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음 날.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코토리에게 내 휴대폰의 존재를 알리고, 번호와 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래? 앞으로 연락할 일이 있으면 쉽게 연락할 수 있겠네?”

코토리는 흔쾌히 나에게 번호와 주소를 알려줬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번호를 저장했고,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끝났을 때 1교시가 시작되었다.

 

 

“후아암.........”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창문 밖 풍경을 감상했다. 보이는 건 건물들과 벚꽃나무, 하늘정도다.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되겠군. 이젠 슬슬 지겨워지는데....'

어제도 수업은 안 듣고 창밖을 보기만 했다. 이곳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은 일단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뭐 사실 그것도 다 변명이겠지만.’

저런 생각들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내 머리와 몸은 따로 놀고 있으니까.

“그럼..........사쿠라이. 다음을 읽어봐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지목되었다. 물론 그 수업도 전혀 안 듣고 있었기 때문에 지목된 이유는 모른다.

“어............음..........”

“음? 혹시 자고 있었다던가?”

“자고 있던 건 아닙니다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선생님은 내가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선생님은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보면 말하셨다.

“알고 있겠죠?”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그 어떤 변명도, 반론도 하지 않고 바로 교실에서 나왔다. 이 선생님의 벌은 매우 간단했다. 잠을 자다가 걸리면 운동장 5바퀴, 딴 짓을 하다가 걸리면 운동장 3바퀴. 내 경우는 후자이기 때문에 난 운동장 3바퀴를 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동장 달리기가 벌이라니.....”

이런 말을 하면 좀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벌은 생전 처음이다. 예전 세계에선 맞는 것으로 끝내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이 체벌에 대해서 들었을 땐 조금 황당했지만, 이젠 그럭저럭 즐기고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아......하아......"

물론 재미가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재미는......하아......있는데....하아....지친다.......”

이건 여담이지만, 난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지쳤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의자에 앉은 채로 책상에 쓰러졌다. 체력이 좋지 않은 나에겐 운동장 3바퀴도 충분히 큰 벌이었다.

“그러게 왜 수업을 안 듣는 거야......”

내 뒤에 있던 코토리가 안쓰럽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난 엎드려있는 상태로 대답을 했다.

“지루하니까 그렇잖아. 재미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수업.”

“학생의 본업은 공부니까 싫더라도 해야지.”

“학생이라........”

왠지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대학생이었던 내가 갑자기 중학생이 된 자신의 현 상황이 조금 우스웠다. 양쪽 다 ‘학생’이긴 하지만, 너무 낮아진 자신의 처지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응? 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코토리가 갑자기 웃는 나를 보고 궁금해 했지만,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녀도 딱히 큰 관심은 없는지 더 깊게 물어보진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럼 점심을 같이 먹지 않을래?”

“음? 벌써 점심시간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봤다. 방금 전 수업이 끝나고 막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난 여전히 엎드린 상태로 말했다.

“아, 벌써 점심시간이군. 오늘 하루도 빨리 흘러가네.”

“세이토가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 그건 아니지. 창밖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을 뿐이니까. 시간이 빨리 흘러간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어쨌든, 어때? 같이 점심을 먹을래?”

“난 도시락 안 가져왔는데.”

전에 사쿠라 씨에게 도시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쿠라 씨가 ‘능력이 되면 스스로 만들어서 가져가세요.’라고 말하셨기 때문에 귀찮다는 이유로 도시락을 만들지 않았다. ‘학생식당이라는 편리한 장소가 있는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느냐.’가 바로 내 생각이다.

내 말을 들은 코토리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건 괜찮아. 오늘은 나도 학생식당이거든.”

“그래? 그럼 상관없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코토리와 함께 교실을 나와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학생식당으로 가는 도중,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들의 이유가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코토리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번에 공원에서도 이런 느낌이었던가...’

난 이곳에 입학하기 전에 코토리와 만났던 벚꽃 공원에서의 일을 기억했다. 그때도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 근처를 지나가는 남자들이 힐끔힐끔 이쪽을 보는 것을 느꼈었다.

그때는 코토리와 이야기를 하느라 크게 신경을 안 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 꽤나 신경 쓰였다. 할 수 없이 이번에도 그녀와 뭔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들이 있지 않았나?”

내가 본 코토리는 점심시간에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었다. 오늘도 당연히 그 친구들과 함께 먹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코토리 쪽에서 먼저 점심 식사를 권유해서 조금 놀랐었다.

“아 그거? 뭐...........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끝을 흐리는 코토리에게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별로 중요하다곤 생각되지 않아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끊겨버렸고, 어색한 침묵이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고 나서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난 말하는 타입이 아니라 듣는 타입인데....’

대화라는 것은 누군가 화제를 꺼내고, 상대방이 그 화제에 대한 리액션을 취하는 것으로 성립한다.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화제를 꺼내지 않으면 대화를 시도하지도 못한다.

‘딱히 언제나 화제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침묵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주변 시선이 신경 쓰였다. 왠지 모르게 살기도 느껴졌지만, 그냥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코토리는 역시 도시락 파?”

결국 내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고, 화제는 그저 그런 내용이었다.

“‘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일단 도시락을 주로 싸오는 편이야.”

“도시락을 매일같이 싸오는 거, 귀찮지 않아?”

난 어떻게든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코토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어차피 자신이 먹는 거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고 있어.”

“흠....역시 그런가.....”

