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그날 저녁.

이번엔 저녁을 요시노 가에서 먹기로 했다. 물론 아사쿠라 가 사람들과 함께.

요리는 나와 오토메 누나가 함께 만들었다. 메뉴는 평범한 일식. 내가 요리를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지만, 잘하는 편은 아니라 오토메 누나의 서포터 역할을 맡았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들었는데, 오토메 누나의 동생인 아사쿠라 유메는 요리를 전혀 못 한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가 들어와서 기뻐한 나는 그것을 자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대충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고, 나와 오토메 누나가 음식들을 거실로 옮겨왔다. 우리는 다다미방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아니, 차분한 저녁 식사가 되길 바랬다.

“그러고 보니 세이토는 말이야.”

“응?”

식사가 시작 된지 몇 분 후, 오토메 누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따라 나는 자동적으로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녀를 봐야 했다.

“부활동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는 거야?”

코토리가 전에 교실에서 나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이었다. 그 때 코토리에게 대답을 했었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 끌리진 않는데.”

“그럼 학생회에 들어오지 않을래?”

“음?”

그녀의 권유가 학생회라는 점에서 조금 놀랐지만, 바로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봤다. 학생회에 들어가서 내가 이득을 보는 게 뭐가 있을지, 뭐가 나와 안 맞을지. 그리고 곧 결론을 냈다.

“...왠지 이것저것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싫어.”

“그런 말 하지 말고~ 같이 학생회 활동하면서 내가 이것저것 알려줄게. 하츠네 섬에 대해서라던가, 학생의 마음가짐이라던가.”

‘학생의 마음가짐’이란 부분이 조금 궁금했지만, 그것 때문에 학생회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난 정중히 거절하기로 했다.

“하츠네 섬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야 있으니까 오토메 누나가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응? 벌써 친구가 생긴 거야?”

방금 한 내 말에 오토메 누나뿐만 아니라 사쿠라 씨도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아사쿠라 유메만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고, 쥰이치 씨는 ‘호오-’라며 조금은 흥미가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 사쿠라 씨는 ‘학교에 처음 간 자식이 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니까 흥미가 생긴 부모’같은 느낌? 뭐 지금 상황에서 보면 사쿠라 씨와 나의 관계는 부모자식관계라고 봐도 될 정도지만.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식사를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렇다고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법, 할 수 없이 난 식사를 멈추고 그들에게 말해줬다.

“사쿠라 씨에겐 말한 적이 있을 거 에요. 시라카와 코토리라고 저랑 내기를 했던.”

“아아, 그 아이?”

사쿠라 씨는 저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셨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특히 오토메 누나는 큰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시라카와? 그 시라카와 씨?”

“‘그’라는 게 누굴 가리키는지 모르겠는데.”

“붉은색의 생머리에 미인이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난 그 시라카와 씨?”

“뭐......맞는 것 같은데.”

‘근데 지금 난 밥을 먹고 싶다고...’

난 지금 배가 고프다.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식사를 멈추면서까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흥미 가득한 표정의 오토메 누나를 보니, 아무래도 내가 밥을 다 먹게 되는 건 한참 후가 될 것 같다.

“세이토가 그 시라카와 씨와........”

“....뭔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라고?”

순간 오토메 누나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러나 오토메 누나에겐 내 말이 도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디까지 간 거야?”

“...그냥 아는 사이니까 착각은 거기까지 해줬으면 좋겠어.”

“어? 애인 관계가 아닌 거야?”

“방금 아니라고 말했잖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토메 누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더니 실망했는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모처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기나 했더니..”

“나는 이야기보따리가 아니야.”

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이 나고, 느긋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말이지.”

....라고 말하고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세이토는 지금 애인 없는 거야?”

“없어. 내가 이 세......가 아니라 하츠네 섬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애인이야.”

“그럼 하츠네 섬에 오기 전에는?”

“..........없어.”

좀 더 따지자면, 이전 세계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여성은 전혀 없다. 그 점이 왠지 모르게 슬펐지만,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갔다.

“성격을 조금만 바꾸면 충분히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뭐........나도 애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딱히 당장 필요하진 않고...”

