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어때? 좋은 집이지?”

“뭐, 이 정도면 제가 살던 집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겠는데요.”

오토메 누나와 헤어진 이후, 나는 사쿠라씨와 함께 요시노家 집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은 생각보다 집터가 넓었다. 이곳엔 갑부들 이외엔 보기 힘든 적당한 넓이의 정원도 있었다. 평소에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사는 것이 소원 중 하나였던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원에는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좋은 그림을 형성했다.

정원 구경을 끝낸 나는 사쿠라씨의 안내에 따라 집 구경을 했다.

이 집은 2층집이다. 현관문을 열면 복도가 보인다. 신발을 벗고 복도를 조금 걸으면 오른쪽에 여닫이문이 보인다. 이곳은 거실이라고 부르는 곳.

안에 들어가 봤는데 재미있는 것이 보였다. 요즘 세상, 내가 살던 곳에선 다다미방이 그다지 많지 않다. ‘구식’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서 가정집에서 다다미방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 집의 거실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분위기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집에서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는 곳은 사쿠라씨의 방과 이곳뿐이라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이라고 사쿠라씨가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비슷한 대답을 들을 것 같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곳에는 6인용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24인치 TV가 있고 구석에는 난초가 몇 개 있었다.

거실에서 나와 다시 복도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복도가 이어졌다. 그 코너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2층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왼쪽으로 갔다.

조금 걷다보면 오른쪽에 부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잠시 부엌에 들려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사쿠라씨는 지금까지 혼자서 살아왔다고 했는데 부엌엔 조리기구들이 꽤나 있었다. 그 외에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이나 이것저것을 살펴본 결과, 혼자서 살아온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살아왔던 것 같았다. 어째서 사쿠라씨가 혼자서 살아왔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거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부엌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면 사쿠라씨의 방이 나왔다. 복도의 오른쪽에 문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려고 했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이유로 크게 혼이 났다.

사쿠라씨의 방을 지나쳐 더 걷다보면 욕실과 화장실이 나왔다. 욕실에 들어가 보니 성인 3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큰 욕조가 있었다. 혼자 살면서 어째서 이런 큰 욕조가 있는지 물어보니 ‘넓은 욕조에 혼자 들어가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느껴보기로 하고 욕실에서 나왔다.

2층에 올라가려고 계단에 도착했을 때 나는 사쿠라씨를 보며 말했다.

“사쿠라씨.”

“응?”

“어째 집을 사려고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요.”

내 말에 사쿠라씨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하셨다.

“그래? 하지만 미리 집의 구석구석을 알아두면 편하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자자, 어서 2층으로 올라가자. 이제 집 구경도 곧 끝나니까.”

“네......”

나는 사쿠라씨에게 등을 밀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오니 눈앞에 복도가 보였고, 그 복도를 중심으로 양 쪽에 2개씩 총 4개의 방이 있었다. 그 중 3개는 빈방이고 나머지 한 개는 앞으로 내가 쓸 방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 구경을 하지 않고 그냥 1층으로 내려갔다. 사쿠라씨가 따라오면서 말하셨다.

“너의 방은 안 보는 거야?”

“그런 건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요.”

“그럼 지금부터 뭘 할 건데?”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미방에서 뒹굴고 싶어요.”

“...................”

“어째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계시는 건데요.”

“아니, 실제로 그렇잖아. 자기가 쓸 방을 안 보고 거실에서 뒹굴겠다니.”

다다미방의 문을 열면서 나는 말했다.

“저는 즐거움은 가장 마지막에 두는 성격이거든요.”

“흐암..........”

하품이 저절로 나왔다.

“이걸로 몇 번째인지 알고 있어?”

“글쎄요. 한 3회?”

“10회째야.”

“아, 그런 가요.”

나와 사쿠라씨는 지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아니, 보고 있었다. 집 구경을 끝내고 거실에서 TV를 보기 시작했지만 재미없는 프로그램들뿐이라 금방 지루해졌다. 그래서 나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지루함을 어떻게 없애버릴까 생각을 하다가 나는 명안을 떠올렸다.

“사쿠라씨.”

“응?”

TV를 보고 계시던 사쿠라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왜?”

“하츠네 섬을 좀 둘러보고 싶어서요.”

“흐음......그래?”

“네. 여기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밖에 나가서 섬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쿠라씨는 잠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확실히 그렇겠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럼 나는 남아 있는 일을 처리해 볼까나~”

“응? 무슨 일이 있으신데요?”

