 빛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멈추지 않고 뛰어갔다. 사쿠라 공원,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두 발로 서있던 장소. 바로 그곳에.

“헉.....헉......”

다행히 사쿠라 공원까지의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 무사히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되돌아가는 것만 남았는데.....”

물론 사쿠라 공원에 왔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온다고 돌아가는 길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이제부터가 본방송이다.

“후.... 하..... 후..... 하......”

쉬지 않고 뛰어왔기 때문에 나는 꽤나 지쳐있었다. 일단 가볍게 숨고르기를 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서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와서....’

어느 정도 정신력과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생각되자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봤었지.’

사실 사쿠라 공원까지 오는데 길을 잊어서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쿠라 공원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답이 뒤죽박죽 섞여서,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군.”

나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 나서 걸어갔다. 이 섬에 있는 벚꽃나무들 중에서 가장 큰 벚꽃나무가 있는 장소. 시라카와 코토리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장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시작점에.

곧 나는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은 공원 내에 있는 곳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사쿠라 씨한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 내가 멋대로 돌아다닌 것도 문제긴 하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벚꽃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나무에 등을 기대로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꼴이지..... 이런 고생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지금 처한 현실을 한탄하며 하늘을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어떤가요?”

“.............?!?”

순간 나 이외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를 멈추게 했다.

“아,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아무래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등을 기대고 있던 곳의 정 반대 쪽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해석이 필요하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들리는 목소리를 분석하자면 내 또래의 여자아이인 것 같다. 그녀에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해줬다.

“뭐, 그렇군.”

“당신은 어떤가요?”

“응?”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는 단순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특별한 목표 없이 생활하면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려고 노력하는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대학생.

“당신의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요?”

“정해지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미래는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사실 ‘미래는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그거야 받아드리는 사람의 관점 차이지. 적어도 난 ‘정해져있는 건’ 싫어. 재미가 없잖아?”

“자신이 정해나가는 건 재미가 있단 건가요?”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녀와 이런 대화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속에 있던 불안들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내가 앞으로 걸어갈지, 뒤로 걸어갈지 어떤 걸 선택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지 않아?”

“당신의 이동이 궁금한 사람은 없을 텐데요.”

“아니. 비유란 거잖아. 비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요.”

“....응?”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정체모를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이곳에서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자리를 떠났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계속 보면서 나는 허공에 대고 대답했다.

“그럼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정해진 미래’라는 걸 깨는 모습을.”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길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는 지금 요시노家의 거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집의 주인, 요시노 사쿠라 씨다.

“설마 길을 잃어버릴 줄은 몰랐어요.”

사쿠라 공원에서 정체모를 소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면서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덧 나는 요시노家에 도착해 있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듣고 있는 거야?!”

“물론 듣고 있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쿠라 씨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한 사쿠라 씨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모르는 곳을 돌아다닐 땐 길을 정확히 기억해야한다는 경험을 얻었어요.”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은데 어째서 잊은 거야?”

“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요...”

시라카와 코토리란 미소녀와의 만남, 그리고 벚꽃나무 밑에서 정체모를 소녀와의 대화. 이정도면 돌아가는 길을 잊기엔 충분하다. 아, 후자는 아닌가.

“늦게까지 안 돌아와서 걱정했잖아.”

“연락 방법이 없던 것도 큰 문제였어요.”

“그렇네... 이번에 핸드폰을 하나 사야겠네...”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뭔가를 적으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지금 적고 계신 게 뭔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응? 구입 물품 목록.”

“...제가 쓸 물건들이요?”

“응. 옷이나 책 같은 것들.”

이왕 관련된 내용이 나왔으니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질문 하나 더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제가 여기로 올 때 제가 쓰던 것들을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나요?”

“그거? 쓸데없이 짐만 많아지니깐.”

“아니,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데 말이죠.”

“짐이 많으면 이곳으로 올 때 내가 힘들단 말이야.”

“뭔가 변명인 것 같은 느낌이...”

“에잇!!”

(따악!)

“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나의 머리를 사쿠라 씨는 가차 없이 내리치셨다. 벌을 받느라 방어에 대해 신경을 못 쓰고 있던 나는 그대로 사쿠라 씨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나는 고통을 느끼며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게 되었다.

