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D.C.夢 ~ 꿈이란 세상 속에서.] -9화-

세이토 절반 슈발리에 드 히라가 2009. 9. 19. 00:00

-9화-

“다 왔어. 여기야.”

사쿠라 씨는 걸음을 멈추시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하셨다. 나는 건물의 겉모습을 한 번 본 뒤 말했다.

“..... 한 20발자국 걸었던 것 같네요.”

“뭐, 가깝긴 가깝지.”

사쿠라 씨는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대답하셨다.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시는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뭔가 속사정을 모르는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사쿠라 가의 겉모습은 요시노 가와는 달리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시노 가는 현관문이 나무재질이고 벽이라 할 수 있는 곳은 풀로 뒤덮여 있으니 자연적인 느낌이 들지만, 아사쿠라 가는 그와 반대로 시멘트벽으로 이루어진... 어떤 면에선 삭막함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어서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관 감상은 뒤로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사쿠라 씨에게 물었다.

“사쿠라 씨.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응? 뭔데?”

이 부분은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꼭 답을 들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친척이 이렇게 가까이 산다면...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지 않나요?”

그 질문에 사쿠라 씨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셨다.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긴 좋은데 난 이 집이 좋아. 게다가 저 집에 살고 있는 내 친척들도 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어째서요?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는 곳인가요?”

만약 그녀에게 이 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사쿠라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이나 장소는 쉽사리 잊을 수 없고, 떨어져 살기도 힘드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여긴 내 할머니의 집이거든.”

“헤에... 사쿠라 씨의 할머님이...”

“응.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기에서 살기로 한 거야. 헤헤... 쓸모없는 고집 일려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좋은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친척들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데도 혼자서 이 집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러한 장소나 물건이 없지만, 인간인 이상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의문이 조금은 풀렸지만, 사실은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한 집에서 살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여기엔 내가 모르는 과거 이야기가 있을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원래는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일 때문에 이사를 갔다.’같은 거.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서 나는 이것에 관련된 질문은 그만 두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좀 더 가까운 미래에 관련해서.

“근데 이 집, 아사쿠라 가에는 누가 살고 있죠?”

“음... 오빠와 그의 손녀 2명이 살고 있어.”

사쿠라 씨가 말하는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텐 중요치 않다. 나는 전체적인 정보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3인 가족이군요. 오토메 누나는 손녀란 말이군요. 어라? 그럼 오토메 누나들의 부모님들은요?”

그녀는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순간 그녀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엔 뭔가 슬픈 과거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출장 중. 어머니는 그녀들이 어렸을 때 죽었어.”

“죽다니... 사고인가요?”

“아니... 병이었어.”

“그렇군요.....”

사쿠라 씨의 어두운 표정이 이젠 확연히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을 꺼낸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서 사는 세상에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자, 자,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

“예.....”

사쿠라 씨는 일부러 밝은 척을 하면서 웃어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부터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띵동~ 띵동~)

사쿠라 씨는 아사쿠라 가의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 사람은 입고 있는 옷은 다르지만, 내가 한번 본 얼굴이었다.

“아, 사쿠라 씨. 어서 오세요.”

온화하면서 밝은 목소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이름은 아사쿠라 오토메. 만나고 10분도 안 돼서 ‘편하게’ 말을 놓게 된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꽤 혼란스럽다. 실제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여기서는 일단 내가 그녀보다 적고,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여동생과 헷갈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반말과 ‘누나’호칭을 쓰게 강요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선 보기 힘든 에피소드겠지....’

나의 이런 고통 아닌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토메 누나는 나를 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건장한 남자인 이상 그녀의 미소는 다이너마이트 급으로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주지.’

“오토메, 좀 늦었지? 미안. 세이토 군이 너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제 잘못이 크긴 했지만 늦지는 않았잖아요?”

사쿠라 씨는 손가락을 흔들며 말하셨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저녁 준비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는 저녁식사에 초대된 게 아니었나요...”

“응. ‘일꾼’으로서 초대되었지.”

“...................”

사쿠라 씨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하셨고,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토메 누나는 그런 나와 사쿠라 씨의 정다운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거참... 나만 당하고 있군...’

“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나와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안내를 받아 아사쿠라 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면 가장 먼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눈에 보였다. 요시노 가에는 없는 다락방이 혹시나 여기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계단 바로 앞에 왼쪽으로 벽이 뚫려 있었다.

사실 벽이 뚫려있는 게 아니라 거실로 통하는 입구다. 부엌과 거실이 융합되어 있었다. 두 장소 사이에 특별히 벽 같은 게 없었다. 부엌 쪽엔 4인용 식탁이 놓여있고, 그 옆은 거실 영역으로 연 파란색의 소파가 있었다. 소파 앞에는 유리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TV가 보였다.

“호오. 이 집은 이렇게 되어 있군요...”

“어때? 아사쿠라 가의 모습은?”

사쿠라 씨의 말에 나는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좋은데요? 가구들의 배치도 나쁘지 않고, 햇빛도 잘 들어올 거고. 예전부터 이랬나요?”

“응. 특별히 가구의 위치를 바꾼 적은 없어. 예전부터 이렇게 두고 살아왔었어.”

나의 질문에 오토메 누나가 대답했다. 사쿠라 씨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오토메 누나에게 물었다.

“오토메, 오빠는 어디 있어?”