내가 고개를 돌려 사쿠라씨를 보며 물으니 사쿠라씨는 손가락으로 V 사인을 그리며 대답하셨다.

“너의 입학 수속을 해야지.”

“아.....그렇군요.”

“8시까지는 돌아와야 해. 저녁 약속 잊은 건 아니겠지?”

분명히 오늘은 옆집의 아사쿠라家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강제였지만 싫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다 보니 잊고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정말이지.... 8시까진 꼭 돌아와야 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대장!”

나는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나.”

나는 일단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결정하고 발을 움직였다.












“후우.............”

지금 나는 벤치에 앉아있다. 동네를 두 바퀴 정도 돌고 난 후에 주변 지리는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 뒤로 계속 걸어 지금 이곳, 사쿠라 공원에 도착했다.

사쿠라 공원은 많은 벚꽃나무들로 봄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내가 있던 세상은 가을이었지만 이곳은 이제 봄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곳이 다른 세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앉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좀 있는 맑은 날이다.

“1년 내내 벚꽃이 지지 않는 다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나는 예전부터 벚꽃나무를 좋아했다. 만발했을 때 벚꽃나무의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금방 벚꽃이 져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감정은 느낄 수 없다. 1년 내내 벚꽃이 피어있으니까. 바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함 때문에 그런지 약간 졸려서 기지개를 폈다.

“끄으~~”

기지개를 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응? 갑자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몇몇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을 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또다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부르는 건가. 일단 들린다는 말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란 건데.....”

흥미가 생긴 나는 귀를 기울이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 근처일 텐데.....”

나는 길에서 벗어나 벚꽃나무 사이를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점점 노랫소리는 크게 들려왔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는 있지만 좀처럼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슬슬 사람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걷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눈 앞에는 지금.........

“여긴............”

지금 내 눈 앞에는 벚꽃나무가 보인다. 주변에 있는 벚꽃나무들이 아닌, 그것들보다 훨씬 큰 벚꽃나무가 보였다.

“저기는.....”

그 큰 벚꽃나무 주변엔 다른 벚꽃나무들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 넒은 공터의 중간에 큰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내가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눈을 뜬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군. 이곳 사쿠라 공원에는 특별히 길을 따라서 걸을 필요가 없던 거였어. 어떻게 걷든지 목적지엔 도착할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터 중심에 있는 벚꽃나무 근처에 누군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인가? 노래를 부른 사람이.”

나는 가까이 가지 않고 벚꽃나무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며 큰 벚꽃나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보기로 했다. 옆으로 몇 걸음 옮기자 그 사람의 모습이 잘 보였다.

‘......여자 아이잖아?!’

큰 벚꽃나무 근처엔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허리까지 오는 붉은색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오토메 누나와는 또 다른 미인이었다.

그녀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의 가슴부분엔 적당한 크기의 연녹색 나비모양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하얀색의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에는 파란색의 리본이 달려 있었다.

오토메 누나가 ‘평온하고 단정한,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녀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은 청순가련’이었다.

‘우와.... 오토메 누나 이외에도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 세계에 와서 정말 다행이다!!’

혼자서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이런 미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토메 누나와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 ”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밝고 조용했다. 아무리 화가나 있는 사람도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풀릴 게 틀림없다.

“ ~~♪♪ ”

노래 가사나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걸 알고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가창력에도 조금 놀랐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르네. 가수급 수준인데? 아, 정말 아이돌 가수일지도.’

그녀는 아이돌 가수라고 할 만큼의 미모와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거긴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메이크업 같은 걸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화장을 하는 예전 세계의 여성 가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 ~~♪♪ ”

그녀는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감상하기로 했다. ‘할 수 있을 때 하라!’. 나의 신조다.

‘노래도 잘 부르는데 거기다가 미소녀! 저 사람의 남자친구인 사람은 정말 행복하겠는 걸.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상에 푹 빠져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멈췄다.

‘.....어라? 끝난 건가?’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

“...................”

“.....우와앗?!?!?!”

“꺄아-!!!”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아까 전까지 큰 벚꽃나무 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미소녀가 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갑자기 놀라서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그녀도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넘어짐과 동시에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었기 때문이다.

“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놀라신 것 같네요.”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상태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뇨. 제가 갑자기 앞에 있어서 놀라셨던 모양이에요.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최대한 빨리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일단 상황을 분석해보자..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방금 전까지 큰 벚꽃나무 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그걸 감상하고 있었지...’