“그런 건 일일이 따지면 안 되는 거야.”

“그렇다고 때리실 것까진 없잖아요.”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법이야.”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사쿠라 씨는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곤 깜짝 놀라셨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무슨 시간이요?”

나는 남아있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문지르면서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는 서둘러 움직이시면서 대답했다.

“빨리 서둘러! 오토메와의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오토메... 아, 오토메 누나요? 무슨 약속을 했더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사쿠라 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나에게 말했다.

“벌써 잊은 거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잖아!!”

“..............오오!!”

그제야 나는 오전에 있던 오토메 누나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시계는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서 준비해!!”

“준비라고 할 게 저한테 어디 있어요!!”

“어쨌든 빨리 나와!!”

사쿠라 씨는 허둥지둥 거실을 뛰쳐나가셨다. 바로 쫓아가려고 했던 나는 일어나면서 급격하게 다리에 느껴지는 데미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제한은 앞으로 10분. 늦으면 안 된다. 만약 늦게 된다면 앞으로의 나의 학생 생활이 걱정될 것이다. 나는 거실에서 뒹굴면서 외쳤다.

“제-엔 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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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하마터면 예악을 잊을 뻔했네.

위험해 위험해...


......이번것도 좀 짧은가?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7화-

“자, 여기.”

“이거 미안한데. 초면인데 얻어먹기만 하고.”

“괜찮아.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갈 테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나에게 초코바나나란 음식을 건네고 있는 미소녀의 이름은 시라카와 코토리. 10분 전에 사쿠라 공원의 수많은 벚꽃나무들 중 한 그루의 밑에서 만난 소녀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녀는 곧 내가 생활하게 될 ‘카자미 학원 부속 중학교’의 3학년생이다. 나도 3학년으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 결국은 동급생이란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이’ 같은 나이로 취급받게 되는 거지만. 아직도 왜 대학생인 내가 중학생으로서 생활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쿠라 씨의 생각을 좀처럼 읽을 수가 없으니.

그건 둘째 치고, 사실 그녀는 평범한 여학생이 아니다!

...아니, 뭐 어떤 나라 보스의 자식 같은 대단한 건 아니고.

아름다운 외모에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하는 말투. 그녀 자신을 모르겠지만 여러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은 미소. 여러 면을 따져봤을 때, 그녀를 여신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과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내가 지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다 신의 도움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매일 거기서 노래 연습을 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가끔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들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음..................”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가볍게 치면서 그녀 특유의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낙천적인건지, 무신경한 건지...”

나는 알다가도 모를 그녀를 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초코바나나를 먹었다. 초코바나나라는 건 막대에 바나나를 꽂고 초콜릿을 바나나에 바른 음식인데, 생전 처음 먹어보는 거라 불안 반 기대 반으로 먹어나갔다.

“흐음......”

바나나에 발라진 초콜릿이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하면서 바나나의 맛을 한층 더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맛있다.

원래 나는 초콜릿과 바나나를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합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구입해서 먹어볼까 했는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패스했었다.

애초에 내가 살던 세계에서의 화폐와 같은 화폐를 쓴다고 하는데 어째서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돈을 챙기는 걸 사쿠라 씨는 막으셨던 걸까. 이것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어때? 맛있지?”

벌써 자신의 것을 다 먹은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초콜릿과 바나나를 모두 싫어하는 내 마음에 들 정도의 물건이라면 충분히 히트를 칠 수 있겠어.”

그녀와 만난 뒤,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우리는 비어있는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초코바나나를 사왔다. 돈이 없는 내 몫까지.

처음엔 사양했지만 ‘이럴 때는 그냥 순순히 받는 게 예의야.’라는 그녀의 말에 ‘다음에 이자까지 쳐서 갚는다.’라는 조건으로 초코바나나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응? 뭐가?”

초코바나나를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있던 그녀의 말에 나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말을 뜻을 알 수 없었다.

“안 듣고 있었던 거야? 사쿠라이 군은 하츠네 섬에 오기 전엔 뭘 하고 지냈냐고 물어봤었잖아.”