이제 적당히 대화를 끝내고 밥을 다시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는 순간, 오토메 누나가 내 쪽으로 몸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세이토의 애인이 되어줄까?”

“.........................”

오토메 누나의 갑작스런 발언에 젓가락을 잡고 있던 오른손가락이 순간 움찔해서 젓가락이 떨어졌고, 왼손에 들고 있는 밥그릇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내 착각이 아니라면 아사쿠라 유메가 방금 그 말을 듣고 움찔거렸다.

난 천천히 흘린 밥과 그릇을 정리한 다음에 그녀를 보았다. 오토메 누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진심이야?”

“한 70%정도?”

여전히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방금 그 말이 진심이라곤 생각이 되지 않았다. 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는 조금 화가 났는지 불만을 표했다.

“뭐야, 지금 이 누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대답했다. 농담이라면 농담으로 끝날 이야기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면 조금 곤란하다.

‘물론 기쁘긴 한데, 이렇게 스트레이트는 좀....’

나는 진정하고 냉정하게 생각을 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아직 아는 것도 제대로 없는 저 오토메 누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론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왠지 오토메 누나의 애인이 되면 죄를 짓는 것 같으니 거절할게.”

“뭐야 그게~ 좀 더 그럴싸한 이유는 없는 거야?”

“아니,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지만 아무래도 대충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오토메 누나는 볼을 잔뜩 부풀리면서 화를 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찬스.

“자, 이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밥 좀 먹자. 이야기만 하다가 배고파 쓰러지겠어.”

그렇게 강제로 이야기를 종료시키고, 난 재빨리 밥을 먹었다. 그러자 오토메 누나도 포기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사쿠라 유메에게서 ‘언니에게 손을 댄다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라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아무래도 아사쿠라 유메와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첫 만남이 최악이라서 그런지, 지금보다 관계를 좋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저녁 식사 후, 아사쿠라 가 사람들은 간단히 과자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실에는 나와 사쿠라 씨만이 남았다.

“아 그래.”

사쿠라 씨는 갑자기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방으로 잠시 가시더니, 상자를 하나 들고 오셨다.

“뭔가요 이건?”

“네가 앞으로 쓸 핸드폰.”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필요했었죠...”

나는 사쿠라 씨에게서 상자를 받아서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충전기, 몇 종류의 핸드폰 줄, 설명서와 내 핸드폰이 담겨져 있었다.

“음. 폴더형이군요.”

열고 닫는 형식이라 이름 붙은 폴더형 핸드폰. 예전 세계에서 쓰던 핸드폰도 폴더형이었기 때문에, 내 맘에 쏙 들었다.

“색상은 괜찮아?”

“네. 전 색상을 따지는 편이 아니라 상관없어요.”

전체적으로 색상은 군청색이고, 적절히 붙어 있어야할 버튼은 붙어있고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하는 버튼들은 조금 거리가 있게 되어 있는 구성이었다. 예전 세계의 핸드폰은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빈번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이번엔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핸드폰을 살피는 나를 지켜보던 사쿠라 씨는 혹여나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은...

“딱 좋은데요. 예전에 쓰던 것보다 더 편할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혹시나 싫어하면 바꾸러 가야하니까 귀찮아지니까 말이지~”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사쿠라 씨는 안심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셨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사쿠라 씨의 미소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지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사쿠라 씨는 핸드폰 가지고 계시나요?”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좀 우습지만, 이 사람이라면 핸드폰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쿠라 씨의 볼이 살짝 부풀어지더니, 조금 화가 난 것 같은 말투로 말하셨다.

“날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뭐....이미지가 좀 그렇다고 할까....”

“나도 내 휴대폰이 있어! 얕보지 마!”

“아니, 얕본 건 아닌데...”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하는데 사쿠라 씨가 가볍게 손바닥으로 나의 이마를 치셨다.

“아얏.”

“이건 날 얕본 벌이야.”

“....네.”

이런 면에선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면 또 혼나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 지금 날 비웃는 거야?”

“아니, 아니. 비웃지 않았습니다.”

“수상한데......”

