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夢 ~ 꿈이란 세상 속에서.] -13화-
<13화>
그렇게 맞이한 다음 날. 결전의 날이다.
부스스 일어난 나는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도중에 계단에서 발을 삐끗해 구를 뻔 했지만, 순간적인 발 조작으로 아침부터 고통에 몸부림치는 해프닝을 막은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정작 더 큰 해프닝을 못 막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
“아.”
화장실 문을 연 순간, 반쯤 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사쿠라 씨였다. 단순히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려는 사쿠라 씨와 만났다.’라는 스토리는 괜찮다. 허용범위다. 하지만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아직 이용 중이던 사쿠라 씨와 만났다.’라는 건 결코 겪고 싶지 않은 해프닝이다.
“............”
“............”
깜짝 놀란 사쿠라 씨의 표정은 상당히 귀여웠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지만, 외형은 일단 어리니 표현은 이쪽이 더 걸맞다. 중요한 건 내가 그녀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거지만.
“............”
“...실례했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쿠라 씨가 나온 그 후가 두려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그 물을 다시 담을 능력이 없다. 그냥 죽도록 사죄할 뿐.
그 후 밥을 먹고 교복을 입은 후 집에서 나오는 그 순간까지, 사쿠라 씨의 질책은 끊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내가 카자미 학원의 위치가 어디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쫓기는 기분으로 집을 나왔을까.
허겁지겁 밥을 먹어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했으며 위치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귀차니즘을 자극했고, 결국 나는 그 날 무단결석을 했다. ‘될 대로 되라.’가 쓸데없이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익히다가 저녁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쿠라 씨가 화가 많이 난 표정으로 날 맞이하셨다. 물론 나를 보자마자 하시는 첫 마디는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였다.
“하아.................”
따뜻한 물이 가득 차 있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몸 전체로 퍼지는 따뜻함이 어제 오늘 쌓였던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보냈다. 자취를 하던 예전 세계에서는 샤워는 자주 했어도 목욕은 자주 하지 않았었다. 돈을 아끼겠다는 것이 1순위 이유였고, 대중탕까지 가는 게 귀찮다는 게 0순위였다. 이 집에는 욕실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원할 때마다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역시 매일 사용하면 수도세가 장난 아닐 텐데.......”
여기서 돈을 버는 입장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사쿠라 씨가 말하셨지만, 얹혀사는 입장인데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다. 적당히 적응이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저녁도 먹었고, 학교는 결석을 했으니 숙제 같은 건 나에겐 없고......자기 전까지 뭘 하지?”
자기 전까지 비어있는 시간동안 뭘 할지가 걱정이었다. 거실에 가서 TV를 보는 건 사쿠라 씨가 무서워서 무리고, 그렇다고 방에서 뭔가 하자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상점가에 있는 책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구경하긴 했지만, 돈이 없어서 사오지 않았기 때문에 독서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교과서를 읽는 짓은 안 한다.
“근데 뭔가 하나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뭔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기억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사소하다고 느꼈던 건 금방 잊고 마는데, 지금 잊고 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누구랑 약속을 잡았던 것 같기도 한데................응? 약속?”
‘약속’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그 단어는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속 맴돌던 그 단어는 조금씩 형태가 변하더니, 결국엔 ‘내기’란 단어로 변해버렸다.
“...................아!!!!!!!!!!!!!!!!!!!!!!!!!!!!!!!!!!!!!!!!!!!!!!!!!!!!!!!!!!!!!!!!!”
난 순간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욕실이라서 그런지 나의 외침은 아주 뚜렷하고 크게 들렸다.
“코토리와 내기를 했었지..... 왜 잊고 있었던 거지!!”
그제야 나는 코토리와의 내기를 떠올렸고, 내가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윽. 내가 그 중요한 내기를 잊고 있었다니.... 이건 다 사쿠라 씨 때문이야!!”
