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쿠라 씨가 돌아오자마자 내 방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필요한 테이블을 시작해서 침대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사쿠라 씨가 침대만큼은 치울 수 없다고 하셨기에 절충안으로 테이블 만이라도 치우기로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대만족이다.
“그래!! 바로 이 모습이야!!!”
넓어진 방의 모습을 보고 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 때문에 꽉 막힌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시원스럽게 뻥 뚫려있는 것 같다.
“이얍.”
그 모습에 만족한 난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스프링의 반동을 느끼며 누운 다음, 천장을 보면서 차분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잊고 싶지 않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유는 아니고, 그냥 시간 때우기다.
“어디보자....오늘 있었던 일들이....”
첫 번째. 교실 앞문에서의 해프닝. 앞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리지 않는 문을 가지고 원맨쇼.
“하필이면 그 녀석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별로 얽히고 싶지 않는 사람과 연관되는 일이 있으면, 꽤나 기분이 나쁘다. 교실 문에서의 해프닝이 바로 그것이다. 하필이면 아사쿠라 유메라는 민폐녀 앞에서 그런 일이....
“아니야.....분명히 나에게도 찬스가 올 거야....그 녀석 눈앞에서 신나게 웃어줄 그 날이...”
라고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코토리와의 재회. 시라카와 코토리라는 미소녀와 같은 반이라는 것. 다행이 이쪽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덕분에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이.....”
세 번째. 유키무라 안즈의 도시락. 생각만 해도 강력한 겨자의 맛이 입안에 퍼지는 것 같다. 생각도 하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그건.”
그 뒤로 도서실에서 있었던 유키무라와의 대화, 하교 길에 보았던 벚꽃나무들의 멋진 풍경 등 오늘 하루 있었던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음. 그......뭐더라.......”
아직 나는 사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 한 마디는 하고 싶다.
‘누가 저 선생 좀 어떻게 해봐!!!!!’
학창시절이랄까........일단 예전 세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로,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모두 평범했다. 친구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듣다보면 괴짜 선생도 있고 열혈 선생도 있는 것에 반해, 난 평범한 선생님밖에 보지 못 했다. 어떤 면에선 운이 나쁜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쪽이 나에겐 더 편했다.
어쨌든 그런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내가 이쪽 세계에서 처음 본 선생은.............
“아 그래. 전학생이 오늘부터 온다고 했던가.”
‘너무 대충이잖아!!!!!’
모든 것을 대충 처리하는 남자였다.
“이름이 뭐였더라......기억이 잘 안 나네.”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저 선생을 보면서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야만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답답해 보인다.
“아 모르겠다. 이봐. 이제 들어와.”
결국 이름을 기억 못했는지, 적당한 호칭을 사용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앞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오오....”
“이햐.......”
교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보였고, 곳곳에서 남학생들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여학생이었다.
‘호오....금발이라.....’
금발의 여성이라면 사쿠라 씨를 빼면 이쪽 세계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뭐 머리색이 어떠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아직 코토리 이외엔 반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은 내 입장에선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
“뭐 대충 알아서 자기소개를 해라.”
‘당신, 담임이잖아!!!!’
자기도 모르게 태클을 걸어버리게 된다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구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에헴.”
교실 앞쪽에서 담임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모았다. 교실이 적당히 조용해지자 그녀는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후 뒤로 돌아서 우리들을 보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제 이름은 에리카. 에리카 무라사키라고 합니다.”
‘에리카 무라사키........외국인인가?’
성이 뒤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외국인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되는 그녀의 자기소개에 그것이 언급되었다.
“이름을 듣고 아시겠지만, 전 외국인이고 이번에 이쪽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기소개는 끝났다.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있던 담임은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런 말을 한 마디하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앉고 싶은 자리에 마음대로 앉아. 누가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나저나, 이 타이밍에 전학생이라니....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기분이군..’
담임의 말에 반 아이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 했고, 난 별로 관심이 없어서 뭔가 꺼림칙스러워서 잠시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까부터 보고 있던 무라사키 쪽으로 고정되었는데, 교실 주변을 좀 둘러보던 무라사키는 이쪽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응?”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반 아이들의 관심도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
‘혹시............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오는 건 아니겠지?’
나에게 있어선 창가는 명당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자리만큼은 내줄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조금 긴장했다.
“야.”
“뭐야.”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는 그녀에게 나도 반말로 대답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꽂혔지만, 그녀는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앞에 도착한 후 조금 화가 나 있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
(철썩!)
오자마자 뭐라고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기에, 내 쪽에서 먼저 말을 하기로 하고 입을 열었는데, 말을 하던 도중에 그녀가 한 행동 때문에 내 말이 끊겼다.
“꺄아!! 세이토!! 괜찮아!?”
일순간 반이 소란스러워졌다. 내 뒤에서 코토리가 깜작 놀라면서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 알고 있는 건 지금 내 뺨이 얼얼하다는 것과 고개가 조금 움직였던 것 정도?
‘.......뭐지?’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나는 무라사키를 보기 위해서 고개를 움직였다.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여전히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도 지금 상황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철썩!!)
말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방금 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어떤 행위가 반복되면 사람은 인식이란 것을 하게 된다. 특히 나의 경우는 어떤 일이 반복되어야만 인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세계에선 둔감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건 둘째 치고,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나......맞은 거야?!’
그렇다. 난 뺨을 맞은 것이다. 에리카 무라사키란 여학생에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뺨을 두 번이나 맞았다는 건 사실이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 거지?!!?’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녀가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이 상황이 되기까지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그녀를 보고만 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건방지게 어딜 쳐다봐.”
“...................응?”
그녀가 한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서....설마.....’