수상한 사람을 바라보는듯한 사쿠라 씨의 시선이 괴로웠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럼 번호랑 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저장해두게.”

“이미 저장되어 있어.”

“.....빠르시네요.”

“어차피 나중에 저장할거고, 핸드폰이 잘 되는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샀을 때 바로 저장했지.”

‘에헴!’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사쿠라 씨는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전 이제 슬슬 자러 가볼게요.”

“아, 참고로 오빠랑 오토메, 유메의 번호랑 메일 주소도 저장해뒀어.”

“.....남의 핸드폰에 그렇게 마음대로...”

“우리가 남이야?”

순간 사쿠라 씨의 싸늘한 표정이 보여 흠칫한 난 90도로 몸을 숙여 사죄했다.

“아닙니다.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잘했어.”

사쿠라 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방긋 웃으시더니, 손으로 가볍게 내 머리를 어루만지셨다. 나는 다시 사쿠라 씨께 인사를 한 다음에,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뒤 책상 의자에 앉아서 폰을 만지작거렸다.

“핸드폰이라.....”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핸드폰. 이전 세계에선 시계 or 간혹 오는 연락용으로 썼기 때문에 이곳에선 어떻게 쓰일지 앞날이 걱정되었다.

[띠링~]

“...응?”

갑자기 핸드폰에서 소리가 나기에 열어봤는데,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누가 보낸 거지? 사쿠라 씨인가? 아니면 광고 메일?”

궁금해진 나는 버튼을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봤다.

[제목 : 핸드폰 생겼다며~]

[안녕~ 아까 저녁 준비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시간 절약이 되었어. 그리고 핸드폰 생긴 거 축하해~ -아사쿠라 오토메-]

오토메 누나가 보낸 메일이었다. 내 핸드폰의 존재나 메일 주소는 사쿠라 씨를 통해서 알아냈음이 틀림없다. 사쿠라 씨가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어디보자...답장을 보내는 방법이....”

예전 세계에선 메일을 자주 썼던 것이 아니라서 핸드폰을 처음 조작하는 어르신들처럼 좀 힘겹게 조작을 해서 답장을 보냈다.

[제목 : 감사합니다.]

[축하해줘서 고마워. -세이토-]

“짧게 보내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써먹겠나.”

나는 휴대폰을 침대로 집어 던졌다가 오토메 누나의 답장 때문에 침대까지 가서 핸드폰을 다시 가져왔다. 그 후 오토메 누나와 몇 번 메일을 주고받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 코토리에게 번호와 메일 주소를 알아내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보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심심해서 사쿠라 씨에게 메일을 보내봤는데 이런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방에서 정좌를 하고 혼났다는 것과 아사쿠라 유메에게 예의상 메일을 보냈는데 ‘변태’라고 답장이 와서 메일로 격하게 싸웠다는 건 또 다른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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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를 언제 적을진 모르겠지만....

뭐 언젠간 완결내겠죠. (머엉)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17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쿠라 씨가 돌아오자마자 내 방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필요한 테이블을 시작해서 침대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사쿠라 씨가 침대만큼은 치울 수 없다고 하셨기에 절충안으로 테이블 만이라도 치우기로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대만족이다.

“그래!! 바로 이 모습이야!!!”

넓어진 방의 모습을 보고 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 때문에 꽉 막힌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시원스럽게 뻥 뚫려있는 것 같다.

“이얍.”

그 모습에 만족한 난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스프링의 반동을 느끼며 누운 다음, 천장을 보면서 차분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잊고 싶지 않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유는 아니고, 그냥 시간 때우기다.

“어디보자....오늘 있었던 일들이....”

첫 번째. 교실 앞문에서의 해프닝. 앞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리지 않는 문을 가지고 원맨쇼.

“하필이면 그 녀석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별로 얽히고 싶지 않는 사람과 연관되는 일이 있으면, 꽤나 기분이 나쁘다. 교실 문에서의 해프닝이 바로 그것이다. 하필이면 아사쿠라 유메라는 민폐녀 앞에서 그런 일이....

“아니야.....분명히 나에게도 찬스가 올 거야....그 녀석 눈앞에서 신나게 웃어줄 그 날이...”