자신의 일이 잘 안 풀리면 그걸 방해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고 했던가. 나름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생각해뒀었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아아아아.....그냥 물어물어 갈걸...”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엎질러진 물. 또 말하는 것 같지만 난 그 물을 원래대로 할 수 없다. 그냥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이상하게 일들이 꼬이네.”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사쿠라 유메라는 민폐녀와의 에피소드, 오늘 아침에 있었던 화장실 에피소드, 그리고 코토리와의 내기. 전부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이긴 하지만, 모두 나에게 안 좋은 쪽으로 끝났기 때문에 조금 미심쩍다.
“...혹시 흑막이 있다던가...?!”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할 정도로, 나의 요 근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정확하게 집어내자면 사쿠라 씨가 나를 찾아왔던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니야. 그냥 우연이겠지.”
고개를 흔들면서 애써 부정을 하고,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서 나는 눈을 감고 잠수를 했다. 머리를 물속에 넣으면서 생긴 물의 움직임을 피부로 느끼면서 머릿속에 있던 불안감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너무 오랫동안 들어가 있어서 욕조에서 나온 후 잠시 기절했었다는 건 나밖에 모르는 나의 에피소드다.
그렇게 나의 등교 첫 날은 허무하게 날아갔고, 원래 두 번째 날이어야 정상인 내 등교 첫 날.
“저기, 위치만 알면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난 나의 양 옆, 그리고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인건가, 아니면 안 들렸던 건가.
‘무시.......겠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안 들렸을 리 없다. 이건 100% 무시다. 나는 다시 한 번 말을 하기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이젠 나 혼자서도.....”
“안 돼. 혼자 보냈다간 또 옆길로 샐 거야.”
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나의 말을 잘라먹었다. 지금 나의 상황은 찍소리도 못 하고 끌려갈 판이다.
‘샐 지도 몰라가 아니라 샐 거야라니.... 나의 신용도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군...’
스스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인정은 하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논할 권리는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가지고 한 번 더 말하기로 했다.
“난 어린이가 아니니까....”
“네. 어린이는 아니죠. 그냥 변.태.일 뿐이죠.”
“......................”
이번엔 내 왼쪽에 있는 사람이 나의 말을 잘라먹었다. 순간 내 가슴 속에선 분노가 솟아올랐지만, 그것을 표출하지는 못하기에 내 속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아...아직 포기하면 아니 된다. 나는 당당하다. 내가 밀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마음속으로 힘껏 자신을 응원한 후,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내 뒤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사쿠라 ㅆ.....”
“딴 맘이 없다면 그냥 우리들이랑 같이 가도 상관없잖아! 그냥 걸어!”
“.......................”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격퇴. 3전 3패로 나의 완패다. 이젠 덧없이 끌려간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자기 자신이 조금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 오른쪽에는 오토메 누나가, 왼쪽에는 아사쿠라 유메라는 민폐녀가, 그리고 내 뒤에는 사쿠라 씨가 바짝 붙어서 내가 옆길로 새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이게 다 어제 있었던 나의 무단결석 때문인데....
“어째서 오토메 누나까지 날 감시하는 거야?!”
난 오토메 누나를 보면서 따졌다. 사쿠라 씨가 날 감시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녀까지 날 감시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학생회장이고 이웃사촌이니까 당연하잖아!”
깨갱.
어련하시겠습니까. 물어본 제가 잘못했지요. 네, 죄송합니다.
이번엔 대상을 바꿔서 민폐녀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은 말을 걸고 싶진 않았지만, 내 왼쪽에 바짝 붙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넌 뭐야.”
“좋아서 있는 거 아니니까 닥쳐주세요.”
“싫으면 비켜.”
“나도 싫어! 근데 언니가 시키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있는 거야!”
이런 반응은 좀 오랜만이랄까 신선했기 때문에 왠지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조금 생각해보면, 사이가 나쁘면 은근히 놀려먹기 아주 편하다. 라고 생각한 나는, 그녀를 조금 놀리기로 했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날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언니가 시키는 거라곤 하지만.....”
(퍼억!!)
“크억!!!”
순간 왼쪽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몸을 기역자로 꺾으며 옆구리를 마구 비벼서 아픔을 빨리 날려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흥. 헛소리 하는 사람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죠.”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걸어 나가는 그녀를 보자니 화가 나서 마음껏 욕을 하고 싶었지만, 방금 전 타격 때문에 못 움직이고 있는 나를 사쿠라 씨와 오토메 누나가 노려보고 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발을 움직여야 했다.