코토리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직접 도시락을 만들면 원하는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도 있고, 영양 밸런스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여자 아이의 경우 다이어트 문제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

“세이토는 요리를 할 수 있었던가?”

코토리는 역으로 나에게 물어왔고, 난 자연스럽게 대답을 했다.

“조금이라면?”

“그럼 다음에 도시락을 만들어 와. 같이 먹자.”

“뭐...........내키면?”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자니 도시락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은 귀찮지만, 마지막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내 시원찮은 대답을 들은 코토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응. 그때가 되면 꼭 말해줘. 친구들도 불러서 같이 먹게.”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순간 강한 살기가 여러 곳에서 느껴졌다. 난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가......가능하면 적은 인원수로 먹는 게 편한데.”

“그래?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는 2명인데, 괜찮지?”

나와 코토리를 합치면 4명. 그 정도면 나도 크게 부담되진 않는다. 코토리의 친구라고 하면 여학생일게 분명하니까. 여담이지만, 난 여자가 서툴다.

“뭐.....그 정도라면 괜찮겠지.”

“응! 세이토의 도시락, 기대할게.”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코토리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 남학생들의 질투의 시선을 느꼈다.

‘아니, 그런 눈빛을 보내봤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기쁨과 남학생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부담 때문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던 코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

그들의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나는 걸음속도를 높였고, 코토리도 나를 따라오기 위해 조금 빨리 걷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학생식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겠지만, 그곳에 가면 식사에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이라면 내 집중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쾅!!!!]


그리고 나의 그런 믿음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또 저 녀석이야....왜 자꾸 얽히는 거야.....”

보는 사람만 없었다면 난 아마 좌절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리카 무라사키. 전에 식권 판매기에 1만 엔을 넣는 어이없는 행동을 한 그녀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무라사키 씨지? 괜찮을까? 판매기를 발로 찼는데...."

‘그냥 내버려 두고 싶어.....’

그렇다. 그녀는 내가 학생식당에 들어오는 타이밍에 식권 판매기를 발로 찬 것이다. 가서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식권 판매기가 고장 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걸 발로 차겠는가?

“신, 네 녀석.....”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하려는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안 준다.’라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식당에 온 이상 나는 식권 판매기를 이용해야만 하고, 그 식권 판매기 앞에 에리카 무라사키가 있는 것이다. 난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에게 불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무라사키의 외침이 들린다. 화가 나있는지 그녀는 숨이 조금 거칠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더더욱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하아....”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무라사키를 보고 있는 코토리의 말에 난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일단은 같은 반이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말이지 얼마나 폐를 끼쳐야 속이 시원한 거야 저 녀석.”

나는 한숨을 쉬면서 무라사키 쪽으로 걸어갔고, 코토리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다. 무라사키는 우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깨닫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넌 또 왜 끼어드는 거야!!”

‘.....나도 싫다니깐.’

무라사키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방금 전 그녀가 식권 판매기를 발로 찬 것으로 보아, 분명히 이번에도 저것과 관계가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번에도 1만 엔을 넣은 거냐?”

“아니야!!!!”

즉답이다. 그녀를 조금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건 사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만 내가 편하다. 나도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선 해결이 안 될 것 같기에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해봐. 나도 이 식권 판매기를 써야한다고.”

씩씩거리던 무라사키는 나를 한 번 노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돈은 분명히 넣었는데, 식권이 안 나와!”

여전히 화가 잔뜩 나있는 상태로.

“버튼을 누른 건 확실해?”

“당연하지.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음.......건방진 공주님?’

입 밖에 냈다간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서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다. 난 천천히 식권 판매기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계산은 끝났는지 잔돈이 나와 있었고, 식권만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식권만 안 나온 것을 보곤 난 뭔가가 떠올랐다.

“분명히 간혹 가다가 식권 판매기가 반응이 느려져서 식권이 늦게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가는 투로 들었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식권이 늦게 나와서 고장 난 줄 알았다는 학생의 말.

‘....라는 건,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결과가 나온단 말?’

난 식권이 나오는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한 곳만 바라보자 화가 어느 정도 풀렸는지 무라사키도 아무 말 없이 식권 배출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툭]

"어. 나왔다."

“오오오오.....”

“나왔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곧 식권이 하나 나왔다. 그러자 주변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난 식권을 무라사키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식권을 받았다.

“하아. 이걸로 또 한 건 해결이군........”

끝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쉰 그 순간.

 

[툭]

 

“..........”

식권이 하나 더 나왔다. 난 그 식권을 바라보면서 무라사키에게 물었다.

“너, 혹시 식권 여러 개 샀냐?”

“그럴 리가. 하나밖에 안 샀어.”

“................”

 

[툭]

 

식권 한 장이 또 나왔다.

‘이......이건 위험할지도.’

그제서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난 위험을 깨닫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응?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무라사키가 이쪽으로 오더니 가볍게 식권 판매기를 발로 찼다.

“아!! 그걸 차면!!”

“응? 그게 뭐 어ㄸ.......에에에에에에!?!?!?!!!?”

 

[툭툭툭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방금 전 충격으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식권 판매기는 식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까 내가 학생식당에 들어 왔을 때 무라사키가 식권 판매기를 찬 것으로 인해, 식권 판매기가 고장 나서 식권을 마구 뽑아내는 것이다!!

“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결국 나와 무라사키는 식당 아주머니께 크게 혼났고, 뒷정리를 하느라 밥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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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토-

Posted by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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