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夢 ~ 꿈이란 세상 속에서.] -16화-
<16화>
(드르륵)
다행이 이번엔 열리는 문을 제대로 선택해 열었다. 여기서도 그런 해프닝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다.
“음.....평범한 모습이군.”
문을 열고 보이는 것은 많은 책장과 테이블이었다. 먼저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너머로 책장들이 보였다.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책의 대여와 반납을 담당하고 있는 카운터가 있었다.
“방과 후라 그런지 학생들이 적군....아니, 오히려 많아야 하는 시간대가 아닌가?”
도서실의 이용 목적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대학생 시절에는 필요한 자료는 도서관에서 모두 찾았기에 텅텅 비어있는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대학교와 중학교를 비교한다는 것부터 잘못이었지만.
“그럼 얌전히 읽을거리나 찾으러 가볼.....응?”
책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중, 창가 쪽 테이블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 녀석은 분명히 점심시간의........”
내 눈에 들어온 그 사람은 바로 점심시간에 나에게 겨자 100% 유부초밥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준 녀석이었다. 작지만 남들보다 몇 배로 위험한 여학생.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을 모르는군. 이참에 통성명이나 해둘까.”
겨자 100% 유부초밥 이외엔 문제되는 것이 없어서,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점심을 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인사를 안 했기에 겸사겸사 감사의 말을 전하기로 했다.
“...........”
“..............”
그녀는 손에는 연필을 들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펼쳐둔 공책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 아니면 뭔가 구상하고 있는 걸까?’
저 멀리 있는 물건이 뭔지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심정이라고 할까?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호기심은 더욱 증가했고, 내 걸음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응?”
내가 그녀로부터 1m 이내의 거리에 도달하자, 그녀는 그제야 나의 접근을 눈치 채고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그쪽은 분명히......”
“여어.”
일단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와 대화할 의사를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잠시 시간을 때우려고 왔는데, 네가 보여서 말이지.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나 하려고.”
그런데 그녀는 나의 말을 듣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딱히 개그를 펼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빴다.
“왜 웃는 거야?”
“겨자덩어리를 먹인 사람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일부러 먹인 거냐?”
“글쎄~?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히죽 웃는 그녀의 얼굴에선 나를 놀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여러 가지 해프닝과 고통을 느꼈던 나다. 이 정도로 기죽진 않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도시락은 고마웠어.”
“살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겨자 100% 유부초밥을 먹고 호의를 느끼진 않으니까 걱정 마.”
“그럼 됐고.”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공책 쪽으로 숙이곤 하던 일을 계속 했다.
“............”
“............”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공책에 뭔가를 적어 보기도 하더니, 곧 그것을 지우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다.
“............”
“............”
의외로 테이블이 넓어서 공책의 내용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쓰고 지우는 것만 보인다.
“...............”
“...............”
심심하다.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게 전부라서 지루함이 몰려왔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도서실에 온 목적이긴 했지만, 아직 수정된 내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
“................”
이쪽에서 말을 걸어야 할지, 저쪽에서 말을 걸어주는 걸 기다릴지 생각을 해봤지만, 어느 쪽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순간엔 우물쭈물한다는 것이 예전의 내 단점이었고, 그 단점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계속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계속 있어봤자 지루하고 피곤한 건 나 뿐.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이름........”
“.......응?”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래?”
내가 말을 하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았다. 그래서 난 다시 한 번 말했다.
“너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왕 이렇게 알게 된 거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어.”
“.....그래서, 지금 나에게 작업을 거는 거란 말이야?”
“아니,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작업을 걸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안 되는 걸?”
나를 놀리려는 의도가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강력한 한마디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뭐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하고. 어때? 간단히 통성명을 할까하는데.”
“뭐.....내키긴 않지만 특별히 알려주도록 할게.”
‘...이 녀석, 반드시 복수한다!!’
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나였다.
“내 이름은 유키무라 안즈. 알고 있다시피 너랑 같은 3-B 소속.”
“난 사쿠라이 세이토. 아쉽게도 너와 같은 3-B군.”
“.......사쿠라이?”
“응?”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유키무라는 ‘사쿠라이’에 순간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갑자기 반응을 하자 이유를 모르는 나는
“왜 그래? 사쿠라이가 뭐 어때서?”
“아니.......”
그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이름인데...’라고 말하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처럼.
“왜 그래?”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 같은데.........기억이 나지 않아.”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잊은 거 아니야? 난 그런 편인데.”
“미안하지만 난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 수 있거든.”
“아 그러셔.”
순간 그녀가 약간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다곤 생각되지 않아서 그냥 흘러 넘겼다.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봐선, 아무것도 아닌가보지 뭐.”
유키무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공책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젠 책을 가지러 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나는 그냥 유키무라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비밀.”
“공부는 아닌 것 같은데......”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집에 돌아가지 그래?”
별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왠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여성과의 대화를 꺼리는 내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이상하게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부터 나에게 작업을 거시겠다고?”
“어째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는 거야....”
“이 상황에선 그런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상황인데 대화를 하고 있으면 차분해지니 마니하고 말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공책을 바라보며 이쪽은 봐주지 않는 그녀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 허공을 보고 말하면 느낌이 묘하니깐.
“뭐....그건 그런가?”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그녀가 뭐라고 말한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이 무엇일지 처음엔 궁금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에 그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거......재미있어?”
“.......그다지?”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데, 뭘 하고 있는지 알려주면 좀 안 되려나?”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공책을 덮었다. 그리곤 나를 보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방해돼.”
“......미안. 방해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집중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돌아갈래.”
라면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실을 나갔다.
“음....역시 민폐인가?”
그 순간 나는 코토리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해냈다.
[사쿠라이 군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딱히 누군가가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준 적도 없다. 그렇기에 코토리가 나에게 해준 말은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안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었다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흥미를 끄는 책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도 이젠 귀찮아졌다.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나는 의자를 넣고 터벅터벅 도서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교실 문에서의 해프닝과 코토리와 같은 반이 된 것, 그리고 유키무라 안즈와의 만남이 오늘 있었던 경험들이다. 코토리와 같은 반이 된 것 말고는 그다지 좋은 경험이라곤 생각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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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한글프로그램 7~8쪽에 한 화를 적으려고 노력하는데
머리가 안 굴러가면 좀 힘들군요. 저만큼 적어내기 (얼마 안 되는데도 말이죠)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