“할아버지요? 부족한 재료가 있어서 사 오신다고 잠시 나가셨어요.”

“흠..... 그래?”

사쿠라 씨는 오토메 누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현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하셨다.

“그럼 난 오빠 마중 나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저녁 준비를 끝내줘.”

“네. 다녀오세요.”

“저도 같이 갈까요?”

나는 사쿠라 씨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말했지? 일꾼으로 초대된 거라고. 세이토 군은 오토메를 도와줘. 그럼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곤 사쿠라 씨는 신발을 신고 나가셨다. 오토메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에이프런을 입고 있었다.

“자, 그럼 세이토 군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

“응? 왜 그래? 혹시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군’이란 호칭은 그냥 빼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래? 일부러 신경 써서 호칭을 붙인 건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는 건가!!’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난 뒤에 말했다.

“왠지 ‘군’을 붙이니까 내가 듣기 거북해. 그냥 이름만 불러줘.”

“응.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자, 어서 이리 와서 도와줘.”

“예이, 예이.”

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 식탁 위에 있는 재료 및 요리기구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기.........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응? 뭔데?”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거...........냄비요리?”

“응. 근데 왜?”

“아니........겨울도 아니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음......지금도 충분히 겨울인데?”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 나의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오토메 누나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냄비요리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오늘의 주역이 될 적당한 크기의 냄비에 고정되어 있다.

“사쿠라 씨가 오늘 저녁은 냄비요리가 좋다고 말하셨거든. 그래서 준비했어.”

“....................”

“혹시 세이토는 냄비요리를 싫어해?”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럼 상관없잖아.”

“그렇긴 한데............”

냄비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을 뿐이다.

때는 작년 여름.

내가 살던 세계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장소에 도착했지만.........

“하나 물어도 되냐 나의 친구들아.”

“뭔데 세이토.”

“........어째서 냄비요리인거야...”

‘여름에 냄비요리를 통해 더움을 이겨내자!’라는 친구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얽히게 되어서 나는 그해 가장 더운 날에 뜨거운 냄비요리를 먹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추운 날 이외엔 절대로 냄비요리를 먹지 않는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그 다짐이 깨지려고 하는 것이다.

“자자, 어서 준비해. 곧 할아버지와 사쿠라 씨가 돌아오실 거야.”

‘그렇다고 안 먹겠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식탁에 있는 것들을 거실 쪽으로 옮겼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온 뒤론 이것저것 꼬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굳게 다짐했던 것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깨지다니......’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허망감을 잊으려고 나는 오토메 누나와 대화를 하려고 말을 꺼냈다.

“근데 왜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는 거야?”

뭔가 특별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재료들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특별히 에이프런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토메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식사 준비를 할 때는 항상 착용하고 있었어. 습관이 들어서 특별히 입을 이유가 없어도 입고 있지만 말이야. 어때? 어울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였다. 나는 보기 드문 이 장면을 뇌에 되새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보겠는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은 절대로 무리다.

“뭐, 에이프런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은 없다고 생각해.”

“치잇- 감상이란 게 고작 그것뿐이야?”

“그럼 뭐라고 해줄까? 신혼부부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신랑에게 자신의 에이프런 차림이 어떠냐고 물어서 신랑이 ‘아주 아름다워서 눈이 부셔.’라고 말할 정도라고 하면 될까?”

“에잇-”

(타악-)

“아얏.”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토메 누나는 나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그녀는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연상인 사람에게 농담은 하면 안 돼요.”

“넵.”

‘농담은 아닌데 말이지....’

나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다시 재료들을 날랐다. 곧 우리는 재료들을 모두 다 옮겼다.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고 있는 오토메 누나를 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응? 유메라면 2층에 있어.”

‘호오. 이름이 아사쿠라 유메인가 보지?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군.’

나는 계단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슬슬 불러야 하지 않나?”

“그렇네... 그럼 세이토가 가서 좀 불러줄래?”

“거절합니다.”

“갔다 오세요.”

“네.”

모르는 사람을 부르러 간다는 것이 싫었고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오토메 누나의 말에 압도당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갔다.

‘아니, 원래라면 낯선 남자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오토메 누나의 정신 상태를 조금 의심했다. 2층으로 올라오니 방문이 2개가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집에도 다락방은 없었다.

“....다락방이 주택만의 매력인데 말이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보인 방의 문 앞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똑 똑)

“...................”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이 방은 오토메 누나의 방인 것 같다.

‘흠..... 그럼 저 방이란 말이군.’

나는 고개를 돌려 나머지 하나의 문을 보았다. 내가 지금 오토메 누나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 들렸을 텐데 저 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통은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봐야하는 거 아니야?! 이 집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점점 아사쿠라 가 사람들에 대한 의혹이 커져가기 시작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바로 ‘아사쿠라 유메’란 오토메 누나의 여동생의 호출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찮은 건 사실이야.....”

나는 투덜거리며 나머지 방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다음 가볍게 노크를 했다.

(똑 똑)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다. 마치 방 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노크를 하기로 했다. 아까 전에 한 것은 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똑 똑)

“....................”

역시 대답은 없다. 조금 기다려봤지만 깜깜 무소식.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뭐야. 기껏 내가 부르러 왔다는데.”

방문을 시원스럽게 열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내가 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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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고갈나는 듯.

아마 이거 다음화까지만 적어뒀는 걸로 기억.

-세이토-