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夢 ~ 꿈이란 세상 속에서.] -18화-
그날 저녁.
이번엔 저녁을 요시노 가에서 먹기로 했다. 물론 아사쿠라 가 사람들과 함께.
요리는 나와 오토메 누나가 함께 만들었다. 메뉴는 평범한 일식. 내가 요리를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지만, 잘하는 편은 아니라 오토메 누나의 서포터 역할을 맡았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들었는데, 오토메 누나의 동생인 아사쿠라 유메는 요리를 전혀 못 한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가 들어와서 기뻐한 나는 그것을 자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대충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고, 나와 오토메 누나가 음식들을 거실로 옮겨왔다. 우리는 다다미방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아니, 차분한 저녁 식사가 되길 바랬다.
“그러고 보니 세이토는 말이야.”
“응?”
식사가 시작 된지 몇 분 후, 오토메 누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따라 나는 자동적으로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녀를 봐야 했다.
“부활동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는 거야?”
코토리가 전에 교실에서 나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이었다. 그 때 코토리에게 대답을 했었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 끌리진 않는데.”
“그럼 학생회에 들어오지 않을래?”
“음?”
그녀의 권유가 학생회라는 점에서 조금 놀랐지만, 바로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봤다. 학생회에 들어가서 내가 이득을 보는 게 뭐가 있을지, 뭐가 나와 안 맞을지. 그리고 곧 결론을 냈다.
“...왠지 이것저것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싫어.”
“그런 말 하지 말고~ 같이 학생회 활동하면서 내가 이것저것 알려줄게. 하츠네 섬에 대해서라던가, 학생의 마음가짐이라던가.”
‘학생의 마음가짐’이란 부분이 조금 궁금했지만, 그것 때문에 학생회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난 정중히 거절하기로 했다.
“하츠네 섬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야 있으니까 오토메 누나가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응? 벌써 친구가 생긴 거야?”
방금 한 내 말에 오토메 누나뿐만 아니라 사쿠라 씨도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아사쿠라 유메만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고, 쥰이치 씨는 ‘호오-’라며 조금은 흥미가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 사쿠라 씨는 ‘학교에 처음 간 자식이 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니까 흥미가 생긴 부모’같은 느낌? 뭐 지금 상황에서 보면 사쿠라 씨와 나의 관계는 부모자식관계라고 봐도 될 정도지만.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식사를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렇다고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법, 할 수 없이 난 식사를 멈추고 그들에게 말해줬다.
“사쿠라 씨에겐 말한 적이 있을 거 에요. 시라카와 코토리라고 저랑 내기를 했던.”
“아아, 그 아이?”
사쿠라 씨는 저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셨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특히 오토메 누나는 큰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시라카와? 그 시라카와 씨?”
“‘그’라는 게 누굴 가리키는지 모르겠는데.”
“붉은색의 생머리에 미인이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난 그 시라카와 씨?”
“뭐......맞는 것 같은데.”
‘근데 지금 난 밥을 먹고 싶다고...’
난 지금 배가 고프다.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식사를 멈추면서까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흥미 가득한 표정의 오토메 누나를 보니, 아무래도 내가 밥을 다 먹게 되는 건 한참 후가 될 것 같다.
“세이토가 그 시라카와 씨와........”
“....뭔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라고?”
순간 오토메 누나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러나 오토메 누나에겐 내 말이 도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디까지 간 거야?”
“...그냥 아는 사이니까 착각은 거기까지 해줬으면 좋겠어.”
“어? 애인 관계가 아닌 거야?”
“방금 아니라고 말했잖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토메 누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더니 실망했는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모처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기나 했더니..”
“나는 이야기보따리가 아니야.”
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이 나고, 느긋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말이지.”
....라고 말하고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세이토는 지금 애인 없는 거야?”
“없어. 내가 이 세......가 아니라 하츠네 섬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애인이야.”
“그럼 하츠네 섬에 오기 전에는?”
“..........없어.”
좀 더 따지자면, 이전 세계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여성은 전혀 없다. 그 점이 왠지 모르게 슬펐지만,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갔다.
“성격을 조금만 바꾸면 충분히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뭐........나도 애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딱히 당장 필요하진 않고...”
이제 적당히 대화를 끝내고 밥을 다시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는 순간, 오토메 누나가 내 쪽으로 몸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세이토의 애인이 되어줄까?”
“.........................”
오토메 누나의 갑작스런 발언에 젓가락을 잡고 있던 오른손가락이 순간 움찔해서 젓가락이 떨어졌고, 왼손에 들고 있는 밥그릇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내 착각이 아니라면 아사쿠라 유메가 방금 그 말을 듣고 움찔거렸다.
난 천천히 흘린 밥과 그릇을 정리한 다음에 그녀를 보았다. 오토메 누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진심이야?”
“한 70%정도?”
여전히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방금 그 말이 진심이라곤 생각이 되지 않았다. 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는 조금 화가 났는지 불만을 표했다.
“뭐야, 지금 이 누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대답했다. 농담이라면 농담으로 끝날 이야기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면 조금 곤란하다.
‘물론 기쁘긴 한데, 이렇게 스트레이트는 좀....’
나는 진정하고 냉정하게 생각을 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아직 아는 것도 제대로 없는 저 오토메 누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론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왠지 오토메 누나의 애인이 되면 죄를 짓는 것 같으니 거절할게.”
“뭐야 그게~ 좀 더 그럴싸한 이유는 없는 거야?”
“아니,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지만 아무래도 대충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오토메 누나는 볼을 잔뜩 부풀리면서 화를 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찬스.