“저.....저기......”

‘눈을 감고 계속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멈춰서 눈을 떠보니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지....’

“저....저기요......”

‘그럼 아까 전에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 건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서 이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인가? 음... 그랬던 것 같군....’

“저기... 이제 그만 제 말을 들어 주시지 않으실래요?”

“음......핫!! 아, 죄...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아뇨, 저 때문에 잠시 혼란에 빠지신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난 반사적으로 거기에 맞춰 똑같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뇨 아뇨. 이쪽이야 말로.......”

서로 사과를 한 다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이 사람에 푹 빠질 것만 같았다.

“저기.......노래.........”

“.....네?”

“노래....들으셨나요?”

그녀는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나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어쩌다보니.........”

“죄....죄송해요. 잘 부르지도 못 하는데 괜히....”

그 말에 나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정말 잘 부르시던데요. 놀랐어요. 이 정도로 잘 부르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거든요.”

“아니에요.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실력은 아닌걸요.”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혹시 가수 아니야?’라고 생각했었을 정도라니까요.”

“가수라니 그런... 전 평범한 학생일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묻기로 했다.

“...학생이라면...........카자미 학원의?”

‘카자미 학원’이란 단어에 그녀가 반응을 보였다. 나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그곳 학생이신가요?”

“음.... 학생이라면 학생이라고 할 수 있고, 아니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학원 내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아직은 학생이 아니거든요. 곧 카자미 학원에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그렇게 말하시는 걸 보니 그쪽은 이미 카자미 학원 학생이신 것 같네요?”

“아, 네.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 시라카와 코토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도 같은 행동을 보이며 말했다.

“아, 저는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이 될 사쿠라이 세이토라고 합니다. 이쪽이야 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시라카와 코토리란 미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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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포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라카와 코토리는 D.C.2보다 50년 전의 시대의 인물

...이지만 내보내는 건 작가인 본인맘.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5화-

“짜잔~ 여기가 바로 요시노家. 앞으로 니가 살게 될 집이야~~”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양 팔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왼쪽에 있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었다. 부실공사가 되어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다지 비싸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집이었다.

“어때? 좋지? 좋지?”

“아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물어보신들...”

어느덧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다가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나의 감상을 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 밀어내며 나는 대답했다.

“체엣- 앞으로 살아갈 집이니깐 첫 느낌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조잔하긴.”

“아니, 감상이고 뭐고 할 게 있나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집인데요.”

나의 말을 들은 사쿠라 씨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건 틀렸어!!”

“..........뭐가요.”

“그렇게 메마른 감정을 가지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 어쩜 그렇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니?!”

“....................”

어이가 없어서 입을 조금 벌리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뭔가 자신의 의견을 팍팍 내야할 거 아니야!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만족해서는 성장할 수 없어!!”

“....뭔가 주제가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쿠라 씨가 화가 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약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단 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난 단지 평범한 집을 보고 ‘평범하다.’라고 말한 것 뿐 인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라? 사쿠라 씨.”

사쿠라 씨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 그 존재를 봤는데...........

“...................”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세상 사람들에겐 각자의 기준이 있다. 어떤 것의 좋고 나쁨을 따질 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기준을 중심으로 ‘이건 나쁘다.’ ‘이건 좋다.’라고 말을 한다.

어쨌든, 나는 한 명의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연갈색 머리를 커다란 분홍색 리본으로 묶어두고, 학교의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데 흐트러짐 없이 매우 단정했다. 가볍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선 온화함이 느껴졌고, 매우 야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오토메 오랜만이야.”

목소리를 듣고 뒤로 돌아본 사쿠라 씨는 그 소녀를 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행을 떠나신 뒤로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었어요. 이제 돌아오신 건가요?”

“응. 대충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거든. 그래서 돌아왔어.”

“그러시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이라고 할 건 없었어. 여행하는 건 자주 있었던 일이고,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으니깐.”

“그러셨나요. 그거 다행이네요. 여행은 무엇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게 최고죠.”

사쿠라 씨와 오토메라고 불린 소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 두 사람은 꽤나 친분이 있는 관계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게 무안해서 나는 사쿠라 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화를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있다는 걸 잊으시면 좀 곤란한데요.”

