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夢 ~ 꿈이란 세상 속에서.] -12화-
<12화>
집으로 돌아온 후, 나와 사쿠라 씨는 잠시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쉬기로 했다. 테이블에는 차가 담긴 컵이 놓여 있었고, 한 입에 들어갈 정도의 쿠키가 그릇에 담겨 있다. TV에서는 지루한 프로그램들밖에 하지 않아서 나의 심심함은 한계에 도달했다. 마침 사쿠라 씨에게 할 이야기도 있던 나는 사쿠라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쥰이치 씨는 뭔가 좀 특이한 분이네요.”
“응? 오빠가? 음..........그런가?”
TV를 보고 있던 사쿠라 씨는 내 말에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더니 잠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쥰이치 씨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는지, 곧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이면서 말하셨다.
“뭐, 오빠가 좀 웃기긴 하지.”
“아니, 그 쪽이 아니라 조금 신비롭다고나 할까요.”
내가 한 말이 생각지도 못했던 거였는지, 사쿠라 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관심을 보였다.
“신비로워? 어떤 면에서?”
“뭐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자마자 ‘잠시 나랑 상담 좀 할까.’라고 말하는 점?”
“하긴. 초면에 그런 걸 하는 사람은 드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쿠라 씨는 TV에서 시선을 때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쥰이치 씨와의 상담에 대해 물어보셨다.
“어땠어? 오빠와의 상담은?”
“글쎄요. 그게 상담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쓸데없이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결론적으로 내가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조언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
순간 사쿠라 씨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구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대화는 끝났고, 시선은 다시 TV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TV에서는 여전히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 그래.”
“......응??”
한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이 떠올라서 나는 재빨리 사쿠라 씨에게 말했다. 바로 내일 이야기다.
“전 내일 카자미 학원에 입학하게 되는 거죠?”
“응? 아.........그랬나?”
마치 자신도 몰랐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순간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런 나의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안심하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 수속은 다 끝냈고 준비도 다 해뒀으니까. 남은 건.........”
“남은 건?! 뭔가 남아 있는 건가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사라지려고 했던 불안함이 다시 솟아올랐다. 하지만 뒤이어서 그녀가 한 말은,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함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너의 개그 스펙?”
“..............................”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지만, 나의 착각일 것이다. 나의 불안감이 사쿠라 씨가 한 말을 이리저리 왜곡시켜서 이상하게 조합되어서 나의 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것이 틀림없다. 난 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쿠라 씨에게 물어봤다.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개그 스펙이라니.......”
“응? 잘못 들은 게 아니야.”
“...........................”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내 귀를 의심했고, 사쿠라 씨를 의심하게 만든 신을 저주했다. ‘될 대로 되라.’는 게 이 세계에 온 순간부터 정한 나의 좌우명이었는데, 정말로 이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나를 보던 그녀는 쐐기를 박으려는 듯이 대답했다.
“왜 그거 있잖아.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일단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잖아?”
“.....그래서 저보고 지금, 내일 반 아이들에게 개그를 선보여라....?”
“응. 짧고 굵게 한 방!!”
“.....................”
“....................”
활짝 웃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을 위로 쫙 뻗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냥 내 맘대로 하는 편이 좋겠군.’
사쿠라 씨는 마치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안 나와서 실망했다는 듯 한동안 뾰로통해 있었다. 그런 사쿠라 씨의 모습에서 후환이 두려웠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했다.
“사쿠라 씨. 제가 배정되는 반은 몇 반이죠?”
“응?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게 말이죠, 사실은...............”
나는 낮에 있었던 코토리와의 내기에 대해서 사쿠라 씨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쿠라 씨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다.
“그래서, 그 내기에서 이기고 싶다고?”
“네. 그러니까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만.”
“....................”
‘뭐?! 즉답이 아니야?!’
사쿠라 씨는 잠자코 눈을 감으시더니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할 거라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그녀가 나를 도와준다면 100%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 도와주실 건가요?”
“...............”
“그냥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니 좀 도와주세요. 네?”
내가 간절히 부탁해도 사쿠라 씨는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다.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슬슬 걱정과 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사쿠라 씨는 입을 열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도와줘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네?”
YES or NO로 대답할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응? 깨닫지 못 한 거야? 이 내기는 네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어째서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내가 이길 확률이 0%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름대로 피해 다닐 계획도 잘 짜뒀고, 사쿠라 씨만 도와준다면 내기에서 이길 확률은 100%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데요. 사쿠라 씨의 그 말.”
“....어디까지 바보인거야 넌.”
“실례입니다. 이래 뵈도 나름 철저한 계획 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아..................”
‘하아.............’
깊은 한숨을 쉬는 사쿠라 씨. 답답한 나 또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지. 직접 경험해봐. 그럼 알 게 될 테니까.”
“그럼 안 도와주시겠다는 건가요?”
“난 별로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 잘 해봐.”
사쿠라 씨는 그렇게 고개를 다시 TV쪽으로 돌리셨고, 할 수 없이 나는 그녀의 도움 없이 내기에서 이겨야 했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크진 않았지만, 조금 더 귀찮아졌다는 건 사실이었다.
‘할 수 없군.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두 사람에게 보여줘야겠어.’
“그럼 전 이만 올라갈게요.”
“응? 이제 자려고?”
“네. 아직 방 구경도 안 했으니 자기 전에 좀 살펴보려고요.”
“그래? 알았어.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사쿠라 씨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왔다. 그 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 다음, 4개의 방 중에서 내가 쓰게 될 방으로 들어갔다.
“호오... 이런 식이란 말이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 문 바로 옆에 있는 검정색 계열의 색상으로 되어있는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가방과 책들이 놓여있었다. 고개를 조금 돌리니 적당한 크기의 옷장과 책장이 보였다. 아직은 많이 비어있지만, 그쪽이 내가 원하는 물건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오. 이게 내가 쓸 침대란 거지?”
책장과 옷장 정면에는 침대가 놓여있었다. 창가에 놓는 구조라서 햇빛이 들어오는 걸 막는 것도 없고, 적당한 높이라서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창문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침대에서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조금 크다고 생각되는 창문을 볼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니 아사쿠라家가 바로 보였다. 거실 쪽에 불이 켜있는 것으로 보아, 저쪽은 아직 안자고 있는 듯 했다.
“책상이 있는데 구지 테이블이 필요하나?”
방 중앙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정사각형이라 최대 4명이 사용할 수 있었고, 모서리 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어서 모서리에 부딪혀도 크게 다칠 염려는 적어보였다. 아무래도 손님이 방에 들어왔을 때 이용하려고 있는 것 같은데, 난 테이블 같은 건 잘 안 쓰는 성격이라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과의 환경과 너무 다른 게 문제이긴 하지만, 적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난 예전 세계에서 방바닥에서 잤고, 테이블은 접이식으로 방 한 편에 놔둔 다음, 필요할 때만 꺼내서 썼었다. 방을 최대한 넓게 쓰자는 게 당시 나의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좁아 보이는 이 방 구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사쿠라 씨한테 건의를 좀 해야겠어.”
침대까진 이해할 수 있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이 테이블만큼은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아암... 일단 잠이나 자자....”
잠이 와서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침대가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서 피곤했는지, 예전 세계에서 잠시 뒤척이다가 자던 버릇은 나오지 않고 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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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