‘신이시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아니, 잘못은 했지만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런 고통을 주는 거냐!!!!!!!!!!!!!!!!’
결국 난 쌓여있던 모든 분노를 마음속에서 신을 향해 표출하는 것으로 이번 일로 생긴 감정을 날려버려야만 했다.
(웅성 웅성)
시선이 따갑다. 솔직한 심정으로 부담된다. 민폐다.
(웅성 웅성)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로 내 곁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지도 모르지만, 난 결코 기쁘지 않다.
“이제 학교가 코앞인데 슬슬 떨어져 주실래요?”
“이제 학교가 코앞인데 왜 그래야 하는데?”
“..............”
오토메 누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녀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녀들은 나와 함께 등교했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이쪽에 꽂혀있는 것 같아서 마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매일 매일 이렇다면 다른 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다... 어떻게든 해야겠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내일부터는 반드시 혼자서 등교하리라 다짐하는 나였지만, 가슴 한 구석에선 그녀들이 매일 이럴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쿠라 씨에게 대충 소속 반에 대해서 들은 후, 민폐녀의 안내를 받아 교실에 도착했다. 사실 오토메 누나의 안내를 받고 싶었지만, 그녀는본교 학생이라 다른 건물에 교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건물인 민폐녀의 안내를 받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날 안내하는 것이 싫다는 게 눈에 보였지만, 내가 귀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억지로 그녀의 안내를 받아냈다.
“흠... 여기가 내가 있을 교실이란 말이지.”
교실 문 위에 3-B라고 적혀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내가 신세를 지게 될 이곳에서, 황당한 일만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문을열었다.
(덜커덩!!)
“...............”
문이 안 열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뻑뻑하다. 탁하고 막힌 느낌이다. 드르륵하고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다시 문을 열려고 팔을 움직여봤다.
(덜커덩!!)
똑같은 반응. 앞문이 잠겨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면 뒷문으로도 학생들이 들어가고 있으니까. 그 말은 당연히 앞문도 열려 있다는것이다.
등교 첫 날부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이 이 한 몸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
순간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민폐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분명히 내가 못 들어가는 것을 보고 웃고 있을 게 틀림없다. 뒤를 돌아보진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고작 이런 것에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되겠는가! 단숨에 열어주겠다!’
라는 생각으로 있는 양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껏 문을 옆으로 당겼다.
(덜커덩! 덜커덩!)
“....어째서 안 열리는 거야!!!!!”
포기. 그리고 절규.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폐녀가 곁으로 다가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열리는 문은 저건데요.”
“.....................”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문은 바로 2개의 문 중 ‘열리지 않는 문’. 잘만 열리는 문을 내버려두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했으니, 어지간히 힘이 좋은 사람이 아닌 이상 열릴 리가 없다.
‘어째서 반대쪽 문을 열어볼 생각을 안 한 거지...’
털썩하고 쓰러져 좌절했다. 자신의 무력함을 느껴보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지만 그것보다 민폐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게 충격이었다.
“풉.”
순간 귀를 강타하는 그녀의 비웃음. 남들은 다 구구단을 하는데 나만 못 해서 욕먹는 것보다 더 슬프다. 평생 씻을 수 없는 굴욕이다.
‘저 녀석이......’
그녀가 잘못 한 것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내봤자 그저 분풀이일 뿐이니까 그것을 꼬투리로 또 놀림을 받을 거고.......이래저래 나만 안 좋은 상황이다.
“그럼 전 이만......”
실컷 즐겼는지 그녀는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그러나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난 놓치지 않았다.
‘내 반드시 저 녀석에게 복수하리라. 꼭! 반드시! 절대로!’
어린 아이의 생각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그녀가 굴욕을 느낄만한 사건이 다가오길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아 그래. 내가 이럴 시간이 없지.”
곧 종이 칠 것을 깨달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복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챙겼다. 심호흡을 가볍게 한 뒤, 이번에는 열리는 문을 가볍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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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붙은 은근히 짜증나는 것 같아요 -_-;;
-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