“응? 아아 미안, 미안. 오랜만에 오토메랑 이야기를 해서 깜빡하고 잊고 있었네.”

“사쿠라 씨? 그 쪽은....?”

그녀도 나의 존재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흠.... 이 정도의 미인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선 찾기 힘든데 말이지...’

그러게 생각하고 있던 사이에 사쿠라 씨가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이쪽은 사쿠라이 세이토군. 앞으로 나랑 같이 살 아이야.”

“예? 사쿠라 씨랑 같이 살 거란 말인가요?”

사쿠라 씨의 말에 그녀가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아이가 갑자기 사쿠라 씨와 함께 산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 걸까.

“응.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내가 얘를 맡아야하거든.”

“그거 참 힘드시겠네요...”

“응. 많이 힘들겠어. 남자 아이들이란 좀처럼 사람의 말을 잘 안 들으니깐.”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자니 내가 나쁜 사람이란 이미지가 그녀의 머릿속에 박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어라, 듣고 있었어?”

‘그 말은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단 말인가요.....’

약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쿠라이 세이토라고 합니다. 앞으로 요시노 사쿠라 씨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사쿠라 오토메라고 합니다. 카자미 학원 본교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쿠라 씨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나도 그 답례로 인사를 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하. ‘아사쿠라’란 성을 쓰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란 말이지. 그렇단 말은 옆집 식구들이 ‘아사쿠라’란 성을 쓰고 있단 말이군. 그래서 사쿠라 씨가 내 이름이 문제라고 했던 거구나.’

그제야 나는 사쿠라 씨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사쿠라 씨는 내가 저 집 사람들의 친척관계가 아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쓰려고 하셨던 거다. 다행히 내 성을 ‘사쿠라이’로 바꾸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것에 대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건 그렇고, 아사쿠라 씨. 학생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했죠? 고생 많으시겠어요. 학교엔 문제아가 한두 명씩은 꼭 있던데, 에.... 카자미 학원이랬나? 거기엔 그런 학생이 없나요?”

“.........................”

첫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내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방금 내 말은 깔끔하게 무시당한거야?’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은 학생회장에 걸 맞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저기... 아사쿠라 씨?”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

갑자기 거부당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옆집에 살다보면 그 아이와도 만날 일이 있을 텐데 그 아이랑 저를 부르는 게 둘 다 ‘아사쿠라 씨’면 만약 두 사람이 같이 있을 경우에는 좀 곤란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의 호칭이 모두 ‘아사쿠라 씨’이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부르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일단 여기선 그 뒤의 일까지 생각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당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모를 듬직함을 느꼈다.

‘과연 학생회장의 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이군.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토메’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면인데 저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으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쿠라 씨가 해결책을 말해주셨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

“어떤 방법인데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하셨다.

“세이토 군은 앞으로 카자미 학원 부속중학교 3학년생으로 지낼 거야. 그러니까 오토메가 세이토 군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거지.”

“헤에.. 그런 거였군요. 제가 누나였군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부속중학교에 다닌다고 했었죠. 잊고 있었네요.”

우리 두 사람의 말에 사쿠라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오토메 누나’라고 부르면 될 거고, 오토메는 그냥 편하게 ‘세이토’라고 부르면 될 거야.”

“아니, 그것도 좀.........”

내 말에 사쿠라 씨는 불만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그럼 뭐야. 딱히 생각나는 방법도 없잖아? 그냥 내말대로 해.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야.”

“으음....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누나’란 호칭을 쓰기에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친하게 ‘누나’나 ‘형’같은 호칭을 쓰는 건 꽤나 어렵다. ‘니가 뭔데 어디서 친한 척이야.’같은 말을 들어 오히려 사이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선뜻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거 좋겠네요. 그럼 그걸로 하죠.”

라고 말하며 수긍했다.

“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 그냥 사쿠라 씨의 말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근데 순간 반말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녀의 말투 변화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태클을 걸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사쿠라 씨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할 수 없군....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오토메 누나.”

“음... 호칭은 좋은데 존댓말은 좀 그렇다. 그냥 편하게 반말 해도 괜찮아.”

“아니, 이쪽이 곤란한데요.”

“괜찮아, 괜찮아. 이 누님이 괜찮다고 하는 거니깐 괜찮은 거야.”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치면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

“아니,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야.”

그냥 넘어가려는 나를 그녀는 막아섰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내 말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쳇. ‘무난히 넘어간다.’라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알겠지? 이제부턴 그냥 편하게 말하는 거다? 이건 학생회장의 명령입니다. 알겠죠?”