“네가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내가 계속 널 보고 있어서 화가 났다는 건 아니겠지?”
“어라. 잘 알고 있네.”
“................”
일순간 교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무슨 생각이 이렇담?! 자기가 무슨 공주라도 되나보지?!’
객관적으로 보면, 내 잘못은 없다. 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는 게 잘못일 리가 없다. 타인이 자신을 보고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고 때리는 게 잘하는 짓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보기만 해도 죄냐!!”
“당연하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고! 이 변태!!”
‘변태’란 단어에 발끈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변태라고 부르지 마 이 공주병아!!”
“고...공주병이라니!! 무례하긴!!”
“무례고 나발이고 다짜고짜 뺨을 때린 녀석이 뭐가 잘났다고 소리치는 거야!!”
“그러는 넌 뭐가 잘났는데!! 이 변태야!!”
“변태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아아아아아!!!!!!!”
결국 우리들의 싸움은, 첫 수업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무라사키는 창가가 좋다면서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았는데, 그녀의 뒷모습조차 보기 싫은 내 입장에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 매 쉬는 시간마다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서 달려드는 남학생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 드디어 1차 해방이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몸 안에서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 뚫린 기분이다. 나는 공주병과 얽히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학생식당으로 갔다. 어제 사쿠라 씨에게 오늘 점심값은 받아왔기 때문에 돈 걱정은 없다.
“역시 혼자서 움직이는 게 편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코토리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권유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보다 혼자서 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어디보자....식권을 사려면..........아, 저기 기계가 있군.”
식권을 파는 곳이 안 보여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에, 식권 판매기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즐거움 마음에 곧바로 식권 판매기 쪽으로 걸어갔는데............
“뭐야 이건. 왜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내가 먼저 교실에서 나왔는데 어째서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는 거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바로 첫 만남이 엉망이었던 공주병, 에리카 무라사키였다. 그녀는 식권 판매기 앞에 서 있으면서 불만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식권 판매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혹은 그녀가 식권 판매기를 이용할 줄 모른다거나.
‘별로 얽히고 싶진 않지만 저 녀석이 이대로 계속 있으면 내가 식권을 못 사니까 어쩔 수 없나....’
구경만 하고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안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나선, 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
판매기에게 화를 잔뜩 내고 있던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나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판매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따윈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나도 너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싶진 않지만, 앞으로의 내 행동에 방해가 되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혹시 식권 판매기를 이용할 줄 모르는 거 아니냐?”
나의 말에 그녀는 순간 흠칫했다. 정곡을 찌른 것 같다.
“호오. 역시 그런 거였군.”
“그......그럴 리가 없잖아?! 나...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순간 당황했는지,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 게 실제로 있는 일이구나.’
예전 세계에서는 당황하면 오히려 정색을 하고 부정을 하던데, 이쪽 세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치고, 뭐가 문제인데.”
“.....................”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하아........”
“뭐....뭐야! 그 한숨은!”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내 알 바가 아니지만, 나도 식권 판매기를 이용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너 때문에 밥을 먹는 것이 늦어지는 건 사양한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인지 말해.”
“그.........그러니까.......”
“그러니까?”
“사......사용법을 몰라.”
그녀는 양 볼이 살짝 붉어지면서 부끄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목적을 위해서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다.
“돈은 넣었어?”
“넣었어.”
“얼마나?”
“......1만 엔?”
“아니, 나를 보면서 물어봐도.”
나는 식권 판매기를 보았다. 판매기는 현재 자신이 1만 엔을 받았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뭐야! 그렇다고 웃을 건 없잖아!”
“아니 뭐 그렇다고 치고, 무슨 단체 예약도 아닌데 1만 엔이나 넣을 필요가 있나?”
“....지갑에 그것밖에 없었는걸.”
“아 그러냐.”
나는 버튼을 눌러 1만 엔을 다시 꺼내 그녀에게 돌려준 뒤, 주머니에 있던 천 엔짜리 지폐 한 장을 판매기에 넣은 다음에 그녀에게 물어봤다.
“뭘 먹을 거야.”
“........응?”
내 말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갑에 만 엔밖에 없다면서. 아쉽게도 이 기계는 그렇게 큰돈은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같네. 그냥 내가 사줄 테니까 하나 골라.”
“.....어째서?”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꾸 머뭇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조금 답답했다. 그래서 난 이유를 말해주기로 했다.
“첫째, 이미 난 돈을 넣었다. 둘째, 내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해도 돈이 남기 때문에 겸사겸사. 셋째, 너 때문에 뒤에서 기다리던 학생들이 아직 식권을 못 샀잖아. 네가 이대로 있으면 그들이 밥을 못 먹는다고.”
“.................”
“그래서?”
“저...정식A.”
겨우 결정을 한 그녀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에 난 판매기에 있는 버튼 중에서 정식A를 찾았다. 정식A 버튼엔 400엔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잘 살펴보니 판매기에 있는 음식들의 가격은 대부분 그 정도였다.
“그럼 나도 이걸로 할까.”
정식A 버튼을 두 번 눌러 식권 2개를 받고 잔돈 200엔을 챙긴 다음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무라사키도 나를 따라 나왔고, 그제야 다른 학생들이 식권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하아.......귀찮아 죽겠네.”
이런 일에 연관되는 건 예전 세계에서는 좀처럼 없었던 거라서, 평소보다 몇 배로 피곤한 것 같다.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자. 식권.”
나는 식권을 무라사키에게 준 다음에 재빨리 음식을 받으러 갔다. 그 때 뒤에서 무라사키가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지만, 배가 고프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던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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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7화!!
랄까 17화나 되었는데 진도가... -_-;;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