라고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코토리와의 재회. 시라카와 코토리라는 미소녀와 같은 반이라는 것. 다행이 이쪽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덕분에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이.....”

세 번째. 유키무라 안즈의 도시락. 생각만 해도 강력한 겨자의 맛이 입안에 퍼지는 것 같다. 생각도 하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그건.”

그 뒤로 도서실에서 있었던 유키무라와의 대화, 하교 길에 보았던 벚꽃나무들의 멋진 풍경 등 오늘 하루 있었던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음. 그......뭐더라.......”

아직 나는 사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 한 마디는 하고 싶다.

‘누가 저 선생 좀 어떻게 해봐!!!!!’

학창시절이랄까........일단 예전 세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로,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모두 평범했다. 친구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듣다보면 괴짜 선생도 있고 열혈 선생도 있는 것에 반해, 난 평범한 선생님밖에 보지 못 했다. 어떤 면에선 운이 나쁜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쪽이 나에겐 더 편했다.

어쨌든 그런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내가 이쪽 세계에서 처음 본 선생은.............

“아 그래. 전학생이 오늘부터 온다고 했던가.”

‘너무 대충이잖아!!!!!’

모든 것을 대충 처리하는 남자였다.

“이름이 뭐였더라......기억이 잘 안 나네.”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저 선생을 보면서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야만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답답해 보인다.

“아 모르겠다. 이봐. 이제 들어와.”

결국 이름을 기억 못했는지, 적당한 호칭을 사용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앞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오오....”

“이햐.......”

교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보였고, 곳곳에서 남학생들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여학생이었다.

‘호오....금발이라.....’

금발의 여성이라면 사쿠라 씨를 빼면 이쪽 세계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뭐 머리색이 어떠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아직 코토리 이외엔 반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은 내 입장에선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

“뭐 대충 알아서 자기소개를 해라.”

‘당신, 담임이잖아!!!!’

자기도 모르게 태클을 걸어버리게 된다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구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에헴.”

교실 앞쪽에서 담임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모았다. 교실이 적당히 조용해지자 그녀는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후 뒤로 돌아서 우리들을 보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제 이름은 에리카. 에리카 무라사키라고 합니다.”

‘에리카 무라사키........외국인인가?’

성이 뒤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외국인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되는 그녀의 자기소개에 그것이 언급되었다.

“이름을 듣고 아시겠지만, 전 외국인이고 이번에 이쪽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기소개는 끝났다.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있던 담임은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런 말을 한 마디하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앉고 싶은 자리에 마음대로 앉아. 누가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나저나, 이 타이밍에 전학생이라니....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기분이군..’

담임의 말에 반 아이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 했고, 난 별로 관심이 없어서 뭔가 꺼림칙스러워서 잠시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까부터 보고 있던 무라사키 쪽으로 고정되었는데, 교실 주변을 좀 둘러보던 무라사키는 이쪽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응?”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반 아이들의 관심도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

‘혹시............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오는 건 아니겠지?’

나에게 있어선 창가는 명당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자리만큼은 내줄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조금 긴장했다.

“야.”

“뭐야.”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는 그녀에게 나도 반말로 대답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꽂혔지만, 그녀는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앞에 도착한 후 조금 화가 나 있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

(철썩!)

오자마자 뭐라고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기에, 내 쪽에서 먼저 말을 하기로 하고 입을 열었는데, 말을 하던 도중에 그녀가 한 행동 때문에 내 말이 끊겼다.

“꺄아!! 세이토!! 괜찮아!?”

일순간 반이 소란스러워졌다. 내 뒤에서 코토리가 깜작 놀라면서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 알고 있는 건 지금 내 뺨이 얼얼하다는 것과 고개가 조금 움직였던 것 정도?

‘.......뭐지?’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나는 무라사키를 보기 위해서 고개를 움직였다.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여전히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도 지금 상황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철썩!!)

말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방금 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어떤 행위가 반복되면 사람은 인식이란 것을 하게 된다. 특히 나의 경우는 어떤 일이 반복되어야만 인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세계에선 둔감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건 둘째 치고,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나......맞은 거야?!’