“에에. 그건 권력남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게 우리 학생회의 임무니까 이건 권력남용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양 손을 가져다 대고 가슴을 앞으로 당당히 내밀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저항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그럼 앞으로 편하게 부르겠어. 이러면 되겠지?”

“응! 나는 착한 아이를 좋아해요~”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쿠라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근데 오토메. 오늘 학생회 일이 있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오토메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누가 봐도 교복차림이었다.

“그거 교복이지? 주말에도 학생회 일이 있어?”

“응. 회의가 있거든. 이제 곧 입학식이니 입학식 준비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주말에도 가끔 회의를 해.”

“호오. 그거 고생이 많겠네.”

“응. 2~3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는데 매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래서 이 누님은 많이 힘들단다.”

반 장난으로 우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면 아까 전에 보였던 ‘늠름한 학생회장’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어리광부리는 소녀’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사람이 학생회장이어도 괜찮을 걸까....’

조금은 진지하게 학교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의 대화에 사쿠라 씨가 끼어드셨다.

“그럼 어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아 맞다!! 빨리 가지 않으면 마유키한테 혼나는데!!”

오토메 누나는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생각 난 건지 오른 주먹으로 왼손 손바닥을 치더니 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아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어서 가지 않으면 늦겠어~~”

“그럼 어서 가봐. 여기서 잡담을 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중요하잖아?”

“응! 그럼 먼저 갈게~”

오토메 누나는 우리를 뒤로 하고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하자~!! 우리 가족들한테 널 소개해줘야 하니까~ 알겠지~?!”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 대답은? 나한테 거부권은 없는 건가?!”

“뭐 어때. 어차피 너를 소개해 주러 가야했었으니까.”

“예? 어째서요?”

“아사쿠라家와 요시노家는 친척관계인걸.”

“.......그런 거였습니까.”

“응. 그런 거야.”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나와 사쿠라 씨는 앞으로 내가 생활할 요시노家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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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5화.

....정말 나 어디까지 써둔거지. 체크를 안 해서 기억이 안 나네. =-=;;;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4화-

눈이 내리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느끼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으로 뒤덮인 이 세상에 홀로 있다.

이곳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없다. 나 이외의 존재는 다 사라진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 내가 끼어든 것일지도.

지금 나는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그 사람의 웃는 얼굴.

그 사람의 우는 얼굴.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본 그 사람의 모습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눈을 뜨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꿈을 꾼 것 같다.

‘평소에 꾸던 꿈이랑은 다른 내용이지만 이번에도 꽤나 이상한 꿈이군... 근데 내가 꾸는 꿈들엔 의미가 있는 걸까?’

세상 사람들은 꿈에 대해서 신경을 잘 안 쓴다. 길몽이다 흉몽이다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꾼 꿈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특수한 꿈’을 꾼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 ‘특수한 꿈’이란 것은, 같은 내용의 꿈이란 것이다. 거기에 매일같이 그것이 반복된다. 마치 노래가 무한 반복되도록 설정해둔 음악재생기처럼.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꿈을 꾸고 난 후에 느껴지는 이 쓸쓸함은 도대체 뭐냐고...’

깨어난 후 느껴지는 가슴 한 곳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처음엔 무시해왔지만,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고 계속해서 느끼는 쓸쓸함이 나를 괴롭혔다.

‘.........혹시 방금 내가 꾼 꿈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도중, 하나의 결론이 나왔지만 나는 자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꿈을 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그 ‘특수한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계속 생각해왔다. 언젠가 이 쓸쓸함의 진정한 뜻을 알려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난 ‘그 사람’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요시노 사쿠라.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집에 찾아온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 외모. 하지만 그 작은 외모에 비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나를 압도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난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이라고.

그래서 난 그녀를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스윽)

“..............???”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에 반응해 눈을 떠보니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어, 깼어?”

“사쿠라씨.............”

내 눈 앞에는 사쿠라씨가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의 허전함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상황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꿈을 꾼 것 같아요.”

“응. 그런 것 같아 보였어.”

나의 말에 사쿠라씨는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쓸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 했다.

“별로 좋은 꿈은 아닌 것 같아요.”

“응. 그럴 것 같았어.”

또 다시 침묵.