“자, 이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밥 좀 먹자. 이야기만 하다가 배고파 쓰러지겠어.”
그렇게 강제로 이야기를 종료시키고, 난 재빨리 밥을 먹었다. 그러자 오토메 누나도 포기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사쿠라 유메에게서 ‘언니에게 손을 댄다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라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아무래도 아사쿠라 유메와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첫 만남이 최악이라서 그런지, 지금보다 관계를 좋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저녁 식사 후, 아사쿠라 가 사람들은 간단히 과자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실에는 나와 사쿠라 씨만이 남았다.
“아 그래.”
사쿠라 씨는 갑자기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방으로 잠시 가시더니, 상자를 하나 들고 오셨다.
“뭔가요 이건?”
“네가 앞으로 쓸 핸드폰.”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필요했었죠...”
나는 사쿠라 씨에게서 상자를 받아서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충전기, 몇 종류의 핸드폰 줄, 설명서와 내 핸드폰이 담겨져 있었다.
“음. 폴더형이군요.”
열고 닫는 형식이라 이름 붙은 폴더형 핸드폰. 예전 세계에서 쓰던 핸드폰도 폴더형이었기 때문에, 내 맘에 쏙 들었다.
“색상은 괜찮아?”
“네. 전 색상을 따지는 편이 아니라 상관없어요.”
전체적으로 색상은 군청색이고, 적절히 붙어 있어야할 버튼은 붙어있고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하는 버튼들은 조금 거리가 있게 되어 있는 구성이었다. 예전 세계의 핸드폰은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빈번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이번엔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핸드폰을 살피는 나를 지켜보던 사쿠라 씨는 혹여나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은...
“딱 좋은데요. 예전에 쓰던 것보다 더 편할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혹시나 싫어하면 바꾸러 가야하니까 귀찮아지니까 말이지~”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사쿠라 씨는 안심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셨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사쿠라 씨의 미소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지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사쿠라 씨는 핸드폰 가지고 계시나요?”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좀 우습지만, 이 사람이라면 핸드폰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쿠라 씨의 볼이 살짝 부풀어지더니, 조금 화가 난 것 같은 말투로 말하셨다.
“날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뭐....이미지가 좀 그렇다고 할까....”
“나도 내 휴대폰이 있어! 얕보지 마!”
“아니, 얕본 건 아닌데...”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하는데 사쿠라 씨가 가볍게 손바닥으로 나의 이마를 치셨다.
“아얏.”
“이건 날 얕본 벌이야.”
“....네.”
이런 면에선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면 또 혼나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 지금 날 비웃는 거야?”
“아니, 아니. 비웃지 않았습니다.”
“수상한데......”
수상한 사람을 바라보는듯한 사쿠라 씨의 시선이 괴로웠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럼 번호랑 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저장해두게.”
“이미 저장되어 있어.”
“.....빠르시네요.”
“어차피 나중에 저장할거고, 핸드폰이 잘 되는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샀을 때 바로 저장했지.”
‘에헴!’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사쿠라 씨는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전 이제 슬슬 자러 가볼게요.”
“아, 참고로 오빠랑 오토메, 유메의 번호랑 메일 주소도 저장해뒀어.”
“.....남의 핸드폰에 그렇게 마음대로...”
“우리가 남이야?”
순간 사쿠라 씨의 싸늘한 표정이 보여 흠칫한 난 90도로 몸을 숙여 사죄했다.
“아닙니다.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잘했어.”
사쿠라 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방긋 웃으시더니, 손으로 가볍게 내 머리를 어루만지셨다. 나는 다시 사쿠라 씨께 인사를 한 다음에,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뒤 책상 의자에 앉아서 폰을 만지작거렸다.
“핸드폰이라.....”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핸드폰. 이전 세계에선 시계 or 간혹 오는 연락용으로 썼기 때문에 이곳에선 어떻게 쓰일지 앞날이 걱정되었다.
[띠링~]
“...응?”
갑자기 핸드폰에서 소리가 나기에 열어봤는데,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누가 보낸 거지? 사쿠라 씨인가? 아니면 광고 메일?”
궁금해진 나는 버튼을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봤다.
[제목 : 핸드폰 생겼다며~]
[안녕~ 아까 저녁 준비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시간 절약이 되었어. 그리고 핸드폰 생긴 거 축하해~ -아사쿠라 오토메-]
오토메 누나가 보낸 메일이었다. 내 핸드폰의 존재나 메일 주소는 사쿠라 씨를 통해서 알아냈음이 틀림없다. 사쿠라 씨가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어디보자...답장을 보내는 방법이....”
예전 세계에선 메일을 자주 썼던 것이 아니라서 핸드폰을 처음 조작하는 어르신들처럼 좀 힘겹게 조작을 해서 답장을 보냈다.
[제목 : 감사합니다.]
[축하해줘서 고마워. -세이토-]
“짧게 보내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써먹겠나.”
나는 휴대폰을 침대로 집어 던졌다가 오토메 누나의 답장 때문에 침대까지 가서 핸드폰을 다시 가져왔다. 그 후 오토메 누나와 몇 번 메일을 주고받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 코토리에게 번호와 메일 주소를 알아내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보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심심해서 사쿠라 씨에게 메일을 보내봤는데 이런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방에서 정좌를 하고 혼났다는 것과 아사쿠라 유메에게 예의상 메일을 보냈는데 ‘변태’라고 답장이 와서 메일로 격하게 싸웠다는 건 또 다른 에피소드다.
---------------------------------------------------------------
19화를 언제 적을진 모르겠지만....
뭐 언젠간 완결내겠죠. (머엉)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