그렇다. 난 뺨을 맞은 것이다. 에리카 무라사키란 여학생에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뺨을 두 번이나 맞았다는 건 사실이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 거지?!!?’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녀가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이 상황이 되기까지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그녀를 보고만 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건방지게 어딜 쳐다봐.”

“...................응?”

그녀가 한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서....설마.....’

“네가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내가 계속 널 보고 있어서 화가 났다는 건 아니겠지?”

“어라. 잘 알고 있네.”

“................”

일순간 교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무슨 생각이 이렇담?! 자기가 무슨 공주라도 되나보지?!’

객관적으로 보면, 내 잘못은 없다. 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는 게 잘못일 리가 없다. 타인이 자신을 보고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고 때리는 게 잘하는 짓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보기만 해도 죄냐!!”

“당연하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고! 이 변태!!”

‘변태’란 단어에 발끈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변태라고 부르지 마 이 공주병아!!”

“고...공주병이라니!! 무례하긴!!”

“무례고 나발이고 다짜고짜 뺨을 때린 녀석이 뭐가 잘났다고 소리치는 거야!!”

“그러는 넌 뭐가 잘났는데!! 이 변태야!!”

“변태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아아아아아!!!!!!!”

결국 우리들의 싸움은, 첫 수업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무라사키는 창가가 좋다면서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았는데, 그녀의 뒷모습조차 보기 싫은 내 입장에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 매 쉬는 시간마다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서 달려드는 남학생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 드디어 1차 해방이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몸 안에서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 뚫린 기분이다. 나는 공주병과 얽히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학생식당으로 갔다. 어제 사쿠라 씨에게 오늘 점심값은 받아왔기 때문에 돈 걱정은 없다.

“역시 혼자서 움직이는 게 편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코토리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권유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보다 혼자서 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어디보자....식권을 사려면..........아, 저기 기계가 있군.”

식권을 파는 곳이 안 보여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에, 식권 판매기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즐거움 마음에 곧바로 식권 판매기 쪽으로 걸어갔는데............

“뭐야 이건. 왜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내가 먼저 교실에서 나왔는데 어째서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는 거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바로 첫 만남이 엉망이었던 공주병, 에리카 무라사키였다. 그녀는 식권 판매기 앞에 서 있으면서 불만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식권 판매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혹은 그녀가 식권 판매기를 이용할 줄 모른다거나.

‘별로 얽히고 싶진 않지만 저 녀석이 이대로 계속 있으면 내가 식권을 못 사니까 어쩔 수 없나....’

구경만 하고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안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나선, 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

판매기에게 화를 잔뜩 내고 있던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나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판매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따윈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나도 너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싶진 않지만, 앞으로의 내 행동에 방해가 되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혹시 식권 판매기를 이용할 줄 모르는 거 아니냐?”

나의 말에 그녀는 순간 흠칫했다. 정곡을 찌른 것 같다.

“호오. 역시 그런 거였군.”

“그......그럴 리가 없잖아?! 나...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순간 당황했는지,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 게 실제로 있는 일이구나.’

예전 세계에서는 당황하면 오히려 정색을 하고 부정을 하던데, 이쪽 세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치고, 뭐가 문제인데.”

“.....................”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하아........”

“뭐....뭐야! 그 한숨은!”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내 알 바가 아니지만, 나도 식권 판매기를 이용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너 때문에 밥을 먹는 것이 늦어지는 건 사양한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인지 말해.”

“그.........그러니까.......”

“그러니까?”

“사......사용법을 몰라.”

그녀는 양 볼이 살짝 붉어지면서 부끄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목적을 위해서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다.

“돈은 넣었어?”

“넣었어.”

“얼마나?”

“......1만 엔?”

“아니, 나를 보면서 물어봐도.”

나는 식권 판매기를 보았다. 판매기는 현재 자신이 1만 엔을 받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뭐야! 그렇다고 웃을 건 없잖아!”

“아니 뭐 그렇다고 치고, 무슨 단체 예약도 아닌데 1만 엔이나 넣을 필요가 있나?”

“....지갑에 그것밖에 없었는걸.”

“아 그러냐.”