나는 누워있는 채로 하늘을 보았다. 이런 나의 기분과는 정반대로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거기에 바람도 가끔씩 불어왔다. 날씨는 정말 좋았지만, 나의 기분은 더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날씨라도 좋아서 다행이군. 날씨마저 안 좋았다면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겠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날씨가 좋네요.”

그러자 사쿠라씨는 마찬가지로 하늘을 쳐다본 후 말하셨다.

“응. 좋은 날씨네. 산책하기 딱 좋겠어.”

‘좋아. 이번엔 성공이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면서 다음 화제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러던 도중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응? 지금 내 시선의 방향으로 보건데, 지금 난 뭔가를 베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 머리가 있던 장소를 보았다. 그곳에는 사쿠라씨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쿠라씨의 다리가 저기에 있다는 말은.....’

“응? 왜 그래?”

사쿠라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셨다. 나는 그녀의 양다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무릎베개 해주셨던 겁니까?”

“응. 그냥 누워있으면 안 좋으니까.”

“...................”

“왜? 싫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싫은 건 아닌데요.”

“그럼 상관없잖아.”

“뭐... 그렇겠네요.”

나는 사쿠라씨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번 대화로 분위기는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암울한 분위기는 벗어난 것 같군. 다행이다.’

“하나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사실 지금 머리가 욱신거리고 있거든요? 아까 전에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별거 아닌데? 그냥 이 가방으로 너의 머리를 강하게 쳤을 뿐이야.”

사쿠라씨는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올 때 가져왔던 큰 가방을 손으로 가볍게 몇 번 치면서 말하셨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입을 벌리고 약간 놀랐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기절하기 전에 FPS에서 들릴법한 중년의 아저씨의 목소리 톤의 말이 들렸던 거군.’

“세이토 군. 기분은 좀 어때?”

“예? 아...... 별로 나쁘진 않아요. 머리가 좀 아픈 것 빼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 기억 속에 있던 평소의 그녀의 표정이었다.

“일단 상황을 좀 정리해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

.

.

.

 

“이제 이해가 됐어?”

“예... 대충은요.”

30분 정도의 대화를 통해 나는 머릿속의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던 ‘세계’가 아니다. 그곳과는 ‘다른’ 세계이다.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지만,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쪽 세계’에 존재하는 ‘하츠네 섬’이란 곳이다. 사쿠라씨의 말에 의하면 이곳엔 벚꽃나무가 많은데, 1년 내내 벚꽃이 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명소라고 한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벚꽃나무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나무들은 모두 벚꽃이 만개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의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이 섬에 ‘아사쿠라’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내가 만약 ‘아사쿠라 세이토’란 이름을 그대로 써버리면 여러 가지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고 사쿠라씨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만 바꾸기로 했는데, 사쿠라씨가 ‘사쿠라이’라는 성을 추천해줬고, 나는 그대로 그걸 쓰기로 했다. 이쪽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이제부터 ‘사쿠라이 세이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론 의식주문제.

그것은 내가 사쿠라씨의 집에서 같이 사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적당히 음식을 만들 수 있기에, 식사는 내가 만드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음으론 앞으로의 나의 생활문제.

근데....................

“이것만큼은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는 사쿠라씨에게 항의했다.

“어째서?”

“아니, 아시다싶이 전 ‘저쪽 세계’에선 대학생입니다.”

“근데?”

“그런데 어째서 제가 이쪽 세계에서는 ‘중학생’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쪽이 더 재미있잖아. 안 그래?”

“....................”

“우와. 저 일그러진 표정 좀 봐....”

사쿠라씨의 말에 나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농담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쿠라씨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치면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말하셨다.

“이런 이유는 어때?”

“.......일단 듣겠습니다.”

“여기엔 부속 중학교와 본교만 있거든. 그래서 대학생으로 생활하려면 이 섬을 나가야만 해.”

“즉, 제가 이 섬에서 생활해야하니까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포기하라는 말?”

“응.”

사쿠라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섬 밖으로 나갔을 때의 지원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생활하면 안 될까요. 대학생이나 되는 놈이 중학생으로 생활하는 건 좀.....”

“에에~? 그럼 재미가 없는데~~”

“.......................”

“아, 또 표정이 일그러졌어.”

“당연하잖아요.”

“어쨌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너무하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사쿠라씨의 말대로 하기로 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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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화를 올렸쿤...

이거 몇 화까지 써뒀더라. 어서 다음 화도 써야하는데...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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