“아아. 그랬었지....”

초코바나나를 먹기 전에, 나와 그녀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먼저 그녀에 대해서 들었는데, 특별한 건 없지만 학원 내에서 유명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녀가 나에 대해서 물었는데, 초코바나나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평범한 학생이었지.”

“특기도 취미도 없는, 타인과 잘 안 섞이려고 하는,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이었어.”

“흐음.... 그래? 즐거운 추억 같은 건 없어?”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곧 한 가지 추억이 떠올라서 나는 입을 열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수업도중에 바지에 실례를 한 기억이라면 있는데.”

“....................”

“.....................”

갑자기 우리 둘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동안 초코바나나를 다 먹었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왜 그래?”

“사쿠라이 군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응?”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여성을 앞에 두고 ‘어렸을 때 바지에 실례를 했던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렇군. 내 생각이 좀 짧았어. 미안해.”

그제야 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그녀는 나에게 충고를 해줬다.

“다음부터는 상황에 맞는 말을 하게 노력해. 알겠지?”

“뭐.......내가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고 있다면’이 아니라 기억하는 거야!”

“...노력은 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화가 덜 풀린 것 같다.

“설마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건 아니겠지? 사소한 걸 너무 신경 쓰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야.”

“사쿠라이 군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사소한 건 가볍게 넘어가는 게 예의란 거지.”

“.....................”

그녀의 온화하면서 날카로운 눈빛을 견디지 못한 나는 재빠르게 주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뭐 일정이라도 있어?”

“일정?”

“응. 시간이 여유롭다면 섬 안내를 해줬으면 해서 말이지.”

“음.....”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해줬다.

“미안.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거든.”

“그래? 아쉽군. 모처럼 미소녀한테서 섬 안내를 받을 수 있을까 했더니.”

그녀는 손바닥을 모으며 나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미안. 다음엔 꼭 안내해줄게.”

“아니, 원래 난 혼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깐. 신경 쓰지 마.”

“그럼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오늘은 여기서 그만.”

“그래. 인연이 있다면 또 볼 수 있겠지.”

“....어차피 같은 학교잖아.”

그녀에 말에 나는 고개를 저어보이며 말했다.

“같은 학교라고 꼭 만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분명히 그 말도 맞긴 한데,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잖아.”

“훗.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우....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볼을 약간 부풀리며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조금 더 그녀를 놀려보기로 했다.

“뭐, 내가 보기엔 너는 많이 힘들 것 같네.”

“그렇게 계속 나를 무시한단 말이지?”

“.........음?”

그녀의 반응을 보며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내기하자. 입학식 이후 3일 내로 네가 속해있는 반은 찾아내주겠어.”

“내기라... 재미있겠네. 그럼 좀 더 룰을 정해볼까?”

갑작스럽게 생긴 내기지만,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내기에 응했다.

“일단 승리조건부터 정해볼까?”

“내 승리조건은 입학식 다음 날부터 카운트해서 3일 내로 네가 속해있는 반을 찾는 것.”

“그럼 내 승리조건은 3일 동안 발견되지 않는다는 거군.”

“조퇴, 결석은 바로 패배로 인정하겠어?”

“입학식 뒤로 바로 조퇴나 결석하는 인간은 큰 병을 가진 녀석 말곤 없어. 그건 걱정 마.”

계속해서 우리 둘은 내기를 구체화했다.

“승리조건은 그걸로 됐고, 내기에 이긴 사람에겐 역시 뭔가 상품이 있어야겠지?”

“음.... 뭐가 좋을까......”

“귀찮은데 그냥 ‘이긴 사람의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하자.”

“응. 나쁘지 않네. 그걸로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입학식이 기대되는 걸?”

“나도. 꼭 이겨주겠어.”

그녀의 눈에는 승리를 갈망하는 눈빛이 조금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뭐, 열심히 해봐. 그럼 난 이만 간다. 다음에 보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사쿠라 공원을 빠져나왔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여흥거리론 충분하겠군.'

그렇게 나는 시라카와 코토리라는 미소녀와 이상한 내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닫지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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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은 듯?!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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