나는 버튼을 눌러 1만 엔을 다시 꺼내 그녀에게 돌려준 뒤, 주머니에 있던 천 엔짜리 지폐 한 장을 판매기에 넣은 다음에 그녀에게 물어봤다.

“뭘 먹을 거야.”

“........응?”

내 말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갑에 만 엔밖에 없다면서. 아쉽게도 이 기계는 그렇게 큰돈은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같네. 그냥 내가 사줄 테니까 하나 골라.”

“.....어째서?”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꾸 머뭇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조금 답답했다. 그래서 난 이유를 말해주기로 했다.

“첫째, 이미 난 돈을 넣었다. 둘째, 내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해도 돈이 남기 때문에 겸사겸사. 셋째, 너 때문에 뒤에서 기다리던 학생들이 아직 식권을 못 샀잖아. 네가 이대로 있으면 그들이 밥을 못 먹는다고.”

“.................”

“그래서?”

“저...정식A.”

겨우 결정을 한 그녀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에 난 판매기에 있는 버튼 중에서 정식A를 찾았다. 정식A 버튼엔 400엔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잘 살펴보니 판매기에 있는 음식들의 가격은 대부분 그 정도였다.

“그럼 나도 이걸로 할까.”

정식A 버튼을 두 번 눌러 식권 2개를 받고 잔돈 200엔을 챙긴 다음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무라사키도 나를 따라 나왔고, 그제야 다른 학생들이 식권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하아.......귀찮아 죽겠네.”

이런 일에 연관되는 건 예전 세계에서는 좀처럼 없었던 거라서, 평소보다 몇 배로 피곤한 것 같다.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자. 식권.”

나는 식권을 무라사키에게 준 다음에 재빨리 음식을 받으러 갔다. 그 때 뒤에서 무라사키가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지만, 배가 고프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던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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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7화!!

랄까 17화나 되었는데 진도가... -_-;;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

<16화>

(드르륵)

다행이 이번엔 열리는 문을 제대로 선택해 열었다. 여기서도 그런 해프닝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다.

“음.....평범한 모습이군.”

문을 열고 보이는 것은 많은 책장과 테이블이었다. 먼저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너머로 책장들이 보였다.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책의 대여와 반납을 담당하고 있는 카운터가 있었다.

“방과 후라 그런지 학생들이 적군....아니, 오히려 많아야 하는 시간대가 아닌가?”

도서실의 이용 목적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학생 시절에는 필요한 자료는 도서관에서 모두 찾았기에 텅텅 비어있는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대학교와 중학교를 비교한다는 것부터 잘못이었지만.

“그럼 얌전히 읽을거리나 찾으러 가볼.....응?”

책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중, 창가 쪽 테이블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 녀석은 분명히 점심시간의........”

내 눈에 들어온 그 사람은 바로 점심시간에 나에게 겨자 100% 유부초밥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준 녀석이었다. 작지만 남들보다 몇 배로 위험한 여학생.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을 모르는군. 이참에 통성명이나 해둘까.”

겨자 100% 유부초밥 이외엔 문제되는 것이 없어서,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점심을 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인사를 안 했기에 겸사겸사 감사의 말을 전하기로 했다.

“...........”

“..............”

그녀는 손에는 연필을 들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펼쳐둔 공책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 아니면 뭔가 구상하고 있는 걸까?’

저 멀리 있는 물건이 뭔지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심정이라고 할까?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호기심은 더욱 증가했고, 내 걸음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응?”

내가 그녀로부터 1m 이내의 거리에 도달하자, 그녀는 그제야 나의 접근을 눈치 채고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그쪽은 분명히......”

“여어.”

일단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와 대화할 의사를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잠시 시간을 때우려고 왔는데, 네가 보여서 말이지.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나 하려고.”

그런데 그녀는 나의 말을 듣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딱히 개그를 펼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빴다.

“왜 웃는 거야?”

“겨자덩어리를 먹인 사람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일부러 먹인 거냐?”

“글쎄~?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히죽 웃는 그녀의 얼굴에선 나를 놀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여러 가지 해프닝과 고통을 느꼈던 나다. 이 정도로 기죽진 않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도시락은 고마웠어.”

“살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겨자 100% 유부초밥을 먹고 호의를 느끼진 않으니까 걱정 마.”

“그럼 됐고.”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공책 쪽으로 숙이곤 하던 일을 계속 했다.

“............”

“............”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공책에 뭔가를 적어 보기도 하더니, 곧 그것을 지우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다.

“............”

“............”

의외로 테이블이 넓어서 공책의 내용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쓰고 지우는 것만 보인다.

“...............”

“...............”

심심하다.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게 전부라서 지루함이 몰려왔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도서실에 온 목적이긴 했지만, 아직 수정된 내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

“................”

이쪽에서 말을 걸어야 할지, 저쪽에서 말을 걸어주는 걸 기다릴지 생각을 해봤지만, 어느 쪽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순간엔 우물쭈물한다는 것이 예전의 내 단점이었고, 그 단점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계속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계속 있어봤자 지루하고 피곤한 건 나 뿐.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이름........”

“.......응?”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래?”

내가 말을 하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았다. 그래서 난 다시 한 번 말했다.

“너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왕 이렇게 알게 된 거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어.”

“.....그래서, 지금 나에게 작업을 거는 거란 말이야?”

“아니,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작업을 걸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안 되는 걸?”

나를 놀리려는 의도가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강력한 한마디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뭐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하고. 어때? 간단히 통성명을 할까하는데.”

“뭐.....내키긴 않지만 특별히 알려주도록 할게.”

‘...이 녀석, 반드시 복수한다!!’

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나였다.

“내 이름은 유키무라 안즈. 알고 있다시피 너랑 같은 3-B 소속.”

“난 사쿠라이 세이토. 아쉽게도 너와 같은 3-B군.”

“.......사쿠라이?”

“응?”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유키무라는 ‘사쿠라이’에 순간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갑자기 반응을 하자 이유를 모르는 나는

“왜 그래? 사쿠라이가 뭐 어때서?”

“아니.......”

그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이름인데...’라고 말하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처럼.

“왜 그래?”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 같은데.........기억이 나지 않아.”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잊은 거 아니야? 난 그런 편인데.”

“미안하지만 난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 수 있거든.”

“아 그러셔.”

순간 그녀가 약간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다곤 생각되지 않아서 그냥 흘러 넘겼다.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봐선, 아무것도 아닌가보지 뭐.”

유키무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공책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젠 책을 가지러 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나는 그냥 유키무라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비밀.”

“공부는 아닌 것 같은데......”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집에 돌아가지 그래?”

별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왠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여성과의 대화를 꺼리는 내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이상하게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부터 나에게 작업을 거시겠다고?”

“어째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야....”

“이 상황에선 그런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상황인데 대화를 하고 있으면 차분해지니 마니하고 말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공책을 바라보며 이쪽은 봐주지 않는 그녀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 허공을 보고 말하면 느낌이 묘하니깐.

“뭐....그건 그런가?”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그녀가 뭐라고 말한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이 무엇일지 처음엔 궁금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에 그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거......재미있어?”

“.......그다지?”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데, 뭘 하고 있는지 알려주면 좀 안 되려나?”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공책을 덮었다. 그리곤 나를 보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방해돼.”

“......미안. 방해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집중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돌아갈래.”

라면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실을 나갔다.

“음....역시 민폐인가?”

그 순간 나는 코토리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해냈다.

[사쿠라이 군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딱히 누군가가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준 적도 없다. 그렇기에 코토리가 나에게 해준 말은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안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었다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흥미를 끄는 책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도 이젠 귀찮아졌다.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나는 의자를 넣고 터벅터벅 도서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교실 문에서의 해프닝과 코토리와 같은 반이 된 것, 그리고 유키무라 안즈와의 만남이 오늘 있었던 경험들이다. 코토리와 같은 반이 된 것 말고는 그다지 좋은 경험이라곤 생각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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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한글프로그램 7~8쪽에 한 화를 적으려고 노력하는데

머리가 안 굴러가면 좀 힘들군요. 저만큼 적어내기 (얼마 안 되는데도 말이죠)

-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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